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0.12.10
진실의 흑역사
- 글쓴이
- 톰 필립스 저
윌북(willbook)
“언론은 거짓말하고, 지도 제작자는 날조하고, 사기꾼은 속여먹고, 정치인은 기만하고, 장사꾼은 바가지 씌우고, 돌팔이 의사는 사람 잡는다.” (242쪽)
《인간의 흑역사》에 이어 톰 필립스는 인간의 ‘거짓말’에 대해 입담을 펼치고 있다. 자신이 팩트체킹 기관인 ‘풀팩트’의 편집자이니 이 분야야말로 그의 전공 분야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의 원제가 “Truth” 즉 ‘진실’이라는 건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한다. 거짓말의 지저분하고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결국 진실을 생각하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 톰 필립스는 기상천외한 거짓말의 사례를 가득 제시하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진실이다. 물론 잔뜩 경직된 진실만 가득한 세상은 너무나도 재미가 없겠지만 말이다(이 역시 톰 필립스의 생각이기도 하다).
톰 필립스가 찾아내 소개하고 있는 거짓말들은 정말 그 발상이 기상천외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그런 거짓말이 통했을 성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집단적 망상과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반성이 필요할 듯 싶다. 경쟁자의 부고를 자신의 신문에 실어 매장해 버린 경우나, 존재하지도 않는 산맥을 아프리카의 한복판에 그려넣거나, 중앙 아메리카에 국가 하나를 날조하여 만들어놓고는 사기를 치거나 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런 거짓말을 생각해내고, 실제로 실행한 용감함(?)도 기가 막히고, 그런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다는 것도 기가 막히다. 그런데 톰 필립스가 얘기하고 있는 것은, 그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 화폐, 그것도 가장 고액권을 장식하고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 거짓말의 역사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한다는 것도 웃어 넘겨야 할 일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앞에 얘기한 경쟁자의 부고를 날조한 것부터 해서, 그는 장난으로, 혹은 심각한 이유로 많은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아주 정교하게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매스머라는 사기꾼의 거짓말을 자신의 뒤뜰에서 이른바 이중맹검 실험을 통해 적발하고 그에 관한, 즉 진실에 관한 보고서를 쓰기도 한 인물이 바로 프랭클린이다.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 것인지 분간이 쉽지 않다.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또한 흥미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집단 망상’에 관한 챕터다. 존재하지도 않은 현상을 마치 진실처럼 집단적으로 믿는 현상은, 마녀 사냥 같은 누구나 인정하는 역사 말고도 역사 속에서 너무나도 자주 나타났다. 그런 역사를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그런 현상이 요즘도 나타난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가 있다. 아니 더 보편적이고,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톰 필립스는 위키피디아의 잘못된 정보가, 나중에는 그 순서를 바꾸어 다른 것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는 현상을 보여주는데, 이런 예가 한둘이 아닐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또한 톰 필립스가 직업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가짜 뉴스’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점에서, 뭔가가 아주 낯익다. 근거 없는 루머가 퍼져나가는 현상은, 요즘으로 말하면 ‘가짜 뉴스’의 확산이다.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모습은 요즘 유포되는 ‘바이럴’ 정보와 다를 바 없다. 국경을 넘고,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을 바꿔가며, 잊을 만하면 또 나타난다. 그리고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사악한 외부의 힘이 우리가 먹는 음식과 식수를 가지고 장난친다는 집단 공황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거듭됐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페이스북에서 지금 이 순간 퍼지고 있는 루머 중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한다.” (249쪽)
그렇다면 이런 가짜 뉴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가짜 뉴스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 물론 그건 정말 큰 문제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사람들이 그 가짜 뉴스를 믿게 된다는 게 아니라,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거짓말, 거짓 뉴스를 찾아내서 오류를 정정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 좁디좁은 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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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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