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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글쓴이
이반 일리치 저
느린걸음
평균
별점9.3 (15)
파란하루키

 

지금 여기에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분들이 이반 일리치 저작과 사상을 교과서로 삼을 만함을 이번 독서를 통해 확인했다. 휴직 들어오면서 나의 화두도 '현대 사회는 왜 모든 사람을 (국가와 회사에 종속된) '근로자'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인 집에 놀러갔다가 식탁에서 뒹굴고 있는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조만간 읽게 될 듯하다는 예감을 가졌던 바다. 이후 10년 넘게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을 운영하며 이반 일리치 사상을 몸소 실험해보고 있는 저자의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http://blog.yes24.com/document/10515149 를 입수해 너무 의미 있에 읽으면서, 이반 일리치 원 저작 자체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학자'보다 '예언자'라고 지칭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도래할 가까운 미래를 예측해서 읽고 있다. 이 분량 적은 문고본 책자 속 한 문장 한 문장이 2018년 한국에 다녀가 직접 본 모습을 서술했나 싶을 정도다. 저자가 특히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다른 책들을 안 읽어봤긴 한데 비슷한 맥락이리라 추측) 일반인들이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시스템 때문에 일반인들이 자기 삶을 꾸리는 능력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푸코, "감시와 처벌"을 정독했기 때문에 동시대 학자였던 이 둘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품고 있는 위험한 요소들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읽어내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푸코는 순응하는 인간을 훈육하기 즐기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감옥, 공장, 병원, 학교'를 꼽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 공간들을 꾸리는 전문가들에 대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나는 읽었다. 다시 말해 현대에 권력-지식 유착으로 탄생한 소위 전문가들은 권력이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며 부역하고 있다. 이 세밀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술 덕분에 일반인들은 의심 없이 편리함에 적응하고 의존한다. 의존에 익숙해진 인간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고민하거나 공부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누리는 편리함은 그가 전문가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독이 될 테다.

 

이반 일리치가 왜 "학교 없는 사회"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교육에 대해 고민하려면 그 책을 언젠가 읽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사로 살아왔기 때문에 근대 공교육 체제가 가지고 있는 강, 약점을 내부에서 보아왔다. 근대 공교육 체제에 대한 비판은 다른 학자들도 많이들 하고 있지만 이반 일리치의 '전문가 비판'에 따르면 그것이 가진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이다. 학교는 아동, 청소년이 스스로 배울 기회를 박탈한다. 공부는 삶을 꾸리거나 배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졸업장을 따서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취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교육 기관에 의무로 다니는 목적이 '졸업장'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공부는 사교육 기관에서 한다. 거기에도 배움의 기쁨은 없다. 학교를 유지하면서 아동 청소년이 배우는 기쁨을 맛보도록 도우려면 배움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프로젝트 수업에 관심을 갖고 실험해온 이유다. 배움보다 더 큰 범주로 이야기하자면 옛날 사람들이 누려왔던 삶의 풍요로움, 내 몸을 움직여서 생산한 결과물을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현대인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듯하나 가난하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풍요에 사람들이 중독되고 그것이 문화 속으로 한번 배어들면 '가난의 현대화'가 생겨난다. 현대화된 가난은 상품이 확산하면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부정가치의 형태이다. 이는 상품이 대량 생산되어 생겨난 사회적 비효율인데도 경제학자들은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의 도구로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자원을 '가동하여'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사회사업가도 관심을 쏟지 않는다. 경제학자에게는 사회적 규모로 벌어지는 만족감의 상실을 자기들 계산기에 넣을, 쓸만한 수단이 없다. 시장에는 그에 상응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의 경제학자는 특별한 사교 모임의 회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모임에는 전문적인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현대 사회의 가장 근본적 거래에 대해 사회적으로 무감하도록 훈련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 근본적 거래란 상품의 풍요가 커질 때마다 치러야 하는 가격으로,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만드는 개별, 개인의 능력 감퇴이다." 34-35쪽.

 

전문가에게 특정 분야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는 순간 그 일을 수행할 줄 알았던 일반인들은 법적으로 더이상 그 일을 일상에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그 사례로 집 짓기, 집에서 아이 낳기를 들고 있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편리한 듯해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자동차 타고 이동하게 되면서 출퇴근 시간에 도로 위에 서 있는 상황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옛날 사람들처럼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자는 결단을 과감하게 내리지도 못한다. 이런 '소비'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게 된다. '대안적 삶'을 실험해보고 있는 여러 저자의 책을 돌이켜보면 그들은 동일본지진 같은 재난 경험을 떠올리며 현대에 구축한 편리한 것들이 다 사라진 상황을 상정하고 그때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지금 갖춰놓자고 말한다. 그들이 이반 일리치 사상을 공부하지 않았을까(아마 이 업계의 교과서니까 분명 어떤 식으로든 접했으리라 생각함) 싶을 정도로 맥락이 맞닿아 있다.

 

권력-지식 중심에 있는 전문가는 우리가 무엇을 욕망해야할 지를 정해준다. 우리는 전문가가 내리는 그 처방에 의존한다. 이는 자기 결정하는 자유를 발휘하여 생존하는 삶과 반대다. 전자와 같은 시스템에서 자유롭게 사는 자는 '타자'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추방되다시피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선언하는 낭만적인 인간은 그야말로 사회부적응자로 낙인 찍힌다. 그런 사회는 자기 힘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존하려는 삶을 비난하고 부정한다는 면에서 '전체주의적'이다. 그 체제가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상관 없이 전체주의적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흥미롭다.

"그러나 자본가 엘리트가 권력과 특권을 실질적으로 배분하면서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 교육계, 의학계, 그리고 정책기관이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이 학교와 병원, 그리고 전문가의 동무을 얻기 위해 훈련된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 서민들이 과학적으로 육성된 교사, 의사, 경제학자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하는 일은 무책임한 짓이지 않은가?...

이 질문에 답변해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논리를 앞세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산업 복지 시스템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중이 분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불신하게 한다. 그 영향이 어떤 정치 체제에서 작용하든 상관없이 똑같으며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법률과 환경,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거쳐 강제로 '보살핌'의 소비자가 되고 자율성을 빼앗기는 것이다." 48-49쪽.

 

"이렇게 새롭게 생겨난 전문가는 우선 사기꾼과 잘 구별해야 한다. 교육자를 예로 들면, 그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할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은 쓸모없다고 못 박을 수 있다. 이런 식의 독점을 통해 전문가는 독재자처럼 다른 곳에서는 쇼핑을 못하게 하고, 집에서는 술을 담그지 못하게 하므로, 얼핏 보면 사전에 나오는 폭력단의 정의와 비슷해보인다. 폭력단은 이익을 얻기 위해 공급을 조절하여 생필품을 독점한다. 하지만 교육자, 의자, 사회복지사 같은 오늘날의 전문가는 마치 사제나 변호사처럼 합법적으로 권력을 확보하여 자신들만이 필요를 만들고 제공하도록 법을 제정한다. 그들은 현대의 국가를 지주회사로 만들었다 이 지주회사에 딸린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승인한 사업을 벌인다." 58쪽.

 

"더욱이 생산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인간의 욕구는 얕아지고 주변 상황에 쉽게 휘둘린다. 하지만 가공된 필요를 충족하는 소비품이 높이 쌓여갈수록 소비자들은 수시로 자극하는 욕구에 둔감해지는 모순이 생긴다. 갈수록 광고 문구가 필요를 만들고, 소비자는 전문의, 미용사, 산부인과 의사 등 수십 명의 치료 전문가가 내리는 지시를 따라 구매를 하게 된다. 광고가 되었든, 전문가의 처방이 되었든, 모임에서 토론을 하든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하는 사회는 개인이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행동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문화에서 나온다. 이런 문화에서 소비자는 스스로 배우기보다 만들어진 필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데려다 필요를 배우는데 유능한 학생으로 만드는 사회에서는 스스로 경험한 만족에 기반해 자신의 욕구를 만드는 능력은 보기 드물어진다. 아주 부자이거나 몹시 가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의 필요가 소규모 부품으로 쪼개지고 각각의 필요를 해당 전문가가 관리하면서 소비자는 더 애를 먹게 되었다. 다양한 관리자들이 따로따로 제공한 서비스를 통합해 의미 있는 전체로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내게 의미를 주는 것은 간절하게 노력한 끝에 즐거움과 함께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관리 가능성이 발견되자 자산 관리사, 생활양식 상담사, 의식함양 전문가, 식품 전문가, 감각 개발자 등 전문가들은 이제 자신들이 쪼개놓은 필요를 통합한 종합상품을 내놓는다.

명사가 된 '필요'는 전문가의 형태를 갖고 태어난다..." 72-73쪽.

 

십수 년 전 취업 후에도 계속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엄마의 살림 노동에 빌붙어 살고 있다. 휴직 후에는 그간 모아둔 적금을 까먹으며 자동차를 운전해 이동하고 물건이나 경험을 소비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는 듯 살면 정말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지 종종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목부터 책 내용 내용이 공감 되었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힘을 주는 책이었다. 현대가 '조직에 소속해 쓸모있는 근로자가 되라'며 우리를 얼마나 세뇌 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시스템 측면에서도 연금, 의료보험, 세금 등의 제도로 시민을 조직에 속한 자로 길들이려고 한다. 그 시스템에 맞는 자야 그렇게 살기로 선택해서 살아도 괜찮겠지만, 모든 시민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해보고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세뇌에 불편해하는 과감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튀어나와 '다른 모습으로도 살 수 있다'고 실험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만두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그런 실험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인용한 부분이 다소 긴데도 문단을 자를 수 없어서 공부를 위해 옮겨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책 내용 전체를 옮겨오고 싶다. 이번에는 빌려 읽었는데 소장해서 두고 두고 꺼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작은 출판사 느린걸음에서 참 좋은 책을 출간해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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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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