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의 소리

샨티샨티
- 작성일
- 2019.2.18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글쓴이
- 고미숙 저
프런티어
노동의 대가로 화폐를 받고 그 돈으로 욕망을 실현하며 사는 일상을 꿈꾸던 20대 중반 딸은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중소기업에 입사하였다. 1년 계약 기간을 채우고 나올 수 있을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곳에서 과중된 업무에 시달리며 부모 도움받고 살던 때를 그리워하는 눈치이다. 놀고 먹을 때는 어떤 직장이라도 들어가면 열정적으로 생활할 자신을 드러내더니 어느 새 못해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월급이라도 많이 주면 상대적 박탈감은 덜하겠지만 이른 새벽 출근길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리 살아도 되는 것인지 회의하는 일상이라니 청춘들의 허탈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듯하다. 엄중한 조직의 규율과 규제에 묶여 월급에 기생해 사는 게 옳은 것인지 회의하면서도 돈벌이를 위해 오늘도 출근 버스에 올랐을 것이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고 가는 인생에서 한 계절을 지나 새로운 계절을 맞으려는 때, 스스로 주인되어 살지 못하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활동을 창안하며 사는 존재를 저자는 백수라고 의미를 규정했다. 놀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배우고, 이를 위해서는 배움을 삶의 질료로 삼아 생성을 위한 변주는 가속화되어야 한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자본으로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 사회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성의 삶은 지혜를 쌓는 일로 귀결된다. 많이 소유하키 위해 과로하기보다는 사적 소유에서 벗어나 공유경제를 활용하는 생활로 나갈 때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대두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을 대신한 로봇이 노동함으로써 일자리를 잃게 되는 현실을 직시하며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관심 있게 봐야 할 사상가로 연암 박지원의 삶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벗과 함께 책 속 내용과 우주 질서에 대한 거대 담론까지 망라하며 공동 지성의 깊이를 더한 지적 향연의 진수를 보인 그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행하며 생의 즐거움을 발견하였다.
'읽고 쓴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가장 통쾌하고 거룩한 일'
이라 말했던 정조는 문장가로 이름난 연암을 견제하면서도 가까이 두고 싶었지만 그는 관료로 조직에 얽매여 기득권을 행사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쓴 양반전에서 보인 양반들의 허세와 무능, 아랫사람들에게 부당한 권력 행사 등을 풍자하였다. 기혈 순환이 잘 안 되고 마음에 담음이 생겨 우울증에 시달리던 청년기에 연암은 밖으로 나와 저잣거리의 상인, 늙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울감을 치유해갔다.
마음을 내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반응하는 사이 리듬을 타는 감응은 관찰한 내용을 기록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한다.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과는 달리 떠남과 머무름을 스스로 주관하며 사는 유목의 삶은 어디에서든 접소하며 우주와 호흡하는 시대에 걸맞아 보인다.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할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공무원 시험 합격을 바라는 이들이 수 없이 늘어나는 때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골방에 갇혀 지내는 수많은 공시족들의 음울한 삶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진다. 연결과 확산으로 표상되는 디지털 시대 욕구를 실현하는 장으로 덮여버린 SNS 접속은 자의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시 지향성으로 드러나는 먹방 사진들에 던지는 좋아요에 탐닉하는 중독을 끊고 스스로 중심을 잡고 사는 삶으로 치환해야 한다.
올해 아흔인 어머님은 우스갯소리로 내 죽으면 소용 없다며 오늘 하루 행해야 할 것들을 악착같이 챙긴다. 먹고 바설하는깊쁨을 누리며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 햇빛 아래 걸으며 길 위에 선다. 정기신을 잘 순환시켜 생명력을 보전하며 사는 양생을 위해 걸으며 생각하고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구애됨 없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은 연암이 형성한 우정의 네트워크에서 공생하는 관계를 가늠할 수가 있다. 백탑 아래 모여 사상을 논하고 함께 풍류를 즐기면서 지적으로 나아가는 배움을 수행으로 여긴 이들의 담론은 리듬을 타고 흐르는 지적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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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