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2020

이야기
- 작성일
- 2018.12.11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글쓴이
- 마일리스 드 케랑갈 저
열린책들
미사여구로 꾸며져 있지만 착잡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사건을 예측케 한다. 이 젊은이들에게, 시몽 랭브르에게 무슨 일이든 벌어지고 말거야! 지문은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직접적이고 적확한 문장들, 등장하는 이의 저마다의 사정들, 그리고 시몽의 부모, 마리안과 숀의 감정 상태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한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는 수술과정과 같다.
오전 5시50분에 시작한 이야기는 다음 날 오전 5시49분에 끝을 맺는다. 342쪽에서 끝나는 이야기는 그만큼 긴박하게 흘러간다. 이야기는 장기기증이 주는 과정의 긴박성 보다, 소용돌이 치는 마리안과 숀의 감정으로 긴박함이 전달되다가, 후반에 가서는 죽을 운명을 거부조차 하지 못하는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클레르의 감정으로 긴박함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작가는 죽은자와 산자, 죽음 앞에 놓인 자, 다시 생명을 얻은 자로 이어지는 장기이식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주제의 이야기를 멈출 곳을 모르는 폭주 기관차처럼 쏟아내다가 절벽 끝에서 멈춰선다. 급브레이크가 아닌 예정된 시각, 예정된 지점에서. 그리고 독자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다. 자! 이젠 어떻게 하지?
가까운 사람, 소중한 사람의 뇌사를 상상해 본다.
청천벽력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려진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 우린 살아있다. 다행이도, 아직은.
내가 시몽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내 몸이 시몽의 것처럼 비워지는 것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
나는 평소 죽은 후 다시 눈을 뜨면 어떻게 하지? 화장터의 푸른 불꽃 속에서 고통을 느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내 심작이 적출된 다음 진행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일차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장기이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내 장기가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그 다음이다. 그건 나의 죽음을 아직은 받아드리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족의 죽음을 한번 겪었다. 아빠는 내 기도 소리에 붙잡고 있던 오랜 지병의 고통스러운 숨을 놓았고 아빠의 심장에 올려 놓고 있었던 내 손에 아빠의 심장이 멎는 것이 전해졌다. 그리고 입관 때 미소를 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염을 해주신 성당분들이 아빠의 얼굴이 참 예쁘다고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 예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죽은 자의 무섭고, 어두운 얼굴이 아니라 아름다운 얼굴은 살아있는 가족에게 위안을 준다.
시몽은 장기이식에 대한 견해를 갖을 만큼 살지 못했다. 열아홉이면 충분히 장기이식에 대해 결정지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건 지적능력과 관련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만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너무 젊다. 하지만 시몽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는 것은 독자인 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시몽이 그 모든 것,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죽음을, 장기이식을 받아드렸을 거야라는 위안.
이야기는 감정의 긴박함만큼, 주제만큼, 부여된 시간만큼 속도감을 가지고 읽는 이를 몰아부친다.
재밌지 않다.
이번에 수없이 쓰던 착잡하다는 단어의 뜻을 바로 알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뒤섞여 어수선하다.(네이버 사전)"
마음이 그랬다.
슬픔이 몰아치지 않는다.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집어들면 빠져들어 몰입하게 되면서도 혈관들은 심란하게 펄떡댄다.
잠시 서핑을 즐겼던 동생의 서핑보드가 계속 떠오른다. 지금은 그만둬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서핑이 문제가 아니라 지친 상태로 운전을 한 것, 아니 안전밸트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는데 말이다. 도처에 있는 죽음이지만 우리는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나의, 또 소중한 이의 죽음은 멀리있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황망함. 그 와중에도 해야 하는 일들.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다. 장기이식이 강요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선택하지 않는다해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겪는 죽음에 대한 슬픔의 크기만큼 타인의 생명에 대한 간절함도 크다는 것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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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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