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2015~2020

이미지

도서명 표기
대위의 딸
글쓴이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9.1 (23)
이야기

노란색 바탕 위에 농도가 다르게 그려진 여인의 형상, 그리고 빨간색 하트,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는 눈길을 달리는 말 두 필이 끄는 마차. 그림은 눈보라를 헤치고 달리는 마차는 마샤를 향하는 것이라 말해준다. 책표지 그림은 화사하고 따스하고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표지이다.

<대위의 딸>은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읽어보고 싶은 유일한 책이었다. 이야기는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이며 수목드라마를 보는 듯 긴장감과 함께 연인이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함 속에 읽게 된다. 무참한 전쟁이 생략된 덕분일 것이다. 실상은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립이 얼마나 끔찍했겠는가.뿌쉬낀은 참혹한 전제정치에 대항한 뿌가쵸프의 반란, 그로인한 내전이라는 비극을 유쾌하게 그려내면서 독자에게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게 한다. 내가 읽고 난 후 드는 생각은 좀 더 알고 싶다 였다. 빙그레 웃음지으며 <대위의 딸>을 재미있게 읽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로맨틱 드라마는 이 <대위의 딸>에서 시작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뿌쉬낀이 생략한 반란과 내전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독서>를 읽은지 얼마 안되었음에도 그 내용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대위의 딸>을 읽고 <청춘의 독서> 5장 <대위의 딸>을 다시 읽으며 이 책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그렇지만 <대위의 딸>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연애소설로 위장한 역사소설이며 정치소설이다. 푸가초프의 반란과 참혹했던 내전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농노제도와 차르의 전제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한 혁명적인 소설이다."(<청춘의 독서> 99쪽)

"그는 <대위의 딸> 곳곳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진보적 견해를 매우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노출시켰다."(<청춘의 독서> 105쪽)

"푸시킨은 200년 전 전제정치와 농노제가 실시되던 동토 러시아에서 인간의 자유를 노래했다."(<청춘의 독서> 112쪽)

<청춘의 독서>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위의 딸>의 깊은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뿌쉬낀의 삶과 당시 역사의 이해가 없다해도 보편적 인간존엄에 대한 작가의 의지는 읽혔겠지만 그 혁명성까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저는 미로노프 대위의 딸입니다."(<대위의 딸> 182쪽)

이야기는 뾰뜨르 안드레이치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배 속에서부터 근위대 중사로 등록되어진 그리뇨프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반 군대로 배속된다. 그리뇨프는 요새로 가던 길에 만난 나그네에게 길을 안내해준 고마움에 대한 작은 성의를 베푼다. 그 나그네는 반란을 일으킨 뿌가쵸프였고 요새가 함락된 후 그리뇨프는 살아남게 되지만 반란군이 진압된 후에 반란진상조사 위원회에 소환되었다가 시베리아 종신 유배형을 받게 되는 이야기다. 여지껏 유쾌하게 흘러오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가 싶더니 마샤(마리아 이바노브나)가 나서서 그리뇨프를 구해내는데, 만약 마샤가 미로노프 대위의 딸이 아니었더라고 예까쩨리나 여제의 마음을 살 수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마샤의 '대위의 딸'이라는 것은 명예이지 거창한 신분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그리뇨프와의 첫 만남에서 대위의 부인 바실리사예고로브나의 딸의 처지를 한탄하듯 하는 말은 그들의 가난한 형편을 드러내고 마샤는 그리뇨프가 보는 데도 그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었다. 하지만 이야기 속 그들은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 반란군 뿌가쵸프가 요새를 함락시킨 후 사람좋은 미로노프 대위 부부의 처형이 끔찍한데 이를 제외하면 뿌가쵸프는 굉장히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뇨프는 마샤의 활약으로 풀려난 후 뿌가쵸프의 처형을 보게 되는 데 그리뇨프를 발견한 뿌가쵸프는 고개를 숙여 보인다. 뿌가쵸프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자신이 벌인 반란에 대해 회한이나 후회같은 것은 없는 농노의 해방을 위한 정당한 일이었음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되었는데 이는 작가가 뿌가쵸프를 자신의 이야기 속에 그려내는 모습을 통해 혁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대위의 딸>은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가 모두 살아움직이는 듯 생생하고 제 역할을 맡고 있어 유기적으로 엮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을 갖고 있다. 그저 동화적이고 시대배경을 생각하면 환타지처럼 보이기까지하는 이 이야기는 기계장치의 신에게 의지하듯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뇨프의 발자취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전진하고 사건은 해결되어 나간다. 철 없는 그리뇨프를 사람을 만들고자 시골 요새의 군대로 보낸 아버지의 뜻대로 그리뇨프는 이 여정을 통해 점점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위의 딸>은 전제정치에서든 반란군체제 아래서든 개인 삶의 자유와 인간존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어떤 대의명분이든 그 위에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느껴졌다.

차르 니꼴라이1세는 뿌쉬낀의 삶에 들러붙어 끈질기게 괴롭혔다. 뿌쉬낀에 대한 집착적인 검열, 검열, 검열. 이렇게 검열을 받으면 때려치울 마음도 들 것 같은데 나같은 범인이 아니기에 검열도 뿌쉬낀의 창작열을 이겨내지 못한 모양이다. 차르는 뿌쉬낀의 미모의 아내를 넘보기까지 하고 뿌쉬낀을 시종보로 임명해 인간 존엄을 모욕한다. 차르 옆에서 교태를 감추지 않는 어린 아내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이었겠는지... 이쯤되면 작가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리고 38세에 맞은 어처구니 없고 허망한 죽음은 21세기의 독자에게도 놀라움과 한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뿌쉬낀은 살아생전의 명성만큼 풍족한 삶을 영위한 것이 아니라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서 좋은 교육은 받았지만 부모의 무관심 속에 자랐고 결혼 후에는 빚에 쪼들려 살아야 했다. 그 가운데 지독한 검열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끊임없이 했고 3년 동안 공을 들인 <대위의 딸>을 죽기 1년 전에 완성했다고 한다. <대위의 딸>에 대한 감동은 주저없이 뿌쉬낀의 다른 작품을 선택하게 할 것이다.

좋아요
댓글
2
작성일
2023.04.26

댓글 2

  1. 대표사진

    세상의중심예란

    작성일
    2018. 12. 30.

  2. 대표사진

    이야기

    작성일
    2018. 12. 30.

    @세상의중심예란

이야기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3.23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3.23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3.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3.1
  3. 작성일
    2025.2.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2.7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59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8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