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7.1.1
흑사병시대의 재구성
- 글쓴이
- 존 켈리 저/이종인 역
소소
딱딱한 역사서로 예상을 하고 좀 시간이 나면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책이다. 연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집어 든 책인데, 웬걸 무척 잘 읽히는 책이다.
중세 시대 유럽 인구의 1/3에서 절반 가까이를 몰살 시켰던 질병에
관한 책이니 내용이 밝을 수도 없고, 가벼울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비극을 서술해가는 방식이 딱딱하지가 않다.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고, 가끔씩은 무채색의 무거운 유화를 감상하는 기분이 아니라 가벼운 톤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수많은 죽음을 기록한 이 책이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죽음과
죽음을 불러온 질병과, 그 질병을 일으킨 세균,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사회의 흐름을 서술하는 방식이 경쾌할 뿐이다. 그런 경쾌함으로 책장을 쉽게 쉽게 넘길 수가 있다.
흑사병, 즉 페스트는 Yersinia pestis라는 세균에 의한 질병이다. 쥐를 통해 인간에 전달되었지만, 정확히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서
전달되는 질병이다. 지금에야 사망률이 어느 정도 낮아지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14세기 중세 시대에는 감염이 되었다 하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감염병이다.
역사에서는 흑사병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에도 대규모로
전파된 흑사병이 있었다. 하지만, 대문자로 기록하는 흑사병
시대는 14세기, 그것도
1340년대의 유럽이다. 논란이 있지만, 아시아
스텝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흑사병은 유라시아 초원을 거쳐 1346년 흑해 연안의 항구에 도착한다. 이후 무역선을 타고 시칠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항구와 도시로 급속도로 전파된다. 거의 모든 유럽 지역을 초토화한 페스트균은 단 몇 년 동안 유럽 인구를 거의 절반 가까이로 줄여놓고,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존 켈리는 그 시대 흑사병의 원인과 전파에 대해서도 쓰고 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그 시대에 여러 사람들이 남긴 연대기를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애매하게
한 지역의 몇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는 식의 무미건조한 서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감염되어 죽어갔는지, 그들이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떻게
인간성이 황폐화되었는지, 얼마만큼 영웅적으로 대응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서 생생한 역사서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엄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황폐화에 주목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인간성의 추악한 면은 흑사병 시대 말고도 흔하디 흔했다.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유럽 군주 가운데는 단 한 사람만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도 그리 인상 깊지 않다. 흑사병에 대해 이러저러한 분석을 내세운 저명한 의사가 정작 환자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났다는 서술에도 그리 분노하지
않는다. 고위 성직자가 장례식을 집도하지 않고 수도원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에도 특별히 비웃을
필요도 없었다. 무지 속에 영문도 모르고 하루이틀 만에 저 세상으로 떠나야 했던 이들, 희생양으로 지목되어 화형당해야 했던 유대인들이 특별히 불쌍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 시대를 이 역사 말고도 그런 상황은 수도 없이 증언되고 있으니 이 역사에서 특별히 분노하고, 특별히
비웃고, 특별히 감탄해 하고, 특별히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꾸 뒤가 밟힌다. 이런 질병의 역사에도 보편
역사를 읽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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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10
- 작성일
- 2017. 1. 8.
@나우시카
- 작성일
- 2017. 1. 31.
- 작성일
- 2017. 1. 31.
@simplemen
- 작성일
- 2017. 1. 31.
- 작성일
- 2017. 1. 31.
@chuki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