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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이름, 묘호
글쓴이
임민혁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7.6 (5)
ena

태정태세문단세...’



요즘도 이렇게 외우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 순서를 외우고 있었다. 말하자면 필수 암기 목록 같은 거였다. 당시에는, 그리고 꽤 오랫동안 이게 그저 조선 임금의 이름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임금이 죽은 후에야 붙여지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정도였다. 이 이름에 어떤 의미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임민혁의 왕의 이름, 묘호는 바로 그 태정태세문단세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읽기는 그리 쉽지 않다. 전문적인 용어, 그것도 한자를 쓰고 있으면서 친절하게 풀어주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몇 가지 궁금했던 것도 해소할 수 있었고, 또 처음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우선 태정태세문단세가 묘호(廟號)라는 점이다. 국왕들을 부르는 이름은 무려 열 가지나 된다고 한다. 아명(兒名)에서부터 존호, 시호까지 참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여기서 간단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인 묘호는 국왕이 죽은 후 (조선에서는) 대신들이 논의를 거쳐 3개의 후보를 정하면 새 임금이 낙점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임금이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으면 재의를 요구하기도 햇고, 그 의미라든가, ()를 쓸 건지, ()을 쓸 건지에 대해서도 갈등이 컸다.



 



임금 이름에 을 달리 쓴 까닭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꽤 오래 전에 은 적장자 계승인 경우, ‘는 정통성이 좀 떨어지는 경우(, 적장자 계승이 아닌 경우)에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만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 하여 조에는 공이 있는 경우, 종에는 덕이 있는 경우에 쓰는 말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조는 나라를 세우거나, 커다란 위험으로부터 구해낸 공이 있는 경우, 공이란 나라를 평안히 다스린, 수성의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매우 애매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치열한 업적 평가가 있었다.



 



그러다 조가 종보다 더 권위가 높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도 극적인 상황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게 더 큰 평가를 받는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래서 로 바뀐 사례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조다. 원래는 선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대신들이 선조로 칭할 것을 건의하고 광해군이 받아들여 선조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상당한 비판과 논쟁이 있었다. 이 말고도 영조가 그랬고(영조는 살아 있을 때부터 자신의 묘호에 영()자를 쓰라고 했다고 한다), 순조 역시 그랬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정종에 관한 일이다. 조선의 2대 임금이라고 알고 있는 정조는 오랫동안 묘호를 받지 못하고, 공정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고, 오른 후에도 임금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2년 만에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태종에게 넘겨주었던 정종은 (아마도) 태종의 종통에 관한 의도, 혹은 음모 때문에 묘호를 받지 못하다 300년이나 지난 후에야 숙종 때에 이르러 묘호를 받게 되었다.



 



한 가지 웃픈 일도 있다. 사실 제후국을 자처했던 조선(고려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원 지배 이전에는)이 조종의 묘호를 쓰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 것이었다. 그것을 조선의 사대부들은 잘 인식하고 있었다 한다. 그럼에도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쓰고 있었고, 중국에서도 그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늘 그걸 마음 한쪽 구석에 찜찜함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의 장군이 개인적으로 문제 삼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명나라가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황제가 추궁을 하면 어찌 할 것인지 무척 고심하였고, 예상 답변까지 작성하면서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그런데 정작 명나라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청나라는 아예 이에 대해서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묘호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엄격히 말하자면 탁상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선대에 대한 업적 평가를 바탕으로 한 것이란 점에서 전혀 필요없는 일은 아니었다 볼 수 있다. 국가의 자존심이란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하다. 물론 그게 너무 형식적인 측면에서 치우치게 되고, 또 역사를 왜곡하는 방편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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