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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o
- 작성일
- 2022.2.21
당신이 몰랐던 K
- 글쓴이
- 박노자 저
한겨레출판
2000년대 초반에 송영 작가가 쓴 <발로자를 위하여>란 소설이 기억난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여행을 가, 현지 가이드를 하던 한국어에 능한 러시아 청년을 만나 나눈 교감에 대한 얘기다. 그 청년의 이름이 ‘발로자’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발로자가 청년 박노자 교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발로자는 블라디미르의 애칭이고 블라디미르는 박노자 교수의 본명이다.
소설 속에서 청년 발로자는 관광객들이 러시아 슬라브 문화의 정통성을 교회 건물 등으로 유명한 모스크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자. 얼굴을 붉혀가며 반박한다. 죽은 건물, 졸부들의 천국 대신 비판적 지식인의 요람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보라고 얘기하며. 문화의 정통성을 건축물의 양식에서 찾지 말고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정신에서 보라는 그의 항변은 꽤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한국인 여성과 약혼했다는 이유로 대학교 은사로부터 배척당하는 장면도 놀라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밖으로 나갈 녀석’으로 이해되면서 배척된 이야기다. 러시아 같은 다민족 사회에서, 그것도 대학에서 한국 여성과 결혼을 약속했다고 그런 일을 겪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지금이나 젊을 때나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구나 느끼게 됐다.
소설에 대한 얘길 길게 한 이유는 이번 박노자 교수의 신간 <당신이 몰랐던 K>에서 그가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배고팠던 시절,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대 안경환 교수를 만난 장면을 얘기해서다. 개인적으론 <발로자>가 소환됐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논리적 주장들엔 사실 삶의 이야기가 함께 한다. 그래서 매우 논쟁적인 주장들조차 공감의 힘을 얻는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공개적으로 ‘이순신을 교과서에서 빼라’고 주장하는 이가 그 말고 누가 있을까?
박노자 교수는 유대계 러시아인이다. 그리고 어렸을 땐 뚱뚱한 편이었나 보다. 그게 박노자 교수가 밝힌 스스로가 왕따를 당했던 이유다. ‘계집애 같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던 얘기라고 한다. 그리고 박교수는 당시 러시아 학교에 만연하던 ‘멋진 군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각종 전쟁의 명장과 대첩이 가르쳐지던 학교에서 ‘싸움질 못하는 남자’는 모욕의 대상이 된 게 아닐까린 추정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의 군사주의적 선전이 싫다.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에게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이순신을 계속 배워야 할 아이콘으로 둘 거냐고 묻는다. ‘다르게 생기고 돈 없고 싸움을 못한다 하더라도 약자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어깨를 펴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더 나은 나라가 아니냐고 물으면서. 이게 박노자 교수가 K팝, K방역으로 우쭐해하는 우리에게 진짜 K가 뭐냐고 묻는 이유일 것이다.
항구에서 새로운 음악이 발달하는 모습을 보며 흥미롭게 생각한 적이 있다. 뉴올리언스의 재즈가 그랬고 포르투갈의 파두도 마찬 가지다. 무역이 이뤄지고 교류가 늘고, 그렇게 문화의 접변이 이뤄지는 곳에서 새로움이 창조된다. 어쩌면 러시아 출신의 한국인 박노자의 시선도 그런 면에서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노르웨이 청년들도 K팝에 심취했나 보다. 그들을 만난 이야기도 흥미롭다. 대부분 젊은 여성들인데 이들은 요새 자본이 만든 K팝이 서태지의 저항성을 잃었다며 아쉬워한다. 그리고 아이돌로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가 부자연스럽다고 갸우뚱한다. 그러다가 아이돌의 연애 금지가 계약조건이 되는 현실에 개탄하더니 연예 산업의 비정규직 문제로까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K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구나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경계인으로 전하는 그의 문제의식과 고민은 가끔은 나의 상상력의 한계도 무너뜨렸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저출생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2067년에 이르면 한국 총인구의 46.5%가 65세 이상의 노인’이 될 거라고들 한다. 그래서 나온 대책은 거칠게 말해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거나 양육을 보조하는 인프라 구축에 쏠리곤 한다. 한 걸음 더 떼 봐도 양성평등을 위한 고민 정도일까?
반면 박노자 교수의 대안은 지금 독일이 하고 있는 것처럼 ‘대대적인 이민 수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이 한국에 기여하고 나면 멀지 않은 미래에 영주권이나 국적을 얻을 거라는 희망’을 주는 방식으로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한국인들도 그런 이민자나 그들의 문화에 대한 존중, 수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성 이민자들에게 김치 담그기를 가르치는 동화 정책만으론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다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나라, 그래야 국가 존립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나라, 그게 <당신이 몰랐던 K> 중 또 하나의 모습이다.
혹자는 박노자 교수의 글이 매번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인용 사례만 달리해 반복하고 있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생각은 조금씩 조금씩 현실 속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진짜 선진국 대한민국을 위한 박노자 교수의 불편한 제안이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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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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