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3.3.31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 글쓴이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
민음사
콜레라에 대한 사랑 전체에 대한 독후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영역을 개척했다고 일컬어지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3년 후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궤도에서 벗어난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소설이다. 발표 직후에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대체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나는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평가할 능력이 없기에 읽은 느낌 몇 가지만 정리해본다.
우선은 소설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플로렌티아 아리사에 관한 생각이다. 그는 십대 후반 시절 우연히 마주친 한 소녀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그의 오랜 구애를 결국 타의에 의해 깨어지고, 50년이 넘는 절절한 바라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50여 년이 흐르고 결국은 그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아마 이 소설의 낭만적 성격을 강조한다면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50년이 넘도록 불씨를 지펴온 사랑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의 주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마음 먹는다’는 부분에 따옴표를 쳤다.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사랑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는 페르미나 다사라는 여인의 무엇을 사랑했을까? 사랑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 하지만,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사랑에는 ‘때문에’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없다. 그저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이것도 ‘때문에’에 해당하는가?)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좌절 후에도 그녀를 평생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그녀를 계속 바라본다. 한 여인의 모든 것을 이상화시켜놓고, 그것을 찬미하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는 페르미나 마사를 사랑했다고 하지만, 그의 사랑에는 페르미나 마사라는 현실의 여인이 없었다. 이건 병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이 사랑을 찬양했다기 보다는 이 병적인 집착을 풍자했다고 본다.
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622번이라는 황당한 숫자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만남도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욕정 때문이었고, 분명한 범죄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룻밤을 함께 한 여인이 남편에게 살해되도록 했고, 하녀를 강제로 임신시키고는 그녀의 애매한 연인의 짓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보호자로 위임받은 소녀를 1년 동안 정성을 들여 ‘연인’으로 만들고(무려 60살에 가까운 나이 차이!), 페르미나 다사와의 관계가 시작되자 무정하게도 관계를 끊어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겨운 애정 행각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반 세기가 넘는 사랑의 기다림을 아름답게 그리고자 했다면 이처럼 역겨운 행보를 자세히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 이 사랑의 병적인 측면을 보여줬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어떤가? 그는 분명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남미의 상류 계층을 상징한다. 과거의 유산이면서 현대성을 동시에 갖는, 어쩌면 혼종의 인간이다. 그의 결혼 생활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1권에서는 거의 그렇게 보인다),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어쩌면은 절박했던 외도는 그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페르미나 마사의 대응은 현실적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과정은 너무나도 부르주아적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은 없다. 역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비꼬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을 사랑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그 사랑을 도구화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 내지는 풍자로 읽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소설 첫머리의 늙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망명객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얘기와 맨 끝에 수십 년을 연인 관계를 이어온 노인 커플이 배에서 노에 맞아 살해되는 얘기를 의미심장하게 읽었다. 이 소설가가 노인의 삶, 노년의 사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비록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사랑은 병적이었지만, 70, 80이 되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콜레라는 1권에서도 배경이었다. 그 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히 구시대적이지만, 후베날 우르비노만이 현대적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남녀의 관게에 대한 생각, 노인에 대한 생각, 폭력에 대한 생각 등이 그렇듯이. 2권에서도 콜레라는 플로렌티아 아리사와 페르미노 마사의 사랑(?)을 감추어주는 중요한 속임수와 영원한 도피(그럴 수는 없겠지만)의 도구가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그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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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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