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0.4.14
녹나무의 파수꾼
- 글쓴이
- 히가시노 게이고 저
소미미디어
책을 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녹나무가 뭔지부터 찾아봤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필이면 녹나무를 등장시켰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도 익숙한 나무였다(이름은 몰랐지만). 그 나무에 무슨 영(靈)이
서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녹나무에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은 납득이 되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몇 개의 고리를 지니고 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 된 나오이 레이토의 가정사와 그를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끌어낸 야나기사와 치우네의 사연과 관계, 사지
유미와 그의 아빠, 그리고 큰아버지, 할머니에 얽힌 사연, 큰 기업의 후계자 오바 소키라는 청년의 이야기 등등. 모두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일이지만, 결국엔 녹나무를 매개로 풀리는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 녹나무에만 의지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녹나무와 연결되었을 때 풀리는 일들이다. 언뜻 봐서는 녹나무의 기념(祈念)과 수념(收念)에 기대는 것 같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은 결국엔 자신의 의지를 펼치고
있다. 녹나무는 배경이다.
그런 녹나무 같은 배경이 있었으면 싶지만, 그게 배경이라면
그런 배경은 누구에게라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혹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치우네의 마음을 읽고 그를 대변한 레이토의 경우나, 큰아버지의 머릿속
음악을 현실화해낸 사지 유미나,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았어도 당당히 가업을 밑바닥부터 이어가겠다고 결심한
오바 소키나 모두 녹나무를 통해서 그런 결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녹나무를 그렇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들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녹나무를 키우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현실을 초월한 상상을 펼치는 소설을 가끔 낸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그런 것이었고, 『라플라스의 마녀』나 『마력의 태동』도 그런 것이었다. 이과 출신
소설가로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 내지는 성향을 바탕으로 엄밀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소설들을 보면 그의 출신에 비해 조금 의외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런 소설들은 따뜻하다. 그의 추리 소설들도 추리 자체보다는, 또 차갑다기 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중점을 두는 따뜻한 느낌의 것이 훨씬 많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현상을 다루는 소설은 더욱 따뜻하다. 어쩌면
그가 소설 속에서 이런 장치를 하는 이유는 그런 따뜻한 세상에 대한 염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좋아요
- 6
- 댓글
- 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