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
  1. 사회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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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사피엔스
글쓴이
유발 하라리 저
김영사
평균
별점9.2 (1153)
오르페우스

호모 사피엔스, 신이 된 동물의 거대서사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가 지은 『사피엔스』(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는 사피엔스(Sapiens), 곧 현생 인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현생 인류는 약 25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 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뻗어 나와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로 퍼지면서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유럽과 서부 아시아에 정착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 유라시아 서부의 빙하기에 적응한 호모 사피엔스, 아시아 동쪽 지역에 거주한 호모 에렉투스가 대표적인 인간 종들이었다. 지은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직선모델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몇 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26)고 주장한다. 여섯 종 이상의 인간들 가운데 오직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종 사피엔스는 이 지구를 정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우선 언어 사용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 인류의 생활에 출현했다. ‘인지혁명이라는 이름에 드러나는 대로, 인류는 언어를 통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48)을 갖추게 되었다. 전설, 신화, , 종교 등은 이러한 인지혁명과 더불어 등장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게 왜 이리 중요하게 부각되는가? 언어는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을 사피엔스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허구는 가상의 실재다. 뿔뿔이 흩어진 존재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바로 이 가상의 실재라는 허구로부터 나온다. 네안데르탈인은 이러한 가상을 창조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월등한 힘(근육)을 지니고 있었지만, 서로 협력하는 능력에서는 사피엔스를 따라갈 수 없었다. 가상을 창조하는 힘에서 인간 종 특유의 협력이 뻗어 나온 것이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혹은, 꼭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선사시대에 속했다(나는 선사시대란 표현을 피하려 하는데, 인지혁명 이전에도 인류가 하나의 동일한 범주에 속했다는 오해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인지혁명 이후에는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 기독교나 프랑스 혁명의 부상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호르몬과 생물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념과 이미지와 환상이 벌이는 상호작용 역시 고려해야 한다. (66)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는 문화라고 불린다. 문화라는 게 원래부터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여기에는 내포되어 있다. 돌려 말하면 사피엔스는 문화를 발명함으로써 다른 인간 종이나 동물들을 누르고 지구를 지배하는 생명이 되었다.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것을 사피엔스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로 만들어냈다.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기술과 조직의 방법을 터득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아프로아시아(아시아와 아프리카가 합쳐진 고대륙)에서 벗어나 외부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45,000 전에 호주에 정착했으며, 16,000년 전에는 아메리카에 도착해 인간이 사는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사피엔스가 정착한 곳마다 그 지역에 원래 있던 생물 종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육체적인 힘은 약했지만, 사피엔스에게는 기술과 조직이 있었다. 그 기술과 조직으로 사피엔스는 주변 세계를 하나하나 정복해 나갔다. 기껏해야 먹이사슬의 중간 정도를 차지하던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서는 순간 온갖 생물들이 멸종하는 생태적 재앙이 벌어졌다. 사피엔스의 문화, 역사는 이렇게 다른 생물들을 살육하는 과정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통해 가상의 실재를 상상하는 언어능력을 획득했지만, 생활면에서는 수렵채집 시대의 방식을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농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정착 생활은 기원전 9500~8500년경에야 시작되었다. 수렵시대가 식량을 찾아 이리저리로 유랑하는 삶을 전제로 한다면, 농업시대(혁명)는 한곳에 정착하는 생활에 기반을 둔다. 사람들은 농업혁명을 수렵시대에서 진보한 삶의 방식으로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농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더 많은 시간을 노동을 하며 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수렵시대의 인류보다 이 시대 농민들의 영양 상태가 더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농경사회는 극히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칼로리를 극소수의 작물을 통해 섭취했다.”(127)고 지은이는 말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129)에서 농업혁명의 핵심을 찾는 지은이의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새로운 농업 영토는 고대 수렵채집인의 것보다 훨씬 더 좁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인공적이었다. 수렵채집인들은 불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떠도는 땅에 의도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거의 없었다. 이와 달리 농부들은 자신들이 주변 자연환경에서 힘들여 떼어낸 인공적인 섬에 살았다. 이들은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물길을 파고 들판에서 돌을 제거하고 집을 짓고 밭고랑을 갈고 유실수를 줄지어 심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적 거주지는 오로지 인간과 그들의식물과 동물만을 위한 것이었고, 성벽과 산울타리로 방어벽을 친 경우도 흔했다. 농부의 가족들은 골치 아픈 잡초와 야생동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했고, 그런 것들이 침입하면 퇴치했다. 만일 그런 것들이 계속 살아남으면, 그것들을 적대시하는 인간들은 박멸방법을 모색했다. 집 주위로는 특히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 농업혁명의 여명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명의 인간이 나뭇가지와 파리채, 신발과 독성 스프레이로 무장하고 인간이 사는 곳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는 부지런한 개미, 은밀한 바퀴벌레, 대담한 거미, 잘못 들어온 딱정벌레 등과 가차 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149~50)

 

농업혁명을 일으킨 사피엔스는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는 다른 생명들과 문화의 이름으로 가차 없이 전쟁을 벌였다. 지표면의 2퍼센트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 몰려 살면서 사피엔스는 서서히 지구의 정복자로서 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농경시대의 인간들은 미래를 생각했다. 미래를 의식하면 계획이란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때가 되면 이 일을 하고, 또 때가 되면 저 일을 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들판에서 온종일 일을 하는 농부의 일상은 사피엔스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식량은 오늘, 다음 주, 다음 달 먹을 것까지 충분했지만 이들은 다음 해와 그 다음해 먹을거리까지 걱정해야 했다.”(151)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도 대비해야 했으니, 농부는 수렵인들보다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곳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공동체의 규모도 커졌다. 농업혁명을 통해 이전보다 많은 곡물들이 생산되고 덩달아 인구까지 늘어나자 일하지 않는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생겨났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주지 않았다.”(153) 소수의 엘리트는 농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공통의 신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상상의 질서는 소수 엘리트와 농부라는 계급 질서를 굳건히 하는 문화적 토대가 되었다. 소수 엘리트는 상상 속에서 출현한 신의 명령으로 계급 차별을 합리화했다.

 

사피엔스의 차별 논리는 현대 미국문명을 낳은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 중 많은 이가 노예 소유주였다.”(197) 깜둥이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인종차별, 여성차별, 지역차별 등 온갖 차별을 만들어내는 밑바탕에는 항상 언어로 구성된 상상의 질서가 스며들어 있다.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계기가 인지혁명이라면, 바로 그 속에서 사피엔스는 특유의 차별사회를 거침없이 현실로 만들어낸 셈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차별사회의 기원을 우리그들이라는 사피엔스 고유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찾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최강자가 아닌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선 계기가 협력이라는 점은 이미 말했다. 협력은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우리는 협력의 대상이지만, 그들은 배척의 대상이다. 사피엔스는 이런 논리로 다른 인간 종과 동물들을 물리쳤다. 협력과 배제의 논리는 농업혁명 이후에 펼쳐진 사피엔스의 역사를 그들을 일방적으로 죽이는 살육의 여정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공동체와 제국이 출현했다가 사라졌다. 제국의 주인()경계를 넘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제국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우리의 영역은 넓어졌고 그들의 영역은 좁아졌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난 수많은 전쟁들을 생각해 보라. 사피엔스의 역사는 결국 우리그들을 폭력으로 정복하는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고 하겠다.

 

지은이는 과학혁명을 사피엔스의 진화를 결정적으로 이끈 대사건으로 꼽고 있다. 지난 500년 동안 인류는 그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온갖 일들을 이루어냈다. ‘과학혁명은 무엇보다 무지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한다. 이 시대의 사피엔스는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더 많은 탐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이론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인식의 기틀로 작용했고, 과학의 이름으로 발견된 새로운 지식은 곧바로 기술에 적용되었다. 지난 500년간 일어난 거대한 진보는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조합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지은이는 한편으로 과학혁명을 제국의 건설과 연결 짓는다. 군사-산업-과학 복합체로서 과학혁명은 미지의 것을 탐구하려는 과학자와 정복자의 연합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온갖 총기들로 무장한 정복자와 근대 지식들로 무장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미지의 세계를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즈텍 제국이나 잉카 제국이 이들의 총과 지식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인지혁명으로 지구를 정복한 사피엔스가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시킨 사건과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제국의 논리는 자본주의라는 제도로 이어졌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사회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체제였다.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원리로 하는 자유시장에서 그 방안을 찾았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가 공정성을 잃을 때 발생한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468)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실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생산력은 급증했지만, 공정한 분배는 그에 따라 이루어지지 못했다. ‘우리그들의 차별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평등이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피엔스의 차별 논리를 없애지는 못했다.

 

지금 사피엔스가 이룩한 문명은 발생의 터전인 자연마저 파괴할 정도로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우리는 인간이고, 그들은 자연이다). 자연과의 고리는 끊어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사피엔스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자연은 생태적 혼란에 빠져버렸다. 인지혁명 이후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사피엔스의 이 지독한 파괴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지은이는 지금 사피엔스는 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신으로서 사피엔스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려는 열망에 부풀어 있다. 생명과학의 힘으로 그들은 죽음을 정복하려고 한다. 인간의 지적 설계로 또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인간이 정말로 죽음을 정복하고 불멸에 이른다면 인류는 과연 무엇이 될까?

 

신이 된 동물이라는 항목으로 지은이는 이 책을 맺는다. 신이 된 동물은 좋은 말이 아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588)라고 지은이는 반문한다. 파괴와 살육으로 점철된 사피엔스의 역사를 생각하면 지은이의 걱정은 기우가 아닌 듯하다. 당장 자연 파괴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으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자연의 공격을 막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일시적이다. 자연은 또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가 지나간 곳마다 황무지로 돌변한 상황을 지금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사피엔스는 지금 종의 운명을 건 거대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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