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리뷰

ena
- 작성일
- 2016.3.22
성격의 탄생
- 글쓴이
- 대니얼 네틀 저
와이즈북
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은 이른바 성격의 다섯 특징인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 어떤 것이며, 그 각각이 진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격에 대한 연구가 관심을 받고, 재미있어지고,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진화’와 연관되기 시작한 것이고, 하드웨어적으로는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PET라든가 fMRI 등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성과를 통해 ‘성격’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네틀의 기본적인 관점은 우선 ‘성격이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성격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내게는 익숙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고,또 어떤 이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어찌 생각하든 성격을 ‘진화’와 관련짓는 관점은 사람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유용하고도 너그러운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성격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고 개인의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적응되어온 것이라는 얘기다. 즉, 어떤 성격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현재는 어찌 되었든) 그것이 유용했던 시절 혹은 상황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보기에는 다른 성격보다 덜 유용해보이는 성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럴만한 ‘진화적’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를테면, ‘외향적인 성격’이 사회적으로든, 번식 가능성의 문제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혜택과 비용’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것이 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지 환경이 황폐해지거나 급격히 변하는 곳에서는 가능한 보상을 찾고 추구하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 자연선택되지만, 자원이 풍부하고 환경이 안정된 것에서는 활동적인 성향은 불필요하고 위험한 기질이 되며, 더 진중한 사람이 더 잘 산다고 주장했다.” (126쪽)
당연하지만, 이러한 균형은 외향성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성’에도, ‘성실성’에도, ‘친화성’에도, ‘개방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신경성’을 보면,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 즉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은 우울증에도 걸리기 쉽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데도, 현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높은 신경성 수치는 도대체 왜 존재하고 있는가? 네틀이 제시하고 있는 견해는 분명하다. 과거에 그것은 분명히 유리한 성격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살던 환경에서는, 신경성 수치가 너무 낮으면 사망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생존과 번식에 불리했을 것이다. 환경이 가혹하고 집단 내부 또는 집단 간 경쟁으로 인해 상당한 위협이 존재할 때는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 (153쪽)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필요한 성격이다.
“재미있는 것은, 직업의 성공과 성격의 영향에 관한 광범위하고 영향력 있는 한 연구에 의하면, 신경증은 놀랍게도 직업의 성공과 (약하지만) 플러스 상관관계가 있었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사고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의 경우엔 더욱 그랬다. 즉, 신경성은 세일즈나 육체노동이 아닌, 사고능력을 요하는 분야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157쪽)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는 다른 성격 특성에 대한 네틀의 견해는, 그렇다면 그것은 유전적인 것인 것, 환경적인 것인가에 대한,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현재에도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본성(Nature)과 양육(Nuture) 논쟁이다. 기본적으로 네틀의 견해는 ‘유전적 요인’이 성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같다.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의 극단의 태도를 취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본성’ 쪽에 기우는 것이 네틀의 견해이고, 많은 진화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한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유전, 태아환경, 출생 후의 환경 등은 성인이 되기 훨씬 전에 우리의 바람과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성격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265쪽)
그러나 그렇게만 서술하고 책을 마쳐버리면 원가 헛헛하다. 그래서 마지막 장(chapter)의 제목은 ‘성격은 바꿀 수 있을까? 성격의 이해와 극복 방법’이다. 여러 ‘당연도사’ 말씀과도 같은 얘기들이 있지만 그래도 새겨들을 만한 것은 성격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순방향적’ 해석이다. 그것은 저자가 쓰고 있는 가장 안타까운 점인 다음과 같은 것과 연결된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에겐 좋지 않은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객관적으로 긍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어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략)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가장 큰 사람(신경성이 높은 사람)은 그렇게 할 능력이 가장 적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가장 적은 사람(외향성이 높은 사람)이 오히려 그렇게 할 능력이 가장 크다” (276쪽)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그것은 억지로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격이 가진 의미와 장단점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자각이다.” (282쪽)
성격? 아무렴 어떨까?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평생 가지고 갈 성격인 것을. 그러나 그 성격을 이해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얼마나 차이가 클까? 그러니 ‘성격’보다 ‘성격에 대한 이해’. 그게 더 중요하다.
(2010년 2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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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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