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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 작성일
- 2008.5.14
다섯째 아이
- 글쓴이
- 도리스 레싱 저
민음사
1988년 이 작품이 출판되고 난 뒤, 한 인터뷰에서 레싱은 이 소설을 착안하게 된 사건 두 가지를 밝혔다. 하나는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한 인류학자의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 어머니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정상적인 세 아이를 낳은 뒤 태어난 네 번째 딸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망쳤다고 하소연한 것을 읽은 일이다.(작품 해설 중에서)
정원이 있는 빅토리아풍의 집에서 자식을 많이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꿈꾸는 두 젊은이가 만난다. 혼전 성관계, 이혼, 산아제한, 혼외정사 등과 같은 것들을 거부하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정의 울타리를 견고히 해나가기 위해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모성을 발휘한다. 그러던 그들에게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 것은 변하기 시작한다.
〈다루기 어려운 아이〉로 불려지는 다섯째 아이는 보통의 정상으로 여겨지는 아이들과 다르다. 그 아이로 인해 네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였던 여자는 마치 자신만이 잘못한 것처럼 비난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마치 내가 죄인인 것처럼’ 단죄 당함에 분노한다. 사랑과 행복의 표상이 되어야 할 아이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가족들에게조차 격리되고 이상적인 가정은 파괴되기 시작한다. 레싱의 작품세계는 방대하고 그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열중한 그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사실적이며 본질에 가깝다.
TV 시사 프로그램에서 제작한 ‘자신의 아이를 미워하는 엄마들’이라는 주제의 방송을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아이를 낳은 엄마라면 당연시되고 의무화되는 모성. 출산 후 급격히 변화하는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의 기복과 체력의 약화. 엄마에게만 강요되는 고된 육아와 주위의 무관심. 아이와 엄마의 주변으로부터의 고립 등은 건강한 모성이 빛을 발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주위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아 혼자 길러 본 엄마라면 밤낮이 바뀌어 수면부족에 빠지고 하루 종일 말할 사람조차 없어 (말다운 말) 옹알거리는 아기에게 말도 걸어보고 대답도 해보고 혼잣말도 하다가 지쳐버린 하루를 마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감정은 외로움과 고립감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느 순간 이런 일들이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 같다는 두려움조차 들었다. 사랑스런 아이가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움이었다. 엄마는 아이만 있으면 행복해야 하고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넘쳐야 하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그 과정을 거치며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이 부끄러워지고 아이를 감당하지 못 할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잃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고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어떤 엄마에게나 자신의 아이가 모든 아이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다르고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르다. 어쩌면 모든 가정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는 다섯째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고약하든 사랑스럽든, 유전자의 이상이든 그렇지 않든,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그들을 혼자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듯이 누구에게나 생각지도 않았던 번개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연이든 우연이 아니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며 고통을 주어서도 안 될 것이다. 레싱이 ‘다섯째 아이’를 통해 보여준 붕괴된 가족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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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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