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3.11.29
세계 끝의 버섯
- 글쓴이
- 애나 로웬하웁트 칭 저
현실문화
제목과 부제를 함께 보면서 이게 과연 성립하는 것인지가 의아했다.
제목은 ”세계 끝의 버섯“이라고 분명 ‘버섯’을 이야기하는데, 부제는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다. 버섯과 자본주의라... 게다가 삶의 가능성이라... 아무래도 이건 뭔가 속는 느낌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애나 로웬하웁트 칭) 소개를 보면, 중국계임에 분명한 이 저자의 정체는 인류학자다. 그런데 그런 이력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보면 ‘마쓰타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했다고 나온다. ‘마쓰타케’. 익숙한 이름이다. Matsutake. 송이버섯을 이른다.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이 학명(Tricholoma matsutake)가 되었고, 영어 이름이 되었다.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송이를 일컫는 공식 용어다. 그건 그렇고, 인류학자가 송이버섯과 무슨 관계가?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내 얘기부터 좀 해야 할 듯하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버섯의 분자 분류다. 송이버섯과 같은 갓 달린 버섯(주로는 주름버섯이라고 한다)은 아니고 나무에 달려, 나무를 부식시키는 버섯들(주로는 민주름버섯)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송이버섯과 같은 버섯도 분석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주치는 matsutake라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꺼림칙했다(그뿐만 아니다. 백두산에서 나는 버섯에 대한 논문에는 Changbai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백두산을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 장백산을 일컫는다). 학위를 받고는 버섯, 혹은 균학(mycology)을 떠나 오랫동안 세균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대로 버섯 얘기가 나오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인상 깊고 놀라운 점은 송이버섯과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논의가 매우 잘 연결된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자본주의란 흡입력이 너무나도 강한 제도(존재? 뭐라 규정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라서 모든 것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과연 버섯, 그것도 송이버섯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역시 송이버섯도 자본주의의 고리 안에 버젓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칭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국제 무역의 강고한 고리를 이루고 있다.
저자가 가장 많이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숲이다. 칭은 그곳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송이버섯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채취한 송이버섯이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 귀중한 상품으로 변모하는지를 분석한다. 그 과정은 매우 비자본주의적인 사람들이 지극히 자본주의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 사람들은 동남아에서 떠밀려 온 이들도 있고, 백인들도 있다. 그들이 누구든 자본주의의 질서에서 벗어난 듯 절대 벌어날 수 없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칭은 그들의 작업을 세심히 관찰하고 분석하고, 또한 일본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결시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물론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고, 극복은 더욱 더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이 단순한 한 자연 생산물을 두고,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저자 고유의 용어도(이를테면 패치니, 구제니, 심지어 번역이라는 용어까지), 끝까지 낯이 익지 않다. ‘교란’이라는 용어도 숲의 교란으로 송이버섯이 자랄 수 있다는 데까지는 쉽게 이해 가지만(그런 현상 자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참 낯선 것이긴 하다), 그것을 자본주의나 세계 등으로 확장하면 쉬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공감이 가고 쉽게 읽히지만, 관찰을 넘어서서 관계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면 쉽지 않다. 그런 익숙하고 공감 가는 장면들과 낯이 선 분석을 오가며 읽으면서 세계가 이렇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무너졌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공고하다고 여기든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관계’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깊게 생각하게 된다.
”송이버섯에게 필요한 것은 숲의 역동적인 다종적 다양성,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오염시키는 관계성이다.“ (85쪽)
”8세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왔고 숲을 베었다. 소나무 숲은 그런 산림 벌채 이후에 갑자기 생겨났고, 그와 함께 송이버섯도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송이버섯 냄새를 맡았고, 그러면서 고국을 생각했다. 그것이 첫 번째 노스탤지어이고 송이버섯을 향한 사랑이다.“ (101쪽)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