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노누사
- 작성일
- 2019.9.14
하우스 오브 갓
- 글쓴이
- 사무엘 셈 저
세종서적
'프리뭄 논 노체르'. 몇 년전 反트럼프 대통령 시위에 등장한 라틴어이다. 무엇보다 해되는 일을 하지 마라는 오래된 의학 전통의 격언이자,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하우스 오브 갓'에서 프리뭄 논 노체르가 어떻게 그려내는 지 살펴 보자.
의학을 소재로 한 장르가 무엇이던 대개 관심을 자아낸다.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선망 때문만이 아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 의료사고가 쉽게 은폐되는 금단의 땅,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 이처럼 의학 관련 소재 자체의 강렬함 역시 한 몫할 것이다. '하얀거탑', '굿닥터', '낭만닥터 김사부' 등의 드라마나 '블랙잭', '의룡' 같은 만화가 화제를 끄는 이유이다.
'하우스 오브 갓'*은 정통 의학소설이다. 의학이 전공인 작가가 작품 전편에 걸쳐 의료행위와 병동 일상을 현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때론 충격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필자는 상기한 의학소재 작품들에 비해서 흐름이 다소 밋밋하고 등장인물이 입체감있게 그려지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주인공과 대비되는 인물간의 갈등 구조가 뚜렷하지 않고 극적 흐름이 다소 밋밋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 하우스 오브 갓 :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재미 유대인이 설립한 병원, 이하 하우스로 표기
독자라면 누구나 고머*에 대한 비하, 환자를 고통에 몰아넣는 과잉진료, 환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거북하고 불편한 의료행위, 적나라한 섹스 장면 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의학작품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런 내용들이 도처에 깔린 탓에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갈등선을 명확히 하는데 한계가 있는지 모른다. 고머 비하와 도를 넘는 과잉진료는 인간성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하우스에서 고통없이 죽기를 원하는 환자를 연명치료라는 미명하에 끝없는 고통으로 밀어넣고 병원의 잇속만 챙기는 죽음의 시장화가 스스럼없이 자행된다. 70년대 이후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지금도 죽음의 시장화는 여전하다.
* 고머 : 작품에서 치매, 뇌졸증 등 인간 존엄성을 상실한 노인환자를 칭하는 속어
소설 속 장면이 전환될 때 마다 줄거리와 연결되는 소재가 있다. 닉슨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케이트 스캔들'이다. 이 작품에서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소설이 처한 시대 환경을 알려주는 수단 이상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동 시대의 미국을 뇌물, 부패, 착취가 빛나는 역사를 가진 부도덕한 나라로 정의한다. 가난한 나라, 힘없는 백성을 생쥐 취급하는 몹쓸 나라이기도 하다. 반전의식이 강한 작가성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필자는 작가가 병원을 작은 미국으로 비유해 본다. 앵글로 색슨족을 제외한 다른 혈통의 등장인물들을 종종 부정적이거나 비하하듯 묘사한 것은 유색인종에 대한 은연중의 차별이 심한 미국사회 현실을 통렬하게 지적한 것일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로이와 그의 친구들인 척, 포츠, 런트, 에디, 후퍼. 이상의 6명이 하우스 인턴으로 부임해 1년 동안 겪은 좌절, 방황, 성장을 그린다. 죽지 않는 고머와 강도높은 의료노동에 지쳐간 나머지 결국 자아가 무너저 내린 애환이 작품 후반부까지 담담하게 그려진다.
작품의 기승전결은 명확하다. 주인공 로이 바슈가 프랑스에서 연인과 여유있게 휴가를 보내다가 하우스 인턴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레지던트인 팻맨에게 지도받으며 힘들지만 보람있게 인턴을 즐기는 시기까지가 기(起)에 해당한다. 승(承)은 팻맨의 뒤를 이어 조가 담당 레지턴트로 오면서 일어난다. 팻맨과 정반대 스타일인 조. 로이와 서서히 갈등을 벌인다. 연인 베리와 점차 소원해진다. 등장인물들이 섹스에 탐닉한다. 샌더스 환자가 사망하며 둘의 갈등이 고조된다. 전(轉)의 단계에서 로이가 폭주한다. 본격적으로 하우스 의료시스템과 갈등한다. 응급실 병동에 순환 배치된 로이. 믿고 따르던 팻맨마저 부정한다. 베리와 결별직전까지 간다. 친한 이들의 죽음 앞에 좌절한 채 급기야 환자가 배설한 오물과 토사물 위에서 절규한다. 결(結). 족크 병동으로 배치된다. 충격을 딛고 집중치료업무에 몰두하지만 분노는 자신도 모르게 쌓여만 가는 로이. 베리의 애정어린 충고마저 무용지물이다. 마르셀 마르소 마임 공연을 보다 그간 쌓인 감정이 폭발하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팻맨과 베리의 조언으로 정신과 레지던트로 새출발을 기약한다.
주인공 로이 바슈를 살펴보자. 재능있는 인턴이다. 팻맨을 따르고 그에게서 고머환자를 다루는 법을 배운다. 담당 레지던트가 조로 바뀌자 무리한 진료를 지시하는 조에 반발하여 차트카트에 가상의 진단, 처방, 임상을 하며 환자를 돌봐 준다. 교감을 나누던 샌더스의 죽음을 계기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인지하지 못하고 냉소적이고 주위를 힐난하여 친구, 하우스 동료 스태프와 사이가 멀어진다. 응급병동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 하기도 하지만 베리의 도움으로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샌더스가 조언했던 환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의사의 본분을 깨닫는다.
로이 바슈를 성장시키는 중요 인물은 팻맨과 베리이다. 팻맨은 스마트하고 사려깊은 로이의 첫 담당 레지던트다. 일견 보기에 냉소적이고 하우스 의료체계를 비아냥대지만 환자에 대한 속깊은 애정이 있다. 이 애정이 로이와 팻맨을 가르는 차이다. 그는 치료를 하려는 의사의 충동과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엉터리 믿음이야말로 질병의 근원이 되는 의사 자신의 병이라 여긴다. 의료실적을 올리려고 의사소통이 안되는 환자에게 불필요한 걸 넘어 극심한 고통을 주고 상태를 악화시키는 무분별한 과잉진료에 반대한다. 고머환자를 그냥 내버려 두게 하여 증상을 호전시키는 처방을 쓴다. 노자의 무위,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석규가 떠오른다. 팻맨에 대칭되는 인물로 조이, 피시(수석레지던트), 레고(원장)가 있다.
베리는 로이 바슈의 연인이다. 임상심리학이 전공이다. 로이의 카운셀러 역할을 한다. 냉소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로이에 대해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로이가 외적 투사 상태라고 진단한다. 냉소적이고 모든 것을 비난하는 행동이 로이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로이에게 숨겨진 방어기제를 알아보고 그가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 준다.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라면 베리가 내린 진단은 방황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일어난 작가의 인턴시절 체험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작가는 베리를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로이의 내면세계를 햇볕아래로 끄집어 낸다.
작품 전개상 가장 중요한 3 가지 소재가 있다. 3명의 죽음과 마르셀 마르소 마임, 그리고 카누여행이다. 로이와 친한 샌더스, 사울, 포츠가 죽음에 이른다. 의사인 샌더스는 암환자이다. 의사의 표상을 전해준 그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이 하우스의 의료체계를 조롱하고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쌓는다. 사울은 백혈병 환자이다. 주인공이최초로 치유시킨 환자이나 재발하여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로이가 충동적으로 사울을 안락사시킨다. 친구이자 인턴동기인 포츠는 자살한다. 자산이 담당한 옐로우맨에 첫 처방을 잘못 내린 후 괴로움에 휩싸인 끝에 옐로우맨이 죽자마자 로이를 만나고 나서 자살한다. 포츠가 내적 투사를 극복하지 못해 자살하자 로이는 외적 투사에 몰두한다. 족크병동에서 모든 것을 잊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로이의 분노를 점점 쌓여가게 만든다.
로이를 분노에서 구해준 계기가 마르셀 마르소 마임공연이다. 강제로 공연장에 이끌려 베리와 공연을 보는 와중에 로이는 그간 자신이 켜켜히 쌓아온 분노를 정화한다. 베리와 화해하고 팻맨에게 사과한다. 소원해진 친구들과도 다시 원만해진다. 마르소 마임공연이 없었더면 로이가 쌓아놓은 분노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었을까? 한편 로이와 베리는 로이가 자신을 되찾고 나서 팻맨과 인턴들의 다음 진로를 모색할 세미나를 끝낸 후 친구들과 카누여행을 한다. 카누여행에서 베리는 인턴생활을 하며 상실했던 친구 모두의 상처가 낫도록 상담해 준다. 에디가 정신병을, 후퍼가 환자를 죽음에 내모는 진료를, 런트가 섹스탐닉을 치유하도록 조언한다.
밀려드는 차트카트와 줄지 않는 고머환자에 치인 인턴들이 점차 자신만의 분노를 쌓아만 간다. 급기야 간호사, 병원 스태프들과 섹스를 하기에 이른다. 하우스 동료들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섹스로부터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을까? 인턴들은 다음 일을 시작하기 위해 매일 일상을 잊고자 한다.오늘을 잊고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섹스는 남여간의 관계를 뜻한다. 억압당하는 오늘, 혼자이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의 쾌락적 표현이다. 결국 섹스에 몰입하는 것은 주인공들이 매일이 버거운 인턴생활에서 삶을 확인하고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함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치 필자가 방황했던 대학시절 내뿜는 뿌연 담배연기에 내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위안받았듯이 말이다.
로이는 길지 않은 방황 끝에 되돌아 왔다. 팻맨의 무위치료가 단지 아무런 의료행위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고머 환자들을 사랑하는 애정을 깔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작가는 로이의 각성으로부터 '프리뭄 논 노체르', 환자에게 해가 될 어떠한 진료와 처방을 하지 말라고 설교한다. 그는 의사가 해야 할 일이 환자와 함께 하는 것, 치료를 넘어 정을 베풀고 사랑하는 길을 찾는 데에 있음을 천명한다. 인턴들이 끝없이 좌절하고 고통스럽게 방황하는 아픔을 딛고 일어설 해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려낸다.
환자는 언제든 자신이 겪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을 의사에게 안겨줄 수 있다. 환자가 죽거나 증상이 악화될 때 의사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의사도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의료사고를 은폐하는 비도덕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그들이 겪을 무력감은 우리 사회가 감싸 안아야 할 상처이다. 한편 의료법인이 영리사업을 하는 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공공성을 제고할 의무가 있다. 의료행위는 商術이 아닌 仁術이기 때문이다. 의사에 앞서 의료기관이 먼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이다. 1973년의 '하우스 오브 갓'이 2019년 한국 의료계에 던지는 반면교사이다.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처방을 따를 뿐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처방은 절대로 따르지 않겠다. 나는 어떤 요청을 받더라도 치명적인 의약품을 아무에게도 투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지도 않겠다."
-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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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