ena
  1. 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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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생명의 위대한 비밀
글쓴이
한국유전학회 저
라이프사이언스
평균
별점10 (1)
ena

앞표지에는 AUG, 뒷표지에는 UAA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모든 내용이 끝나는 부분에는 UGA. 생소한 이들도 많겠지만, 생물학을 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글자
, 아니 부호다. 유전 암호 AUG mRNA에서 단백질로 번역될 때 항상 가장 먼저 나오는 신호이고, UAA, UGA (그리고 UAG까지)는 이른바 종결코돈(부호)
이 부호가 나오면 단백질 번역이 끝난다
. DNA가 유전자라는 사실,
DNA
의 구조, 유전 암호를 찾아내는 과정을 다룬 책이 이런 부호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는
것은 살짝 미소짓게 하는 아이디어이고
, 또 상당히 적절한 설정인 셈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 에이버리, 왓슨, 크릭, 쟈코브, 모노, 니렌버그 등등, 이들은 나에겐 영웅이다. 이 책은 이들을 비롯하여 많은 유전학자들이 이룬 20세기 이후 DNA를 둘러싼 눈부신 발전을 다루고 있다. 단백질이 유전 물질일
것이라는 보편적인 추론을 물리친 에이버리
, 허쉬와 체이스의 실험들,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히기까지의 숨막히는 경쟁, 쟈코브와
모노가 밝혀낸 유전자 조절의 비밀
, 이후 유전 암호를 찾아내기 위한 이론적인 추론을 한방에 뒤집고 실험의
승리를 선언한 니렌버그
, 오초아의 실험들. 그리고 그 이후 21세기 생명과학의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를 가진 발전 등을 현장감 넘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생물학, 특히 유전학의 역사에서 정보(information)의 측면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이 책의 특징이다
. 그래서 섀넌이나 위버 같은 사이버네틱스 등의 창시자들의 이야기가
몇 개 장에서 다루어진다
. 조금은 이질적이며, 생물학 전공자에게는
낯선 이 부분을 넣은 것은 바로 유전 암호의 해독을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이다
. 정보과학
쪽에서 보았을 때 유전 암호는 엄격한 의미의 정보가 아니지만
,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정보로 다룬다. 생물체의 구조를 이루고, 기능을 하도록 하는 정보로. 물론 현장의 생물학자들이 정보로서 유전 암호를 수시로 인식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식이 없고서는 아마 현재의 연구들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특히 DNA의 염기서열 몇 백 개를 결정하기 위해서 밤을 세웠던
시대가 이미 저물고
, 인간 유전체가 몇 시간 만에 확정할 수 있는 시대에, 정보과학으로서의 생물학에 익숙한 이만이 적응할 수 있고, 좋은 논문을
낼 수 있는 시대다
.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정보로서의 유전 암호
, DNA를 생각해보는 것은 무척 필요한 일이다.

 



여기의 발견들을
결과로서만 배웠던 입장에서는
, 그런 일들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고, 어떤 실수가 있었고,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등을 읽는 재미는 무척 크다
. 잘 몰랐고,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도 적지 않다
.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X-
회절 사진
51’에 관한 얘기다. 몰래 보게 된 이 사진을
통해서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얘기는 사실은 과대 평가되었다. 이미 DNA 구조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들이 알려져 있었으며, 왓슨과 크릭은 그것들을 한데 모아 제대로 해석해냈고, 그걸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빨리 해냈다
. 어느 날 갑자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순식간에 해치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에선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한다
. 유전암호와 관련해서 무명의 과학자 니렌버그가 당시에 유전암호에 관한 갖가지
이론적 논의들을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 독창적인 실험으로 밝혀내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읽으며, 나의 꾸었던 꿈도 생각하게 되고, 앞으로의 연구에 대해 뭔지 모를
기대감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

 



이 책은 분자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어떤 맥락을 두고 탄생하고 초기에 발전했는지를 다룬 미셸 모랑쥬의 《분자생물학
: 실험과 사유의
역사》와 짝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 동일한 연구를 다루는 부분도 많지만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이 다루고, 중점을 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비교하여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 바로 번역. 한국유전학회 소속 교수들이
공동으로 번역했다
. 둘이 한 장(chapter)를 맡아 번역하고, 나중에 감수 과정을 통해서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 것 같은데, 이는
생물학의 많은 전공 교과서들이 번역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 그런데 이런 교양과학서적을 한 학회의 차원에서
이렇게 다수의 번역자가 번역해서 내놓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 그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장마다 번역의 수준이 아주 크게 차이 나는 것은 바로 그런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울 수 밖에 없다. 특히 오역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 장은 번역한 교수가 누구인지를 찾아보게 된다.

 



“유전암호를 알아낸
것은 물리학 분야에서 갈릴레오와 아인슈타인의 발견 또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관한 발표와 비견되는데
, 자연
세계와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거대한 도약이었다
.
(264
)

 



“암호 해독은
실험의 힘을 보여주었다
. 이론적으로 암호를 해독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다. (262)

 



‘유전암호는 생물의
역사적 산물이며 지저분하고
, 비논리적이며, 우아하지 않다. (263)



“암호를 해독해
낸 것은 이론에 대한 실험의 승리”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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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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