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 Naver 오늘의 책

구르믈버서난달처럼
- 작성일
- 2007.3.7
1943년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태어났다.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에콜 드 민에서 토목공학을, 시앙스포에서 정기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최고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1972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 고문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했고, 1981년 사회당 정부의 집권 이후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직을 지냈으며, 현재 컨설팅 회사 아탈리&아소시에(Attal & Associes) 대표이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활동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빈민구제 국제기구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 '다갈라 불망비'로 등단했다. 1974~198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간사와 이어서 1989년까지 <실천문학>의 대표로 일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발병으로 중도하차하고 2003년 2월 25일 타계했다. 문학동네 촌장으로서 문단 통합 활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문학적 성가를 모두 인정받아 문단의 3단체가 사상 초유로 합동 장례식을 치렀으며 정부에서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말 계간<'현대사상>과 2000년대 영화주간지 <씨네 21>의 고정 필자로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도 꽤 많은 열혈독자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학교 즐거운 학교' 등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도 글을 싣고 있다. 저서로 <책> <서양문명의 기반> <책과 세계> <삶은 우리를 배반한다> <장미의 이름 읽기> 등이 있다.
1945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자랐다. 1967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워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터프츠대학교 플레처스쿨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세계 500여 대학교에 초청돼 그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1994년부터 워튼스쿨 최고경영자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부 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유수기업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Economic Trends 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공공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계몽운동 및 감시활동도 펼치고 있다.
1970년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한 빵집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대학 3학년이던 1993년, 계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1994)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선회했다. 장편 소설 <?A빠이, 이상>(2001)으로 제14회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2)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로 제13회 대산문학상을 받았고, 2005년 문화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번역한 책으로 <젠틀 매드니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등이 있다.
1900년 영국 서머셋 웰스에서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기숙학교를 거쳐 리딩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졸업한 후에는 미술과 디자인을 가르쳤다. 작가로서 처음 쓴 글은 희곡이었으며, 첫 작품 'The Bront?s of Haworth'가 런던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두 번째 희곡을 썼으나 실패하자 출판업자의 권유로 소설로 방향 전환했다.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린 첫 작품은 'Green Dolphin Country'(미국에서는 'Green Dolphin Street'로 출간). 작품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큰 성공을 거두어 '문학 동업조합상'을 수상했으며 1947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했다. 1984년 4월 1일 별세.
중국인들이 덩샤오핑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덩샤오핑의 국가경영과 리더십을 꼼꼼히 분석한다. 시장경제를 과감히 도입한 그의 리더십은 '사회주의=빈곤'이라는 공식이 틀렸음을 깔끔하게 증명했다. 그럼, 지도자의 의지 하나만으로 이같은 발전이 가능했을까? 강력한 의지가 있었더라도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성공의 이유는 '밀어붙이는 정치' 대신 '설득하는 정치'를 추구했기 때문. "덩샤오핑의 업적과 한계를 두루 다뤄 그가 발휘한 리더십의 큰 그림을 보여"준다.
1955년생. 경희대에서 '두레 연구'로 문학박사(1차), 고려대 문화재학과에서 고고학과 민속학 협동 연구로 박사(2차) 과정을 수료했다. 경희대 박물관 연구원, 현대미술연구소 연구원을 거쳤으며, 역사민속학자로서 여러 대학에서 한국민속학, 민속예술론, 북한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사)우리민속문화연구소 소장,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재)해양문화재단 이사, 통일문화학회 공동대표, 문화관광부 남북문화교류위원, 한국역사민속학회 이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해양문화 및 북한문화 전문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일산에 정발학연(鼎鉢學硏)을 세우고 우리 문화의 원형을 탐구 중이다.
1942년 경남 김해시 진영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서라벌예술대학을 거쳐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원을 수료했다. 월북한 공산주의자를 아버지로 둔 멍에를 문학적 화두로 승화하여 다수의 관련 작품을 썼다. 1966년 '1961·알제리아'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1967년, 장편 <어둠의 축제>로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본격적 창작을 시작했다. 1974년 <바라암>으로 현대문학상을, <노을>로 제4회 한국소설문학상과 제4회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소설가 김원우와는 형제 사이.
1967년 생. 국립 타이완대학 외국어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마치고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타이베이로 돌아와 컬럼비아 영화사의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하며 전형적인 화이트컬러 직장인으로 지냈다. 그러나 문학 창작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시나리오와 단편소설을 써, <天使>(천사)로 우수 시나리오상을, <舊金山下雨了>(샌프란시스코에 비가 내리면)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蛋白質女孩>(단백질 소녀)를 연재,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현재 타이완 MTV의 부사장을 맡고 있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도 하고 있다.
1946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전남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학점 미달로 4학년 때 제적. 고향으로 내려가 농촌현실을 고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쓰다, 1974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는다. 9년 복역 후 1988년 12월, 43살의 나이에 가석방조치로 출소하였다. 출소 한 달여 만에 옥바라지를 해온 박광숙씨와 결혼해서 아들 토일이를 두었다. 1991년 제9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았으며, 1994년 2월 13일 새벽 2시 30분 췌장암으로 별세하였다.
1915년 10월 17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1928년 브루클린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청년기를 보낸다. 고학으로 미시간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뉴욕에서 생활을 위해여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여가에 희곡 창작을 계속했는데, 2차 세계대전 중 군수산업의 경영자와 아들의 대립을 다룬 전쟁 비판적 심리극 'All My Sons'(1947)로 비평가 및 관객의 절찬을 얻었다. 1949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956년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으나 4년 뒤 이혼했다. 2005년 2월 10일 별세.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불멸의 성공기업들을 파헤친 명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의 공저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HP와 맥킨지에서 근무했다. 모교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의했으며, 정열적이고 창조적인 내용의 강의로 대학으로부터 '명강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콜로라도 볼더에 'Management Lab'이라는 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저술과 컨설팅에 몰두하고 있다.
1949년 칠레 태생. 피노체트 정권에 항거해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되었으며, 출감 후 유네스코와 그린피스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생태와 소수민족보호 문제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작가로서는 단편, 중편, 희곡, 시, 라디오 드라마,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사회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세상 끝으로의 항해>로 '후안 차바스'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 독일 NDR 방송국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외국인 작가상, '띠그레 후안' 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23세부터 망명생활을 시작해 1980년부터 독일에서 거주하다가 1997년 이후로는 스페인에 정착해 살고 있다.
1948년 유대인인 부모의 망명생활 중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생. 195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에서 성장. 히피문화와 언더그라운드 만화운동의 영향으로 전위만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1960, 7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 1980년에는 아내 프랑소와즈 몰리와 그래픽 매거진 'RAW'를 창간해 <쥐>를 연재,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1992년 만화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 <뉴요커>의 표지와 만화 작업에 참여하는 등 만화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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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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