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

노누사
- 작성일
- 2019.11.13
고고학의 역사
- 글쓴이
- 브라이언 M. 페이건 저
소소의책
누구나 한 번 쯤 오지를 탐험하는 장면을 상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꿈은 이내 고된 역경을 뚫고 수백, 수천 년동안 이방인을 허락하지 않은 미지의 유적을 발견하는 희열로 번졌을 것이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고고학은 스릴 넘치는 어드밴처와 환희와 감격을 주는 학문의 이미지로 다가선다.
브라이언 페이건의 [고고학의 역사]는 모험과 불굴의 의지라는 긍정적 선입견일 수 있는 고고학이 태동하여 오늘날까지 걸어온 성장, 발전의 경로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불법적인 도굴은 아닐지언정 유물과 유적 그 자체에 대한 탐닉, 혹은 무계획적이거나 부주의로 인해 발굴과정에서 자행된 수많은 유품들의 훼손과 소실 등 고고학의 부끄러운 민낯까지 서슴지않고 풀어낸다. 어쩌면 이러한 부끄럼움을 딛고 일어나는 자기 혁신 끝에서야 고고학이 오늘날에 온전하게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저자는 '인간행위, 인간사회의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라 규정한다. 즉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살았던 인류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했는지를 유물과 유적을 토대로 유추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이런 관점은 반델리어의 '단지 유물연구가 아닌 발견물이 주는 역사와 정보에 대한 학문'이란 견해와도 연결된다. 결국 고고학이란 발견된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는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발견품들을 면밀히 관찰한 후 각종 문헌기록과 구전되는 전승 등을 통해 유적의 흔적을 남긴 인류 사회를 묘사하거나 해석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고고학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아래의 다섯 가지 꼭지를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고고학의 발전 경로이다. 단지 유물과 유적 자체에 흥미를 가졌던 존 오브리와 같은 호고가(好古家)에서 시작하여 로제타 스톤을 해석한 샹폴리옹으로부터 이집트학이 태동되었다.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니네베), 프레더릭 캐더우드& 존 로이드 스티븐스(마야), 하인리히 슐리만(히살리크, 미케네)등 초기 고고학자들은 유적들을 무자비하게 발굴하였는데 19세기 들어 피트리버스, 페트리 등이 보다 체계적인 발굴조사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한편 덴마크 고고학에서 선사시대를 삼시대(석기-청동기-철기) 체제로 분류하며 고고학 분류체계를 탄생시켰고 상대편년기법의 토대가 되는 교차편년기법(이미 알려진 유물을 바탕으로 시간순서를 찾는 방법)이 소개되기 이른다. 20세기 들어서는 발굴보다 기록과 관찰, 문헌연구, 지표조사를 강조하는 사조가 출현한다. 지역적으로는 유럽과 서아시아에 집중된 것에서 탈피하여 아프리카, 아메리카, 동아시아로 확장된다. 끝으로 지질학, 생물학 등 다른 연관 학문의 도움을 받아 고고학은 환경, 경제, 생태, 경관 등 세부 분야로 발전한다.
둘째, 인류를 바라보는 인식의 확장이다. 초기 고고학의 무대는 주로 이집트, 서아시아와 같은 지중해에 인근한 근동지역과 유럽이었다. 당시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은 역사시대 문명을 이끈 지역답게 화려하고 웅장한 유적과 유물이 범란한 유럽과 근동지역이 당시 인류 문명을 주도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이 입증되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도와 동아시아에서도 다른 형태의 문명이 존재했고 이들 문명이 수백, 수천년 동안 큰 변화없이 정체된 게 아니라고 다이나믹한 변화를 이어왔다는 증거가 속출하였다. 이는 고고학 분야에서 인종우위 내지 인종차별적인 시각을 퇴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고고학이 내포한 성격을 명확히 알려준다. 단언컨대 고고학은 인문학의 성격을 띤 과학이다. 선사시대의 편년체계를 확립한 옌스 보르소예는 '역사가는 문헌을, 고고학은 유물을 연구한다'고 하였다. 고고학은 비단 유물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발견물의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 필수적으로 문헌고증과 사료를 참고하여 역사,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화학, 지질학, 생태학, 동물학과 같은 연관된 자연과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유물이 그려주지 않는 당시 생활상과 시대모습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시기를 기원전 1만 2천년 전후로 추정한 예가 좋은 사례이다.
넷째, 고고학의 발전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고고학은 무자비한 발굴에서 신중하고 더딘 정교한 발굴, 세밀한 관찰과 기록을 하는 방향으로 진보하였다. 20세기 후반들어 고고학은 더 이상 발굴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표와 경관을 조사하여 당시 시대상과 생활 현장을 생동감있게 유추하려고 애쓴다. 스톤헨지에 시선이 매몰되지 않고 주변경관에 집중함으로써 숨겨진 우드헨지와 더링턴월스를 발견한 게 대표적 사례이다. 오늘날 고고학은 협력과 통섭의 학문으로 진화했다. 자율주행차에 필수 아이템인 라이다와 드론 기술을 결합하여 밀림에 숨겨진 앙코르와트의 진정한 장관을 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욱 진보한다면 수많은 발굴 현장에서 기록된 엄청난 고증자료와 기록들을 빅데이터화하여 우리가 채 알지 못한 새로운 진실에 접근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고고학을 이끈 학자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고고학 초기에 다수의 발굴가들이 유적, 유물과 문명에 집착하고 환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고고학자들은 선배들의 행위를 통렬히 반성하여 옛 것을 남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인류의 기원을 밝힌 리키부부, 아메리카 고고학의 편년체계를 선도한 앨프리드 키더 & 막스, 여류 고고학자로서 아리비안 반도를 누빈 거트루드 벨, 선사시대 사회가 환경과 상호작용했음을 밝힌 환경고고학의 선구자 클라크 등 선배들이 쌓아놓은 업적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는 고고학의 초심을 지킨 학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머리를 숙인다.
고고학은 죽음의 학문이다. 이미 죽어 사라진 지 오래된 선조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삶과 생활양식을 상상한다. 또한 발견된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유적을 파괴하고 죽임으로써 고고학적 고증, 유물과 발굴기록을 새로이 얻게 된다. 옛 것의 죽음으로부터 옛 것의 실체가 오늘날 새롭게 태어난다.
진시황릉, 앙코르와트, 마야문명 등은 현대 과학으로는 100% 온전하고 체계적인 발굴을 하기 어려운 인류의 유산이다. 마치 중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동면에 들어가 언젠가 깨어나길 바라는 SF 주인공과 같다. 섣부른 탐욕에서 헤어나 무분별한 발굴을 하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 지구상에 남은 위대한 문명 유산이 온 인류의 축하 속에 기나긴 잠에서 깨어날 날을 기대해 본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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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