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읽기

오르페우스
- 작성일
- 2017.11.11
광해,왕이 된 남자
- 감독
- 추창민
- 제작 / 장르
- 한국
- 개봉일
- 2012년 9월 13일
인간 ‘광해’의 두 얼굴
광해군은 조선 왕조의 15대 임금이다. 선조의 둘째 아들(적자가 아니라 서자였다)로 태어나 임진왜란 직후 세자로 책봉된 후, 33살의 나이인 1608년에 왕위에 올랐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선조를 대신하여 전시(戰時)의 국정을 지휘하였으며, 그로 인해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하지만 그는 서자(庶子)였고 차자(次子)였다. 장자(長子) 중심의 가부장제 구조가 공고했던 조선 사회에서 서자와 차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형 임해군을 미치광이로 몰아 죽였으며,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선조의 유일한 적장자) 또한 강화도로 유배 보냈다가 이내 죽여 버렸다. 서모(庶母)인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하여 효를 중시하는 당시 유생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하였다.
광해군은 국내·외적으로 격변하는 시대를 살았다. 국외적으로는 명과 청(후금)이 교체되는 시기를 살았으며, 국내적으로는 선조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당파간의 갈등이 극한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시대를 살았다. 사대주의에 빠진 신하들은 명나라에 군사를 파견함으로써 임진왜란 때 입은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임금에게 주청했다.
하지만 명나라가 지는 해였다면 청나라는 이미 떠오른 해였다. 따라서 명나라에 군사를 파견하는 것은 곧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로 들어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고민한 광해는 명나라에 군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신하들을 힘으로 누르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출병을 결정했지만 광해군은 병사들을 헛되이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도원수인 강홍립을 불러 ‘싸우는 척 하다가 항복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한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잘 알고 있을 이 사실들만으로도 우리는 ‘광해군’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순리대로라면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인물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왕위를 지키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쓸 수밖에 없다. 권좌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그 권좌를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리하여 왕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광해는 숱한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는 끝내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을 역적으로 몰면 연이어서 다른 역적이 나왔다.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 한 살육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비상사태를 현명하게 이겨낸 광해군은 이처럼 끊이지 않는 살육의 공포 속에서 서서히 제 마음을 잃어갔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공포는 그대로 현실이 되어 광해군의 정신을 옥죄었던 셈이다.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서 인간 ‘광해’의 내면을 새삼 들여다보게 되었다. 신하들에게 독살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광해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핏발 선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왕위를 지킬 것인가? 얼굴이 똑같은 사람을 찾아 그를 대역으로 내세우면 어떨까? 광해군의 심복이었던 허균은 왕의 밀명을 받고 만담꾼(광대)인 하선을 찾아낸다.
이제 궁궐에는 두 명의 임금이 있게 된다. 낮에는 진짜 왕이 정사를 보고, 밤에는 가짜 왕이 암살에 대비하여 진짜 왕을 대신한다. 당연히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 진짜 왕이 마약(양귀비)에 중독되어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권력의 구도는 급격하게 뒤바뀌지 않을 수 없다. 허균은 진짜 왕을 비밀스러운 거처로 옮기고 가짜 왕을 권력의 전면에 내세운다. 한번 잃은 권력을 다시 회복하기는 힘들다. 진짜 왕이 깨어날 시간을 벌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허균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 일로 하여, 진짜 왕이 있었다면 이루기 어려웠던 정책(대동법, 조공 문제)들이 하나하나 실시되기 시작한다. 암살에 대한 공포가 없는, 다시 말해 정치적 적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가짜 왕 하선이 ‘상식대로’ 정치를 행하면서 궁궐 안은 일대 혼란에 빠져버린다. 하선의 상식적인 정치는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그는 궁궐의 내인들이 처한 각각의 상황에 공명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한다. 왕이 남긴 음식을 궁녀들이 먹는다는 말을 듣고 그 좋던 식성을 억제하는 하선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왕이 마음을 여는데 궁인들이 마음을 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왕이 먹는 음식에 독약을 넣으라는 상궁의 명령을 거부하고 죽음의 길을 택한 사월이(기미나인)의 이야기는 왕에 대한 충성이 결국은 타인과의 공감으로부터 생성된다는 점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나는 광해라는 역사적-허구적 인물에 드리워진 상징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정적(政敵)에 대한 두려움이 광해의 공포 정치를 낳았다면, 그리하여 광해 자신도 끊임없이 암살의 공포에 시달리는 편집증적 상황을 만들었다면, 권력자들의 ‘정치 놀음’에서 벗어나 ‘상식’을 지킨 가짜 광해(하선)는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충신들(사월이나 도부장)을 얻었다. 가짜 왕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을 끝내고 제 갈 길을 가는 하선을 향해 허균은 기꺼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허균의 그 마음으로 고개를 숙일 권력자들이 우리에겐 과연 있을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폭군 광해의 이면에 드리워진 상식적인 광해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한쪽에는 정적에 대한 의심으로 핏발이 선 광해의 눈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사월이의 가슴 아픈 가족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광해의 눈이 보인다. 어느 게 광해의 참모습이었을까? 권력과 인정(人情)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을 인간 ‘광해’의 모습을 나는 지금 이 시대에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그 앞에서 기껍게 고개를 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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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