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균에 사람 있다

ena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2.7.25
콜레라, 세계화와 함께 정체를 드러내다
Vibrio pacinii라는 이름을 가진 세균이 있다. 2003년 새우 유충, 농어, 대서양 연어 등 해양 생물에서 분리된 세균 균주들에 대해서 고메즈-길 (Bruno Gomez-Gil) 등이 연구해서 붙인 이름이다. Vibrio라는 잘 알려진 속명에 이은 종소명 pacinnii는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필리포 파치니(Filippo Pacini, 1812-1883)의 이름을 기린 것이었다. 필리포 파치니는 바로 1854년 콜레라의 원인균을 찾아내 Vibrio cholerae라는 이름을 붙인 과학자이다. 콜레라에 관해서는 코흐의 연구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30년 전에 이미 이를 연구하고 이름까지 붙인 과학자가 있었던 것이다.
라틴어에서 온 말로 ‘지나친 설사’를 뜻하는 콜레라(cholera)는 오랫동안 인도의 갠지스 강 하류 벵갈 지역에 국한된 풍토병이었다. 이 질병이 인도 밖으로 나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이른바 서양의 선박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무역과 함께 점령을 일삼던 대항해 시대라 불리는 시기의 부산물이었다. 부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1800년대 초 영국이 인도에 교역로를 개척하고 군대를 파견하면서 콜레라는 인도를 빠져나와 전 세계 교역로를 따라 전파되기 시작했다. 1817년 인도에서 발생하여 1824년까지 지속된 첫 번째 콜레라 팬데믹은 네팔,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오만, 태국, 미얀마, 중국, 일본, 아마도 우리나라까지 마수를 뻗쳤다. 당시 유럽은 신문 등을 통해 아시아의 비극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콜레라가 유럽에는 상륙하기가 쉽지 않았다. 콜레라는 배를 통해서 순식간에 유럽에 상륙한 페스트와는 양상이 달랐다. 콜레라는 잠복기가 길어야 사흘에 불과했기에 아시아에서 콜레라에 걸린 선원이나 승객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간다고 한다면 이미 배 안에서 그 중상이 나타났을 것이고, 당시 방역 체계로도 그 정도는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어선은 금방 무너졌다. 1826년 인도에서 시작된 두 번째 팬데믹은 세계 곳곳의 전장을 누비던 군인들에 의해 첫 번째 팬데믹보다 훨씬 빨리 확산되었다.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집어삼키고,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폴란드, 불가리아, 라트비아, 독일로 번져나갔다. 당시 독일 베를린의 인구가 24만 명 안팎이었는데, 그중 2,250명이 콜레라에 감염되고 1,41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2,200명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1831년에는 영국에까지 전파되었고, 이듬해에는 아일랜드까지 건너갔다. 그리고 아일랜드 이주민들은 이 전염병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갔다.
19세기 말까지 콜레라 팬데믹은 여섯 차례나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일곱 번째, 1993년 경 여덟 번째 팬데믹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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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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