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2017

뻑공
- 작성일
- 2017.7.10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글쓴이
- 마일리스 드 케랑갈 저
열린책들
단순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장기 기증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기증으로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준다는, 오랜 시간 들어온 문구만을 떠올렸다. 의학의 발달과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 합해져서 이루어내는 기적으로만 생각했다. 그 기적을 행하는 일에 나도 장기 기증을 신청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고민으로 그 생각을 멈추고는 했다.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이유나 의미를 더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 한 편으로 ‘장기 기증’을 두고 여러 사람의 시선과 생각 감정을 읽다 보니, 장기 기증이라는 것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새벽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시몽은 뇌사 상태다. 담당 의료진은 시몽의 부모에게 시몽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더는 시몽의 상태에 변화가 올, 뇌사 상태인 현재보다 더 좋은 경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아드님에게서는 관계적 삶의 기능들이, 달리 말하자면 의식, 감각, 운동성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자율 신경 기능도 마찬가지고요. 호흡과 혈액 순환도 기계에 의존해야만 가능합니다(레볼은 풀어내고, 또 풀어낸다. 마치 증거 누적 방식을 택하기라도 한 것 같다. 그는 정보들을 나열하고, 정보를 하나 푼 뒤엔 반드시 잠깐의 시간을 둔다. 그러면서 어조는 줄곧 상승한다. 나쁜 소식들이 쌓여 가고 있음을, 그것들이 시몽의 육체 안에 빼곡히 들어차고 있음을 나타내는 방식. 어느덧 그의 말이 잦아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멈춰 버리며 느닷없이 공간을 해체하듯 자기 앞에 펼쳐진 허공을 가리킨다).
「시몽은 뇌사 상태예요. 사망했어요. 죽었습니다.」 (116페이지)
죽음의 판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시몽의 부모에게 던져진 날벼락 같은 일에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의료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시몽의 뇌사 상태가 말하는 건 뭘까, 어느 순간 죽음을 선고하는 건지, 하고. 심장이 아니라 뇌가 멈췄을 때 비로소 ‘죽음’을 논한다. 뇌의 주관으로 우리 몸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한데, 그 뇌가 멈추는 순간, 죽음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몽의 몸은 죽은 건가 보다. 기계에 의지해 숨을 쉬고 있지만, 그의 몸을 조종하던 기관의 멈춤으로 그는 숨을 쉬고 있되 죽은 거라는 의미. ‘사망했어요. 죽었습니다.’ 끔찍하고 잔인하게 들렸다. 멀쩡히 눈앞에서 숨을 쉬며 누워있는 아들을 보는 부모에게 내려진 아들의 사망 선고는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시몽의 부모의 감정보다 더 갑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열아홉 살 청년 시몽의 심장 이식 과정이 그대로 전개된다. 새벽에서 하루를 지나 다시 새벽. 꼬박 24시간 동안 흐르는 이야기는 긴박하면서도 차분했다. 누군가의 생명이 다시 살아난다는 열정에 들뜬 만한 순간조차 이성적으로 보였다. 순간순간 많은 질문이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그들 각자의 위치가 너무 달라서 그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지켜볼 때마다 한참을 서성이듯 생각하게 된다. 읽는 내내 ‘나라면?’이라는 물음이 위치를 바꾸며 이어진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고와 죽음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모, 뇌사 판정을 내리면서 더는 살아있지 못하다고 선언하는 의사, 장기 기증을 설명하며 설득해야 하는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시몽의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대기 중인 환자들, 장기 적출을 위해 모여들고 시간 안에 도착하려 다시 뛰는 의료진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시몽의 여자 친구 쥘리에트. 그날 새벽, 자기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서핑을 하러 간다는 시몽을 끝까지 붙잡았다면, 그랬다면 지금쯤 시몽은 살아있을까?
(양쪽 늑골의 아래 부분을 절개하니 복부에 일종의 십자가가 그려진다) 육체는 횡경막을 기점으로 뚜렷하게 두 구역으로 갈라진다. 간과 신장이 있는 복부와 폐와 심장이 있는 흉부. 그다음으로, 절개선에 견인 기구를 갖다 대고 입구를 벌리기 위해 손잡이를 돌린다(여기서는 빈틈없는 기술력에 더해 팔 힘이 요청된다). 그러자 갑자기, 수술의 수작업적 측면이, 이 장소에서 요구되는 현실과의 물리적 대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육체의 내부가, 혼란스럽고 질척이는 내부가 조명 밑에서 붉은 빛을 띤다. (290페이지)
수술대 위에 놓인 공여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과정을 듣는데 괜히 숨을 멈추게 된다. 긴장된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봐야 할 만큼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그대로 느낀다. 시간 싸움. 이렇게 기증된 장기를 아무 실수나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반하여 또 다른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의료진의 노력과 자신감 역시 동반되어야 할 자세였다. 의학적인 견해를 잘 알 수 없는 나는, 이들이 말하는 대부분을 감정적으로 보게 된다. 이식될 장기를 마치 좋은 물건 선점하듯이 말할 때(‘심장은 내가 갖겠어.’ 라던가, 혈관을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애쓰는 모습들)는, ‘감정을 배제한 채로 의술을 행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과 이해를 찾아야 했다. 뇌사자인 시몽이 아니라 시몽의 부모가 그의 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도 옳은 일인가 묻고 싶어졌다. ‘그게 시몽의 결정일까요?’ 어떤 나라에서처럼 운전면허증 발급과 동시에 장기 기증 여부를 표시해두면 이런 혼란이 줄어들 거라는 안심도 드는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그 과정이 복잡해서 많은 사람이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표시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그만큼, 말로 하는 것 이상의 어려움이 있는 행위다.
시몽의 부모가 고민하다가 장기 기증 결정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안전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한 사람의 죽음과 또 다른 사람의 생명 연장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상하지 못한 클레어의 말이었다. 클레어는 심장을 이식받아야 하는 상태다. 이미 한 번 심장 이식이 불발된 경험이 있기에 이번 심장 이식은 꼭 이루어져야 할 터였다.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어깨춤이라도 추어야 할 것 같은데, 의외로 그녀는 담담했다. 차분하게 수술 준비를 하면서, 현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술을 기대하면서도 걱정스러움을 털어놓는다.
지금이야. 오늘 밤이야. 그녀는 통고라는 이 사건을 온몸으로 겪어 낸다. 그녀는 이 번쩍이는 현재의 파편이 표상 속으로 멀어지는 일이 없기를, 그대로 그 잔상이 남기를 바란다. 그녀가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246페이지)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수술이 아니다. 그게 아니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 그것은 그 새로운 심장에 대한 생각이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누군가가 오늘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가 그녀를 침범하여 변모시키고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장기 이식, 접붙이기에 관한 이야기들. 동물군과 식물군). (312페이지)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그녀에게 기회가 왔지만 자기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불안을 떨치지는 못한다. 혹시 이식받은 심장으로 그녀에게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삶을 위해 지금의 수술은 필요하며, 그녀에게 오기 위해 끝난 한 생명의 의미를 받아야만 한다. 비록 언젠가 그녀가 죽을 거라는 순리를 계속 기억하게 될지라도...
숨 막히게 진행되는 이 하루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너무 고요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그렇게 왔다 갔다 했던 일이 다 거짓이었던 것처럼 모든 게 평온해졌다. 현실에서 사라진 시몽의 육체가 서로 다른 곳에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우면서도 이상하고, 따뜻하면서도 슬펐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이렇게 완성되었으나 시몽의 가족은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그의 죽음을 떠올릴 것이기에. 이 소설은 장기 기증이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장기 기증을 둘러싼 많은 사람의 시선을 보게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보는 그대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어느 한 사람의 편에 서서 일방적인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 장기 기증으로 일어나는 많은 일과 과정,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그렇지만 차근차근 풀어낸다. 아직 장기 기증을 두고 어떤 결정이나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많은 사람에게, 더욱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한 분야의 설명을 이렇게 전한다. 동시에 삶과 죽음, 죽음과 애도, 삶의 복원 같은, 인생이 흐르면서 겪게 되는 심오한 감정을 끊임없이 복기하게 한다. 섬세하게 풀어가는 이들의 24시간이 가슴에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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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