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 내성적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학원에서 친구들이 앞다투어 짝꿍을 하겠다고 자처해 기분이 좋았다는 고백을 한다. 우리딸도 내심 관종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종종 카톡 프로필 사진은 최대한 허세스러운 것으로 고르고, 온라인에 글이라도 남길라치면 댓글이 많이 달리는 편이 기쁘다. 일부러 관심 끄는 행동을 하진 않지만 관심을 받으면 기쁜, 나는 조금 소심한 관종이다.

  <관종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서, 먼저 ‘관종’이라는 주제로 400페이지나 되는 책을 쓸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아울러, ‘관종’이라는 다소 비사회적인 용어 하나로 무척 최근의 사례까지 제시하며 논문 수준의 내용이 완성된 점도 놀랍다. ‘관종’이 단순히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자, 사회 전반을 들여다 보는 도구로서 사용된 점이 무척 통찰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전작으로 서점가의 흥행을 몰고 온 저자의 이력만큼 기대가 되는 책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웹툰 작가로 꼽히며 최근 침착맨이라는 새로운 부캐(부캐릭터)로 유튜브까지 본인만의 색깔로 장악하고 있는 이말년작가는 한 콘텐츠 기업과의 인터뷰 말미에서 소중한 조언을 건넸다.

“일단 간을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간을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발을 빼는 것도 용기다. 앞뒤 안 가리고 막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지양했으면 좋겠다. 대충 하고 견적 봐서 미치세요.”

p.112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현 시대에 사용되고 있는 관종의 의미와 정의를 확실히 하는 1부, ‘꺼지지 않는 가시성’, ‘고집스러운 협력성’, ‘절대적인 진실성’,’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이라는 관종의 조건을 설명한 2부, 하나의 자본으로서 관심을 개인이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3부, 조직내에서 개인의 관심 욕구와 조직의 관심 욕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4부, 경제 시장에서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관심 활용법에 대한 5부, 사회속에서 관종의 나아가야할 방향을 다룬 6부로 끝을 맺는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자아가 자신의 오프라인 속 본캐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SNS 속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그대로 올린다고 하는 ‘일상짤’은 사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1차적 편집’을 가한 편집본이다.

p.189

저자는 현재,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관종이 매우 중의적 혹은 호의적으로 사용되는 점을 꼬집는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관심’에 대한 욕망이 무척 용인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관종이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필요하고, 그렇게 완성된 관종이라 하더라도 조직내에서, 사회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적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자신만의 개성은 살리되 언제든 타인과 협력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미 모든 것이 보이는 시대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 책처럼 젊은이들이 올바른 관종의 길을 걷도록 독려하는 쪽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사회가 되어 버린 점,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관종을 자처한다는 점, 그 와중에 개인의 특성은 무시되고 여러 개의 자아가 개인을 분열시킨다는 점, 그리하여 결국 사회와 관종의 관계가 그리 녹록치 못한 현실이 생각보다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관종이 사회 조직과 어떻게 협력해 나가야 하는지까지 제시하고 있지만, 아마도 현실에서의 괴리감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관종이라는 단어로 누군가를 특정해 구분 짓기에 앞서,

우리 모두 자신의 자유로운 취향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한 사회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

그리고 그 길을 지속할 수 있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p.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