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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가

 

 

일 청중, 이 명창, 삼 고수!

 

10월의 완창 판소리는 김미나의 적벽가다. 판소리 <적벽가>는 고어와 사자성어가 많고, 고음과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해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 난도가 가장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웅장하고 호방한 소릿조가 많아서 여간한 공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잘 부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인지 '그래서'인지 나는 적벽가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적벽가>는 대개 남자 명창들이 부른다는데 여 명창 김미나의 소리는 어떨까? 그녀가 첫 소절을 시작하는데 앞에 들었던 염경애, 김미진 명창과 다르게 호방하고 털털한 소리가 깜짝 놀라게 인상적이다. 한복을 입은 맵시나 얼굴 표정도 그러하니 100인이면 100색의 소리로구나!  (김미나 명창이 부르는 '박봉술제 적벽가'는 송만갑-박봉래-박봉술-김일구로 이어지는 동편제로, 또렷하고 굵은 저음이 특징인 고제 동편제 소리의 특징을 오롯이 지니고 있다.) 

 

판소리 적벽가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소재로 하지만 이야기의 뼈대만 빌려왔을 뿐이지 내용과 감성은 상당히 한국적이다. 집에 두고 온 부모, 자식, 아내를 그리워하는 '군사 설움 타령'이나 조조가 적벽에서 대패하고 도망가는 중의 '군사 점고' 장면 등은 한국적 슬픔과 해학이 넘친다. 고어와 사자성어가 많아 소리꾼들에게 조차 생경한 가사인 이 판소리가 아직까지도 불려지고 듣는게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매력이 소리의 생명력이 되는 것 같다.

 

적벽가의 최고 장면은 '자룡, 활쏘다'가 아닐까? 동풍을 부르겠다는 공명의 헛소리가 실제로 실현되자 주유는 간담이 써늘해져 후환을 없애겠다고 그를 죽일 것을 명한다. 하지만 그리될 것을 이미 짐작한 공명은 미리 조자룡에게 배를 대놓게 하고 한발 앞서 탈출을 하는데 자룡이 활을 쏘아 추격자의 배 돛대를 와지끈 분지를 때까지, 도망가는 자와 쫓는 자의 추격전이 '자진모리'로 흥미진진 스릴 있게 10분이상 펼쳐진다.(다 아는 얘기임에도 그 긴박함에 손에 땀을 쥐고 듣게 된다.) 소리꾼의 등골을 빠지게 하는 부분이지만 듣는 이는 참으로 재미지고 익사이팅하다.

 

또 다른 소리꾼 등골 빼는 부분은(등골 빼기로는 이 부분이 최고다.) 적벽 전쟁 장면. 아니리와 자진모리로 연속되는 길고 긴 이 장면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죽어간다. '大敗'라는 한 단어로 말 할 수 있는 상황에 놀라운 디테일로 병졸 개개인을 표현한다. 앉어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어 죽고, 성내 죽고....덜렁거리다 죽고...물에 빠져 죽고, 가이없이 죽고....빌다 죽고....(이럴때 먹으려고 미리 준비한 비상을 와삭와삭 깨물어 먹고 물에 풍덩 빠져 죽는 병졸도 있다.)....진시황 병마용갱 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지니 병사들이 생생히 표현되어 웃다가 문득 전쟁의 잔혹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놀랍다!   

 

확실히 <적벽가>는 소리꾼에게도 어려운 가사라, 이 공연에는 맨 앞자리에 가사집을 들고 소리꾼이 가사나 순서를 헷갈릴 때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조조가 도망가는 장면에서 명창이 왔다리 갔다리, 가사집을 들고 체크하던 스탭도 종잡지 못하고 당황. ㅎㅎㅎ 그래도 듣는데 아무 지장 없었다!(신기하다.) 공연 시간도 앞의 '도원결의' 장면등 상당 부분을 빼고 정리하여 두시간 반 정도로 끝났다. 하기도 듣기도 어려운 소리라 그랬나보다.     

 

국립극장 들어가는 길에 지난달 공연했던 김미진 명창을 만났다.('보았다'가 아니라 '만났다' 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 반가워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민낯에 검은 패딩코트를 입어 처음엔 김미진 명창인줄 몰랐는데 무대에 서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와 카리스마가 있어서 눈에 확 띄었다.(오!) 우리가 반가워하자 매달 와주어 너무 고맙다고, 진심 고마워해서 우리 아줌마들을 감동시켰다. 소리도 모습도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고수 송원조님도 인상적인 분이시다. 생업에 종사하다 남들 다 은퇴할 무렵인 60세에 데뷔해서 무형문화재까지 오른 분이다. 1938년생이니 80이 다 되었다. 무엇을 하다가 그 나이에 결국 판소리로 들어왔을까? 그 끼와 재능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까?......

  

 

 

 

소리: 김미나

고수: 송원조, 윤호세

2016.10.29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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