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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89
- 작성일
- 2020.9.2
백범일지
- 글쓴이
- 김구 저
스타북스
백범 김구를 빼고는 우리의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을 이야기 할 순 없다. 그를 주축으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신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책읽기가 유일한 취미라 말할 수 있고,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챙겨보곤 했던 tvN의 <요즘책방-책을 읽어드립니다>에서소개되었던 그 때의 감동을 되살려 김구 선생님의 생생한 기록을 고스란히 녹아있는 <백범일지>를 광복의 8월을 맞아 제대로 읽어보며 그를 비롯한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노력과 희생을 한 인물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상기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머나먼 타국 중국을 떠나 있을 때 자신의 삶과 행적을 세세히 기록해 둔 것을 근간으로 한 <백범일지>는 '상권', '하권', '나의 소원' 이렇게 총 3부로 나뉘어진다.
'백범일지-상권'은 그의 두 아들 인과 신에게 쓴 일종의 유서형식으로, 53세때 상해 프랑스조계의 임시정부청사에서 1년정도 시간들여 기술하였다고 한다. 젊어서 기울어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하고 기미년 3.1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를 조직해 십여년간 독립운동을 하며 모진 시련을 겪은 일들을 두 아이가 성장해 자라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기록이라고 하니 아버지로서의 어떤 심정으로 써 내려갔을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스스로도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본받으라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10살과 7살 된 아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비였기에 자신의 조상과 가문 내력, 성장과정, 결혼, 동학운동과 독립운동, 투옥과 탈옥과정, 방랑과 유람을 다녔던 시기, 임시정부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의 항일투쟁에 대한 세세한 기록들을 적어 미주와 하와이 동지들에게 보내 훗날 자신의 아들들에게 보여주길 부탁한 가슴아픈 사연이 담근 글이다.
'백범일지 -하권'은 70평생을 회고하면서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 사건 이후 중일전쟁 결과로 인해 독립운동 기지와 기회를 잃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던지려 했으나 그것 마저도 허락되지 않아 다음 기회를 노려던 중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인물됨과 경험부족으로 숱한 과외와 시행착오를 겪음으로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조국 독립에 대한 자신의 이력과 포부를 밝히려 해서 쓴 책으로 하권 역시 유서와 다름없다고 출간사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나의 소원'은 '민족국가', '정치이념', '내가 원하는 나라'라는 세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우리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을 서술한 것으로 김구 선생님하면 떠오르는 그 유명한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세번 모두 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라고 대답했던 연설이 여기에 담겨져 있으며, 이 세 편의 글들은 그의 70평생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글들로 엮어놓았다.
창수라는 이름에서 몽우리돌대로 살아가리라는 결심으로 김구라는 개명을 했으며, 왜구의 국적에서 이탈하고자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범부의 첫글자를 따, 아무리 천해도 애국심이 이들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바램으로 호를 백범으로 정하게 되었다는 제대로 된 의미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살해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일본인을 죽인것이 아니라 국모폐하의 원수를 갚고자 즉흥적인 살해를 해 투옥한 것 사실과 투옥과 탈옥에 만세운동이 증폭제가 되어 더이상 국내에 머무를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상해로 떠나 임시정부조직을 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안창호의 신민회 조직으로 재투옥될 당시 갖은 고문과 심문에도 일본 경찰에서 형사질을 하는 우리 민족이 자신이 과거 탈옥한 김창수라는 사실을 일러바치지 않은 것을 기뻐하는 회상하던 기록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나는 기뻤다. 나라는 망하였으나 민족은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놈의 경찰에서 형사질을 하는 한인의 마음에도 애국심은 남아 있으니. 우리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믿고 기뻐했다. 형사들까지도 나를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있으니 나로서는 최후의 일각까지 동지를 위하여 싸우고, 원수의 요구에는 절대 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p. 222)
또한 이런 일도 있었다.
이토록 가난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충혼이 된 나석주가 폭탄던지러 가기 전 자신의 옷을 저당잡혀 고기 반찬거리를 사온 후 자신의 생일을 차려준 일과 자신의 어머니 환갑잔치조차 못해 드린 것을 평생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을 평생 기념하지 않겠다 결심하며 <백범일지>에 생일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팠다.
일본노래와 유창한 일본어 실력탓에 왜놈형새를 잘하는 이봉창이 천왕에게 폭탄을 던지러 가기 전 기념사진을 찍으러 가며 김구에게 한 말 역시 눈물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안색이 몹시 처연해 보입니다. 저는 영원한 쾌락을 누리고자 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두사람이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p.313)
또한 윤봉길의 거사준비과정의 도시락 폭탄 제조와 폭발시험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와 말쑥한 일본식 양복을 입히고 고기반찬으로 새벽조반을 해 먹이고 보내는 데 자신의 6원짜리 시계를 김구의 2원짜리 시계와 바꿔끼자고 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왔다.
당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 와해되는 상황에서 젊은 이들이에게 전하고자하는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새겨야 할 말들로 들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나는 반드시 주자를 옳다고도 아니하고 마르크스를 그르다고도 아니한다. 내가 청년 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잊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역사적 이상, 우리의 민족성, 우리의 환경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다. 밤낮 나를 잃고 남만 높이고, 남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장한 체를 말자는 것이다. 이제는 부디 제 머리로, 제 정신으로 생각할 때임을 모두가 자각해야 한다. '(p.340)
결국 그는 해방을 보게 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슬픈 운명을 맞게 되었음을 가슴 아픔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나의 소원>에서 김구 선생님은 우리가 지향할 나라의 방향을 짚어주셨는데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마음으로 기록해본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우리가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p.405)
우리 겨레와 민족에 김구 선생님과 같은 위인이 계시다는 게 어깨가 저절로 으쓱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꼭! 무조건!! 읽어봐야할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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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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