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며

ena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1.7.13
사회학자인 아서 프랭크가 자신이 심장마비와 암에 걸렸다 회복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아픈 몸을 살다》에서 1차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로 ‘질환(disease)’와 ‘질병(illness)’다.
“의학의 한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질환과 질병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의학의 이야기는 질환 용어를 사용한다. 질환 용어는 몸을 생리학으로 환원하며, 측정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체온, 감염 여부, 혈액 및 체액의 순환과 구성, 피부 상태 등등을 측정하고 검사한 결과가 질환 용어에 포함된다. ... 질환 용어는 측정된 값을 참조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다. 내 몸은 살아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주체지만, 질환 이야기에서는 그 몸, 측정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객관화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27쪽)
즉, ‘의학’이라는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질환이다. 여기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없으며, 단지 내가 앓고 있는 구체적인 병명과 그것을 나타내는 수치가 있을 뿐이다. 의학에서는 수치와 병명을 연결하며, 그에 따라서 치료 방법을 고안한다. 그러나 ‘질병’은 이와는 다른 것이다.
“질병은 질환을 앓으면서 살아가는 경험이다. 질환 이야기가 몸을 측정한다면, 질병 이야기는 고장 나고 있는 몸 안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을 말한다. 질병은 의학이 멈추는 지점에서,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단순히 측정값들의 집합이 아님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28쪽)
그러니까 내가 앓고 있는 것은 질환일 수도 있고, 질병일 수도 있다. 질환이란 어떤 교집합 같은 것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이지만, 질병은 그렇지가 않다. ‘나’라고 하는 구체적인 존재가 있으며, 내가 앓고 있는 바로 그 유일한 것이 바로 질병이다.
착각하거나, 혹은 오해하는 지점이 여기서 생긴다. 우리는 의사에게 내 ‘질병(illness)’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에는 ‘질병’이 아니라 ‘질환(disease)’를 본다. 가끔 나의 질병을 보고 이해해주는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의과대학에서 ‘질병’을 보는 훈련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질환’에 집중된 훈련을 받는다. 우리는 질병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의사는 대체로 질환을 이야기하는 데서 오해가 생기고, 때로는 불신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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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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