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2011

뻑공
- 작성일
- 2011.10.7
연애, 하는 날
- 글쓴이
- 최인석 저
문예중앙
사랑 : [명사]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
연애 : [명사]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
두 개의 단어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뭐가 다르다는 말이지? 사랑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고, 연애는 그 좋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사전 검색을 해보니 사랑과 연애를 비슷한 단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완전히 같지도 않고 전혀 다르지도 않고 ‘비슷한’. 어디까지나 개인이 알아서 표현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이 두 개의 단어의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이 아닐까 나 혼자 추측해본다. 두 가지 단어 중에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사랑과 연애는 달콤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좋은 의미만 갖다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연애를 조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무언가로부터(어쩌면 그 무언가는 분명한 현실일 테지만) 피해가기 위해 선택한 것이 연애라는 듯이, 별 의미 없이 그 순간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식의 누구와의 연애도 가능하다는 듯이. 뒤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해보는 연애를 사랑으로 생각하는 여자인 유부녀 수진, 연애를 밥 먹듯이 상대를 갈아치우면서 하는 장수, 그가 방식은 회계장부의 대차대조표를 써 내려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얽혀있는 몇 명의 인물들. 이제 그들은 서로가 생각하는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연애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끝장을 한번 보자는 것인가?
은밀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불륜이니까.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는 수진은 장우를 만나 연애를 하고 사랑을 느낀다. 장우 역시 유부남이다. 그러나 장우에게 수진과의 은밀한 만남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익숙하게 그래왔듯이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가 계획하고 계산하는대로 장우의 연애는 계속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끝나기도 한다. 그가 했던 말 그대로, “뭐든 다 끝나기 마련이잖아.” 그들이 마련한 장소는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이월의 방’이라 불렀던 장우가 마련한 오피스텔. 집이 아닌 그냥 장소일 뿐인데 수진은 그곳을 집이라 착각한다. 왜? 자신이 장우와 그냥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장우를 사.랑.하.니.까. 아니, 사랑한다고 생각하니까. 장우 역시 그 방에 드나든다. 그가 원할 때만. 그는 사랑이 아닌 그저 나누고 싶은 게 있을 때만 수진을 원한다. 수진의 몸을, 수진의 마음을, 수진의 웃음을. 그리고 분명한 대가를 치른다. 돈으로. 그런 은밀함 속에서 그 둘이 꿈꾸는 게 무엇일까. 전혀 다른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만나는 그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기에 그런 만남을 계속 하는 것인가.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살았던 사람들이 ‘진짜 연애‘가 주는 달콤함을 모른 채 만나서 하는 일들. 그들이 하는 연애는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을 품어주는 것이 아닌 서로를 할퀴고 상처 내는 법을 전달하는 연애다. 구질구질할 것 같은 장소에서 밝은 웃음으로 그저 행복함을 내보이는 수진을 빼앗듯 연애를 시작한 장우, 어느 순간 아이들의 땀 냄새도 익숙하게 다니던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도 구차해지는 순간이 와서 시작한 수진의 연애.
무언가 조금씩 자꾸만 어긋난다. 결국은 도피를 목적으로 시작한 연애가 모든 것의 끝을 가져온다. 연애가 연애다워야 하는데 자꾸만 기대게 되고, 한쪽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기울어져 그 부담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서로의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흐트러진다. 분명 두 사람 모두 도피로 시작한 연애가 맞다. 계산법은 조금 달랐을지 몰라도 그 목적은 도피였다. 연애가 가져다 줄 그 잠시의 회피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로 잴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경우 모든 것은 그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 특히나 마음의 경우 더더욱. 수진과 장우는 서로의 몸을 원하는 찐한 연애는 가능했는지 몰라도, 연애 그 자체의 고유함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연애를 지켜보면 우울해진다. 연애와 비슷하다는 사랑인 건지, 잠시 즐기던 도피이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래도 이들이 했던 연애는 우리가 꿈꾸고 그리워하고 애틋해했던 연애는 아니었다는 것, 그건 분명하다. 이미 제목에서 그 달콤함이 없다는 것의 복선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애 하는 날’이 아닌 ‘연애’, ‘하는 날’이었으니까. ‘연애’와 ‘하는 날’이 따로였다. 무엇이 ‘연애’이고 무엇을 ‘하는 날’인지는 알아서 찾아 읽어보고 판단하면 될 일이다.
은밀한 이들의 연애가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읽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역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런데 멈출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 이들이 한다는 연애를 끝까지 봐주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나는 이들이 하는 ‘연애’라는 연극을 보는 관객일지도 모르니까. 그 끝을 같이 보고 객석에서 일어나고 싶어진다. 이 지랄 맞은 세상에서 그렇게 연애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아무도 안 봐주면 안 되잖아.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지금 하고 있는 사랑들이 진짜 사랑(연애)이 맞나?‘ 하고.
“뭐든 다 끝나기 마련이잖아.(308)”
이 책을 읽다보면 이 문장이 두 번 나온다. 그런데 나는 이 한권의 책에 이 문장만 가득차 있는 기분이 든다.
- 좋아요
- 6
- 댓글
- 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