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9.12.14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 글쓴이
- 토머스 길로비치 저
모멘토
사람들은 많은 경우 별로 근거도 없는 확신에 근거해서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며, 얼토당토하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터무니 없는 자기 과신에 차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입양을 하고 나면
입양하지 않은 불임 부부에 비해 임신하기가 쉽다고 믿는다.
농구 선수가 이전 슛이 성공하면 다음 슛이
성공할 확률이 높고, 실패한 슛 다음에는 역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핫핸드’).
노름꾼들은 뻔하게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아는데도 계속해서 도박을 한다.
사람들은 자가 자신이 늘 평균보다는 낫다고
평가한다(‘레이크 워비곤 효과’). 예를 들어 학생들이 60% 이상이 자신의 리더십이 상위 10% 이내에 든다고 여기며, 교수들 중 자신의 평균적인 동료들보다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94%이다!
사람들은 분명한 근거가 없이 초능력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별로 그럴 리 없는 데도 무슨 일을 하는데 일단 자기 비하부터 깔아 놓는다. 이를테면, 테니스 시합을 하는 동료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연습을 못했다거나 팔꿈치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다.
비의학적 치료법에 대해서 믿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습성이다.
그런 게 인간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은 왜 그럴까? 토머스 길로비치가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를 밝히고 싶은 것이다. 즉각적인
판단을 해야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진화적 요인, 통계적 회귀 현상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버릇,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설에 맞는 증거만 취하는 편향된 심리. 정보가 가려지거나 빠지는 문제. 자기 평가와 타인 평가를 동일한
기준에서 하지 못하는 자기 중심적 성향. 통계와 경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 착각 등등.
그런데 또 의문이 드는 것은 왜 그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까지 한 성향을 인간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조금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게 이전까지는 인간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사회,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에 대해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 현상에 대한 원인을 나름대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 위험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 일단은 나쁜 것부터 대비해야 하는 필요성. 통계보다는
자신의 경험이 훨씬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는 한계 등등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이 모양으로 불완전한 것은 바로 그게 인간이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하나의 종(種)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고, 혹은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학적 설명은 굉장히 체계적이어서 만약에 그 설명이 그릇된 것일 때 그것을 배척하고 새로운 설명을 채택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게 바로 과학적 자세이며, 현대의 문명은 바로 그 토대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대의 과학적 성취, 내지는
토대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적인 미신과 속설에 휘둘리는 현대인의 존재는 사실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물론
많은 상황에서 과학적 사고 방식을 적용하는 이조차도 가끔은, 아니 상당히 자주 비이성적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니 여전히 인간이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심리학자로서 사회과학적 훈련이 그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책을 낸 게 1990년대 초반인데, 아직까지도 이 책의 설명이 아주 유효한 걸 보면, 인간에게 미신이나
속설 같은 게 얼마나 유구한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혹은
어떤 조건 같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여전히 이 책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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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