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 서평

별반디
- 작성일
- 2013.2.28
플랜더스의 개
- 글쓴이
- 위다 저
인디고(글담)
네로는 파트라슈를 자기의 집에서 키우며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움직이며 일을 한다. 어릴 적에 난 몸집이 큰 개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그건 파트라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플랜더스의 개>의 끝에서 파트라슈는 자진해서 네로의 곁에서 한날 한시에 죽는 걸 택했다. 그걸 보며 난 인간과 평생 함께 해줄 수 있는 동물이란 사람만한 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냉정하리 만큼 현실적이다. 집안간에 경제적 격차가 심한 남녀가 쉽게 사귀지 못하게 되는 환경, 집세가 밀려서 결국 소유물까지 차압당하는 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욕심에 따라서 예술의 가치가 분별되고 오도되는 일,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소년이 사람들의 외면 속에 죽어가는 일 등등 모두가 너무나도 동화스럽지 않다. 차라리 비극동화라 말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웬만한 비극이상으로 눈물이 쏟아지는 이야기다. 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은 너무나도 불쌍해서 연민하게 되며, 한편으론 자신은 동화속의 네로가 아님에 안도하는 이기적인 동정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의 죽음은 타인의 순수한 모습을 곧이곧대로 마주하게 한다.
혹사당하고 버려졌던 개, 파트라슈. 그는 지독한 주인을 만나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보는 '애완견'이었던 '유기견'들보다 더 지독한 삶을 살았다. 버려진 몸으로 죽어가던 파트라슈를 살리고 거둬들인 것은 너무나도 가난한 네로와 할아버지이다.
우리나라 동화에선 한날 한시에 죽는 건 천생연분으로 맺어진 주인공 남녀들의 얘기인데, 넬로는 유일한 사람친구인 알로아와의 교제조차도 금지당한다. 그런 후에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집도 빼앗기며 마을에서 퇴출당하다시피 된다. 그런데 생에 온 희망을 걸었던 미술대회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날 낙선. 결국 그날 밤 네로는 미술관에서 얼어죽는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잔혹동화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실 우리나라 민담에 '주인을 구한 개'를 떠올리면 '플란더스의 개'는 참 패기가 없다 싶은 거다. 하지만 노쇠한 할아버지나 다름없는 파트라슈의 헌신을 보면 그런 부분이 또 가엽고 안됐어서 독자들을 더욱 많이 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네로는 세상에 자신을 보듬어줄 사람이 없음에 끝끝내 절망한다. 어쩌면 그에겐 지상이 아니라 천상이 구원받을 땅이라 받아들이는 게 쉬웠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지상에서 천상으로 향하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단 하나의 빛줄기가 기적적으로 내려와 '천상으로 향하는 그림'을 비춰 주었으니까. 그리고 가족이자 단 하나뿐인 친구와 다름없는 개가 천상으로 가고자 한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으니까.
<플랜더스의 개>를 책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네로에게서 의외로 느껴지는 면면이 있었고 그런 부분이 새삼 재미있었다. 네로가 은근히 자존심이 있는 아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점은 사소하지만 쉽게 바뀔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어릴 적에 애니매이션을 봤을 때엔, 네로가 그저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둥이에 의지박약아라고 생각했는데 실상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어 홀할아버지께서 가난한 삶에는 어떤 선택권도 없는 삶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넬로는 묵묵히 자신의 뜻을 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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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가난한 사람도 선택할 수 있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하면 남들에게 거부당하지 않을 수 있지.' - 넬로, 마음의 소리
또 할아버지 왈 "얘야, 넌 가진 게 없단다. 너무 가난해! 네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구나"
이에 넬로 왈 "아니에요. 전 부자에요."
넬로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왕보다도 더 막강한 불명의 힘을 지닌 부자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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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넬로의 할아버지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나약한 숙명론을 가진 반면 넬로는 상당히 항상 긍정적이고 개척적이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
또 넬로는 여자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소년이었다. 알루아의 아버지가 넬로와 알루아가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단 걸 빠르게 눈치챈 넬로. 넬로는 여전히 자신을 좋아하는 알루아를 되려 달래고 진심위로하기도 한다. 동시에 상당히 외유내강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점은 알루아와 넬로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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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아, 언젠가는 달라질 거야. 너희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내 작은 소나무 판이 언젠가는 돈이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때는 그분도 내가 못 들어오게 문을 닫지 않으실 거야. 네가 영원히 날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난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훌쩍이던 알루아가 샐쭉하더니 여자애 특유의 애교를 부리며 물었다. 하지만 넬로의 시선은 알루아의 얼굴을 떠나, 붉은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플랜더스의 밤하늘 높이 솟은 성모 대성당의 첨탑을 헤매고 있었다. 그 얼굴에 띤 미소가 너무 아름답고도 슬퍼 보여서 알루아는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래도 난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 안 그러면 죽고 말거야, 알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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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누군가에게 자랑하진 않았지만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었고 항상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서 부지런히 생활하던 넬로. 그는 사랑스럽고도 외로운 영혼이었다. 세상의 그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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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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