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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lovee
- 작성일
- 2018.10.6
이순신 2 한산
- 글쓴이
- 문성호 글그림
다락원
역사만화책 추천, 45전 무패의 전쟁 신화
이순신, 한산!
이순신 출정에서 옥포해전의 승전의 기쁨도 잠시
1592년 5월 한성에 자리 잡은 왜군의 선보대는 또다시 파죽지세로 북상을 시작했어요
고니시 유키나가군은 임진강을 돌파하고 평양으로 향했으며
가토 기요마시군은 철령을 넘어 원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어요
이순신 함대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 수군은 해상권 장악을 위해
기동함대를 동원하여 서해로 세력을 확장해 갔고
일본군이 만약 사천포를 차지하게 되면 여수는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위기헤 처할 수 밖에 없었고
전라도로 통하는 관문이자 조선 육군의 요충지인 진주성은 바다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게 될 상황이었어요
이순신의 함대는 오랜전투로 지쳐다던 중
1592년 6월 4일, 당포 앞바다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전라우수영 이억기의 함대 25척이 합류하게 되어
전라좌수영군은 사기를 회복하게되요
그리고 1592년 6월 5일 당항포해전이 일어나고
조선 함대의 돌격선인 귀선의 무차별 포격에 일본 함대는 초토화되지요
대장선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일본 장수 구루지마 미치유키는
전라좌수영군 추격대에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어요
한성을 탈환하고 평양성을 구하기 위해 전라감사 이광을 중심으로
5만의 삼도근왕군이 편성되었어요
그러나 삼도근왕군은 수원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습전에 처절하게 패하고
전공에 목말라 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임진왜란 중 최대 규모로 편성된 조선육군을
단 1000명의 정예병으로 완벽하게 격퇴함으로써 일본군의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되요
이 전투의 패전으로 전라감사 이광이 해임되고
광주목사 권율이 전라도 지역의 최고 지휘관이 되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구키 요시타카에게 수군력을 증강하고
연합 함대를 구성하여 육군 제 6군과 함께 전라도를 치고
이순신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하였어요
1592년 6월 중순, 부산에서는 구키 요시타카는 가토 요시이키,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최고의 수군 정예병과 115척의 함대로 수군을 보강하고
전라좌수영 본영이 위치한 여수 공략 계획에 들어갔어요
일본군은 화력과 사정거리가 월등한 이순신의 함대를 바다 한가운데서 맞딱드린후
화포 공격에 의한 1차 피해를 입게되나
화포를 재장전하는 동안 속도를 앞세워 어린진으로 이순신 함대의 일자진을 무너뜨리고
조총의 사정거리 안에서 접근전을 펼친 후 배에 올라타 백병전으로 조선군을 무너뜨릴 계획이였지요
7월 10일 왜군의 대규모 함선이 견내량을 통과하여 여수 본영을 공격할 거라는 첩보를 받았어요
그러나 와키자카 함대는 공을 독차지하려고 7월 7일 견내량으로 단독 출전을 하게 되고
이순신은 당포에 진을 친 후 견내량으로 들어오는 적을 한산도 앞바다에서 격멸할 계획이였어요
이순신은 "우리 바다를 침략한 자들은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1592년 7월 8일 태양이 떠오르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전이 시작되었어요!
견내량 와키자카 야수하루의 함대와 이순신의 함대의 전투가 시작되었어요
일본군은 빠르게 접근해왔지만
이순신의 함대는 화포를 장전하여 방포하였고
일본군이 쫒아오면 배를 선회하여 후퇴하였어요
그리곤 화포를 다시 장전하여 발포를 하고 후퇴하는 전투법을 펼쳤어요
일본군이 견내량을 들어와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군을 칠 계획으로
드디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학의 날개를 펼치게 되요
일본군은 끝까지 맞써 싸웠지만
조선 연합 함대의 학익진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함대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전투로 일본 함대 전함 47척이 격침되었고 12척이 나포되었으며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충복 외타니베 사치에몬을 비롯한 수천 명의 일본 수군이 전사했어요
그에 비해 전라좌수영군의 피해 규모는 19명 전사, 115명 부상으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조선 연합 함대의 승리였답니다!
그후, 1592년 7월 10일 안골포해전이 시작되었는데요
와키자카 야스하루 함대의 궤멸 소식을 들은 구키 요시타가와 가토 요시아키 연합 함대는
이순신 함대와의 전면전을 피해 직속 함대 40여 척을 안골포 앞바다에 배치한 후
이순신의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조선 수군의 화포 공격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어요
일본 수군의 지형을 이용한 전략으로는 견딜 수 없었지요
조선 수군의 장사진 공격에 일본 수군 대부분은 육지로 도주하였고
구키 요시타카는 조선 수군의 포위망을 뚫고 겨우 도망쳤다고 해요
한산도와 안골포해전으로 이어진 이순신 함대의 제3차 출전으로
일본 수군의 주력 함대는 궤명하였고 해상권은 조선 수군이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요
충격에 빠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결국 조선 수군과의 해전 금지령을 내리게 됩니다
일본 수군의 완전한 패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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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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