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4.2.11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 글쓴이
- 로버트 파우저 저
혜화1117
소설가 줌파 라히리가 영어 대신, 벵골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글과 책을 썼다고 했을 때, 떠오른 이가 있었다. 바로 로버트 파우저. 그는 미국인으로 한국어로 글을 쓴다(아, 그는 영어와 한국어만 하는 게 아니다. 저자 소개에 언급된 언어만 해도 8개 언어를 공부했고, 그밖에 한문, 중세 한국어 등도 익혔다고 되어 있다). 이미 한국어로 쓴 『외국어 전파담』과 『도시 탐구기』를 읽은 바 있고, 그의 한국어 실력이 어떤 어색함을 느낄 정도를 넘어서 많은 한국인보다, 또 적지 않은 저자보다 낫다는 걸 확인한 바가 있다. 『외국어 전파담』은 ‘외국어’가 전파되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었지만(꼭 그런 내용은 아니었지만), 미국인이 쓴 우리말 책이라는 증폭된 호기심으로 『도시 탐구기』를 마저 읽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로버트 파우저라는 저자에 대한 믿음으로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를 골라 읽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세계 각지의 도시를 탐구한다. 탐구는 전반적인 도시 탐구가 아니라, 역사적 경관(historic landscape, 저자도 쓰지 않은 영어를 굳이 쓰는 이유는 ‘역사적 경관’이라는 용어의 낯섦 때문인데, 이렇게 영어로 쓰면 좀더 익숙한 느낌이 든다. 원래 외국에서 온 개념이라서 그런 걸 거다)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경관을 각각의 도시들이 어떻게 보존하고, 복원했는지를 탐구한다. 과정을 살피고, 주도한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그 생각은 어떻게 이어지고, 왜곡되었는지, 그 이면에 숨은 의도와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그가 탐구한 도시는 동서양을 넘나든다. 물론 그가 잘 알지 못하는 도시를 용감하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가 살거나, 최소한 자주 방문했던 도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의 교토, 나라, 히로시마, 중국의 베이징, 한국의 경주, 전주, 서울. 미국의 윌리엄즈버그, 찰스턴, 뉴올리언스, 샌안토니오, 뉴욕. 유럽의 로마, 베를린, 드레스덴, 런던, 파리, 빈. 그리고 동서양 사이의 이스탄불이 그 도시들이다. 동양의 도시와 서양의 도시를 묶기도 했고, 혹은 유럽의 도시들끼리, 아니면 미국의 도시들끼리 묶기도 했다. 그렇다지만 그 묶음이 그다지 의미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각각의 도시의 모습을 따로 생각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그 묶음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독일의 드레스덴이다).
각 도시들이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려고 본격적인 시도를 한 것은, 약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현대에 들어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혹은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아니면 국가의 의도적인 방향 설정으로. 누가 주도했는지도 조금씩 다르다. 개인이 주도한 경우도 있고, 기업이 주도한 경우, 사회단체가 주도한 경우도 있으며, 어떤 경우엔 누가 주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그런 흐름이 형성되기도 했다. 지방 정부나 국가가 나서서 역사 보존에 힘을 기울인 사례도 있다. 어떤 것이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공존했다(공존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역사를 보존하려는가, 하는 것이다(이 문제의식은 로버트 파우저가 지은 책 제목에서부터 잘 나타나 있다). 누구든 ‘무엇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왜’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하지만 ‘무엇을’이나 ‘어떻게’에 비해서 ‘왜’라는 고민의 산물을 잘 드러나지 않고, 또 잘 잊히며, 왜곡되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그 ‘왜’라는 문제의식을 늘 원래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변형된 문제의식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면, 비판의 잣대가 엄정하게 들이대져야 마땅한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는 각 도시의 생성과 발전, 쇠락을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 영광의 순간, 쇠락의 모습을 현대에 복원하고 보전하려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지나친 비판의 말은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 과정과 모습,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도 다양하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다만 히로시마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시각을 갖고 있다). 서문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 테마 파크처럼 변하는 과거 역사의 보존 현장이 마땅치 않지만,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또 나 역시 즐기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물론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과거를 보존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지는 끊임없는 토론의 대상이다. 그게 위에서 결정되고, 한 방향으로만 전달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 책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책에 담긴 많은 사진 자료다. 그것들을 여러 차례 들춰보기만 해도 이 책은 충분히 아릅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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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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