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훔쳐라

황소북스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6.11

“나는 운이 좋은 선수였다.”
2012년 은퇴식 회견장에서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한 말이다.
그리고 다음말도 덧붙였다
“축구선수로서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세 번이나 밟을 수 있었던 것
은 선수로서 누릴 수 있었던 최상이었다. 너무 좋고 행복했다. 축구선
수로 불리우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앞으로 축구를 위해 열심히
봉사할 생각이다. 몸은 2012년이지만 마음만은 2002년이다.”

결국 안정환은 눈물을 흘렸고 기자회견장은 눈물과 웃음이 뒤섞였다.
그리고 2012년 2월 29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 모인 4만 6천여
관중앞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가졌다.

긴 머리를 흩날리며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여자들을 축구장으로
불러 모았던 테리우스 안정환. 한때는 화장품 모델을 했을 정도로 준
수한 외모에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였던 선수. 2002년 16강전에서 이
탈리아를 격침시킨 불세출의 축구 영웅. 당시 우리나라의 김태영 선
수는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을 정도로 경기는 난투극에 가까웠고
이탈리아의 토티는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비에리의 선취골로 한국을 1-0으로 앞섰지만 후반
43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이어갔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접전 끝에 결국 안정환 선수에게 헤딩 골든골을
허용해 이탈리아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안정환은 이 경기에서 커다란 실수를 했다. 전반전에 얻은 행운의
패널티킥을 실축한 것이다. 경기 내내 미안해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회심의 슈팅이 빗나가자 땅을 치며 아쉬워 하는 장면도 포착되어
국민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한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제발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멘트를 수차례 했을 정도였다.

국민들의 바람이 전해졌을까? 그는 극적인 골든 헤딩골을 넣고 반
지에 키스를 해서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코너킥 지역에서 가서는
큰 대자로 누웠다. 그의 몸 위로 선수들의 몸이 겹쳐졌다. 마침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지옥에서 살아나온 영웅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광고 패러디에도 사용된 이 장면은 2002년 월드 컵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
시 이탈리아의 페루자 소속이었던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축구 인생의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팀에 영원히 데리고 있으면서 경기에는 절대로 출전시키지
않고 벤치에만 머물게 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안정환은 주전이 아니었다.
이른바 조커. 어느 날 한 기자가 ‘히딩크 감독에게 섭섭하지 않느냐’고
농담처럼 물었을때 안정환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주전으로 뛰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를 벤치에 앉혀두는 것이
황선홍 선수라면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안정환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그리고 토고전에서
역전 결승골을 넣어 통산 3골로 아시아 선수 중 박지성과 함께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토고전의 골은 의미가 남달랐다.
그건 우리나라가 월드컵 원정에 나선 지 52년 만에 승리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2010년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도 들어갔지만,
아쉽게도 벤치를 지켰다. 경기가 풀리지 않거나 골이 들어가지 않을 때마다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찬스에 강한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16강
우라과이전에 출전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골을 넣었다면?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안정환은 월드컵 3회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자신의 축구 인생이 행운과 행복의
연속이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안정환.
그는 록펠러의 전기를 읽으며 사업가로 성공했고
기부도 많이 했던 그를 닮고 싶다고 했다.
이제 그런 안정환이 축구와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그의 인생 2막이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라면 사업도 성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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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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