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2012

뻑공
- 작성일
- 2012.1.29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글쓴이
- 넬레 노이하우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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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기적인 집단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이기적 집단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한 명의 개인을 넘어서서 하나의 무리를 가장하여 가장 돈독한 집단으로 만들 수 있는 집단 중의 기본은 가족이라고. 그럼, 그 다음 차례의 이기적 집단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학교? 직장? 나라? 우습게도 이 책에서 그런 이기심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 전체와 그 마을에서 지내고 있는 개인 각자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이기심의 최대를 그려내고 있었다.
독일의 한 작은 마을 알텐하인. 여학생 두 명을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10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했던 토비아스가 출소 후에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의외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토비아스는 마을에 남아있는 아버지를 봐야만 했다. 그리고 막상 아버지와 자신이 살던 집을 보던 토비아스는 아버지를 만나고 마을을 떠나려 했던 자신의 계획을 수정한다. 엉망이 된 삶의 터전과 10년 사이에 너무 늙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자신이 저질렀다는 범죄의 기억. 집안을 정돈하고 10년 전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토비아스는 환영받지 못하는 그 마을에 머문다.
토비아스가 마을로 돌아오던 그 순간부터 마을을 뒤숭숭해진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자의 재등장은 마을을 공포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나, 그보다도 더한 것은 진실을 알고 있는 자(결국은 진실을 숨긴 자)에게 다가오는 숨 막히는 공포다. 언제 터질지 몰라서 단 한 사람(토비아스)만이 사라지면 다시 조용한 마을로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계속 유지해온 그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모한 짓을 저지른다. 원래 진실을 숨기는 자는 그런 것이다. 하루하루, 매 순간이 숨이 막히게 죄어오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공포를 차단하고자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일도 대책 없이 저지른다. 때로는 그런 오류들 때문에 진실을 드러나기도 하고.
배려와 호의를 가장한 이기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다양한 이유로 그 이기심을 드러내면서 방관자이자 살인자가 된 사람들이다.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쥐고 흔들어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는 사람도 있었고(“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내리기 힘든 결정을 대신 해주고 그들의 보잘것없는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아주 좋아합니다. 전체 그림을 볼 줄 알고 필요할 때 조치를 취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납니다.”),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 말하면서 무모하고 집착이 되어버린 지나친 사랑으로 한 청년의 지난 10년을 지켜보면서도 절대 침묵으로 진실을 은폐한 여자(“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토비아스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걔가 감옥에 갔을 때도 10년간이나 기다렸고요. 감옥에서 나온 토비가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내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했어요. -중략- 토비는 날 여자로 보지 않았어요. 그저 항상 옆에 있는 존재에 불과했죠.”)도 있었다. 사랑이 아닌 집착을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그녀가 입 다물어버린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누군가의 10년은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 외에도 찌질 하기 그지없고 살인을 하고도 정치적 야망만 눈에 들어오는 남자, 자신의 자식을 위해 다른 이의 인생이 망가져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면이 중요해서 살인쯤은 아무것도 아닌 여자,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한 집안 쯤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식의 마을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는 너무나도 치열했다.
외모를 이용한 권력.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외모가 주는 권력을 알고는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사람에게 눈길 한 번 더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친구네 맥줏집 알바를 우리 친구들끼리 직접 뽑은 적도 있다. 잘생기고 깔끔해 보이고 여자들에게 호감을 끌게 생긴 어린 남학생으로.) 이 책에서 살해당한 두 여학생은 자신의 외모가 다른 사람들(특히 남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고 교모하게 이용한다. 로라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남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고, 백설 공주라 불렸던 스테파니 역시 자신이 가진 외모의 아름다움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결국 그 여학생이 외모를 가지고 부린 이기심의 말로는 죽음이었고 그녀들의 아름다움 역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만약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 뛰어난 외모를 통해 휘두를 수 있는 힘과 이익들은 무시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다른 이가 자신들이 부린 그 술책에 아픔을 느끼는지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면 그만인 것으로 즐기다가 그런 최후를 맞은 것이다.
가해자 = 피해자 = ?
어느 사건에서나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있으면 피해자도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책에서는 토비아스가 가해자로 시작되고, 토비아스가 수감된 후의 10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토비아스와 토비아스의 아버지를 비롯한 그의 가족의 모든 삶이 피해자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생활터전인 레스토랑이 폐허가 되고 집안에는 온기가 없으며, 살인자의 가족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눈초리는 토비아스의 한 명 남은 가족인 아버지마저 집밖으로 나다닐 수 없는 삶을 만들어준다. 그저 살인자의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기억에도 없는 일에 대한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10년 동안의 시간동안(어쩌면 진실이 밝혀진 그 이후에도 계속)을 피해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아무도 풀어내어 줄 수 없었던 진실에 대해 스스로가 나서야만 했던 토비아스와 사사건건 그 진실 파헤치기를 방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고군분투가 볼만 했다. 온갖 비리와 거짓으로 똘똘 뭉친 위선들, 힘 있는 자의 여유로운 권력 휘두르기, 자신을 봐주지 않는 이에 대한 지독한 집착과 다른 동성에 대한 어리석은 질투, 내 안의 것들을 보듬기 위한 진실의 은폐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고방식들을 가진 이들의 행태가 괘씸하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끔찍한 살인사건이었다. 계획하지 않았더라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발적이었다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특히나 이 책 속의 살인자들은 동정하고 이해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그 순간, 그들이 저지른 그 살인의 순간과 동기 역시도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기심이란 것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싶은 궁금증이 들게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심의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 많은 가해자들이 각자의 이기심으로 누군가의 인생 10년을 고통 속으로 송두리째 사라지게 만들었던 것을 피해자는 누구에게, 무엇에게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추리소설이 가지는 흥미진진함과 사건 해결을 위해 독자를 같이 끌어들이는 그 매력이 충분한 작품이었다. 처음부터 살인자를 등장시켜주고 진행되는 이야기의 부분 부분에 과거 10년 전의 시간으로의 여행을 집어넣어준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는 재미는 상당했다. 더군다나 억울한 사람 한명의 인생 기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추리소설이라면 썩 괜찮지 않은가? ^^
피아 형사와 보덴슈타인 수사반장 콤비의 시리즈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첫 번째로 출간되었다. (실제로 원작은 그 시리즈 중에서 이 책이 첫 번째가 아니다.) 보는 눈에 따라 이야기로의 흥미가 조금 느슨해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책을 충분히 즐긴 독자라면 바로 이어서 출간된(우리나라 기준) <너무 친한 친구들>도 바로 집어 들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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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