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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마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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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
글쓴이
길혜연 외 1명
후마니타스
평균
별점8.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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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아파트값이 문제가 되고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삶의 동선이 선망이 되는 나라에서, 그런 삶의 양식에 대한 의문이 던져지지 않았다는 점은 의문스럽다. 과연 우리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은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노작이다. 직접 서울의 아파트 단지를 발로 뛰며 연구하며 만들어진 이 책은 다소 주제 의식의 과잉이 보여지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치를 느낄만한 책이다. 과연 이방인 지리학자가 '방리유 폭동'으로 점철된 실패한 아파트 정책으로 곤란을 겪은 프랑스인이 바라보는 '아파트 공화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

그의 조사에 의하면 '2000년 현재 1960년 이전에 지어진 도시 주택은 5% 이하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쨌든 그 확장은 현재도 진행중이다'(이상 p.17) 그런 도시를 점점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며 그가 보기에 이런 아파트 단지의 모습들은 병영과 닮아 있다.

전체적으로는, 나란히 줄지어 있는 건물의 모양이 군대 막사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김주철과 최상철은 1970년대에 건설된 아파트단지를 가리켜 '병영'이라 했고, 강홍빈은 "군대 막사와도 같은 아파트를 건설하는 도시재개발은 계속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한번은 동료 도시계획가에게 서울의 5천분의 1 축적지번약도를 보여주었더니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 했다. 바로 반포의 아파트단지였다. (p.42)

물론 이런 도시의 변모는 1960년대부터 진행된 무차별한 재개발 사업 때문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그러면서 현재까지도 진행되는 아파트 단지의 건설의 여러 면모를 통해 우리의 주거 문화를 통찰해 나간다. '국민주택'이라는 개념 아래 형성된 프랑스의 아파트 단지와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분명히 다르다. 프랑스의 아파트 건설의 근간을 이루는 '국민주택'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플라망은 " 국민주택이란 하위 계층을 정상적인 환경에 수용하기 위해 국가의 법률적, 재정적 지원을 받아 건설된 주택이다"(p.95)

그러나 한국의 '아파트 단지 건설 정책은 국민주택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p.96)

공공주택의 한국적 정의를 살펴보면, 국민주택기금이나 주택은행으로부터 건설 지원을 받은 25평 이하의 주택을 의미하거나, 주공이 건설한 주택을 지칭한다. 그러나 주공아파트단지의 경우도 평형별 비율을 분석해 보면 소형 아파트는 소수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p.97)

저소득자를 배려하는 프랑스의 아파트와 달리 한국의 아파트에는 중산층이 거주하며 그들은 아파트를 소유함으로서 자신의 계층을 확인하게 된다.

알타베에 따르면 주택이 자신의 실제 계층보다 더 상위 계층에 속해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거주 장소는 자신의 계층을 정의하기 위한 하나의 목표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도시 중산층을 의미하는 가장 함축적인 상징으로 고층 아파트가 자리 잡았다는 것은 분명 특이한 점이다. (p.125)

즉 유독 한국인이 아파트에 열광하는 것은 사회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외형적 관점에서 아파트는 여러 계층과 범주로 이루어진 중간계급 일반의 주거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상류사회적 형태로 인식되는 것이다. (Lett의 문헌 재인용) (p.129)

즉 한국에서의 아파트의 성공는 한국의 현대화에 일반인들이 의지하는 '두 가지 국민 도박, 즉 저축과 자녀 교육'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의식에 상당히 많이 기대어 있는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하기에 한국인들의 아파트 구조는 획일적 구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주거 공간의 획일화를 너무도 쉽게 수용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무관심은 이렇게 해서 허용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p.148)

이러한 연유로, 한국의 아파트에는 이론적 근거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단지 개념의 기원에 관해 체계적으로 꾸준히 인용되어 온 것은 미국에 기원을 둔 페리의 근린주구이론'(p.160)이다. 하지만 영미권 국민들이 철저히 주택을 지향하는데 비해 한국의 단지 개념이란 거의 아파트에 적용된다는 점이 다르다. 결국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론이 더욱 중요했다. 결국 아파트단지가 대량생산되는 과정에서 건축이론은 실제 아파트단지를 탄생시킨 기술상의 필요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아파트에 대한 인식 역시 재고해 보게 된다. 즉 우리의 국토가 좁기 때문에 공동 주택인 아파트의 건설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저자의 논거를 보자.

아파트단지를 인구증가와 주거 공간의 조밀화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간주하는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인구밀도에 대한 수학적 정의에 기초한다고 해도, 아파트 단지가 가장 조밀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p.167)

구 단위로 보았을 때, 서울의 인구밀도는 주택 구조의 변화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강남구,노원구의 경우 이 지역의 60~80퍼센트가 아파트이지만 인구밀도는 오히려 도시 평균에 못 미친다 (pp.168~169)

오히려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미국화'를 통해 '현대화'로 이해된다.

미국화의 완성으로 보이는 강남 도시 계획은 논의의 대상이 될 만하다. 미국적 영향의 힘은 도시 전체에서 드러난다. 바둑판 모양으로 난 대로는 대부분 미국의 근린지역과 같이 격자 형태를 띤다. 맥도널드, 켄터키후라이드치킨, 티지아이 프라이데이스 등 상업 공간의 식민화가 '미국화'된 도시경관의 인상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주거 공간만을 관찰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인의 80퍼센트 이상이 거ㅜ하는, 정면에 개방된 잔디밭이 딸린 단독주택은 서울의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가 전혀 아니다. 앵글로색슨식 거주 공간 모델에 아파트단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미국적인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거 공간임이 틀림없다. 이 역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처럼 건축과 도시계획 분야에서 미국 모델의 영향은 직접적이기보다 상징적인 측면에서 더 잘 포착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미국식 모델은 실제 건축의 현대화에 기여하기보다 현대성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더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pp. 173~174)

우리의 '아파트' 인식은 '현대성' 또는 '서구성'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가 과연 서구적인가라는 질문 역시 이 책에서 던져진다.

아파트의 부엌, 화장실, 욕실과 난방 방식이 서구 모델의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다는, 기술 진보로 인한 결과라는 측면에 인과적으로 더 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연탄에서 가스로 바뀐 난방의 변화가 한국식 온돌 모델의 기술적인 완성이며 이는 한국인들의 특별한 주거양식, 즉 좌식 생활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p.189)

저자는 '한국식' 아파트 구조의 분석을 통해 오히려 한국의 아파트가 '한국적 특성의 주거양식은 요지부동'(p.206)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쯤 이르면 한국인의 '아파트'에 대한 의식은 일종의 표상에 매달리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된다. 그건 아파트를 살 때 부모의 도움을 받는 한국인들의 주택 구매 관습과도 연관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유교주의 사회가 어쩌면 드러내지 않고 싶어하는 효도의 경제적인 양상을 드러낸다'고 접근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아파트는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표상 체계로 작동하면서 한국 내에서 중산층의 안정적인 재산 축적의 기반의 형태로 정착된다.

1998년까지 분양제도에 따른 가격 통제로 지불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부의 축적을 가져다준 아파트는 한국의 중간계급을 형성시킨 진정한 공장이었다. 결국 아파트단지는 농촌공동체로부터 도시로의 이주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 정체성의 기준들이 무너지는 가운데에도 이들 신흥 중간계급에게 사회적 인정이라는 상징을 제공했다. (p.237)

이런 아파트의 계급적 상징화는 현재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대단지 아파트의 기형적 성장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아파트 공화국>은 매우 신선한 접근을 시도한 책이다. 과연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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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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