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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6.6
후처ㆍ전처 미라로 차례로 발굴…남편 묘는 관까지 흙으로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지난달 경기도 오산 공사현장에서 잇따라 발굴된 조선 전기 여성 미라 두 구는 한 사대부 남성의 첫째, 둘째 부인으로 추정돼 이들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미라가 된 두 여성 모두 임진왜란 이전인 1500년대 중반에 생몰했으며 이들의 남편인 사대부 남성은 첫째 부인이 사망하자 새 부인을 맞은 것으로 추측된다.
6일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과 김한겸(고려대)ㆍ권영숙(부산대) 교수팀으로 구성된 조사단에 따르면 서경문화재연구원이 지난달 중순 공사 예정지 일대에서 처음 찾아낸 미라는 '의인(宜人)'이라는 칭호를 받은 여흥 이씨 가문 여성이다.
조선시대 회곽묘 안 내관 덮개에서는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라는 글씨가 적힌 명정이 확인됐다.
발견된 미라 주인공은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6품 또는 종6품 작위를 받은 사대부집 가문 부인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이 첫번째 미라를 발굴할 당시 옆에 무덤이 하나 더 있었는데, 조사단은 이 묘가 위치상 남편 것으로 짐작했다.
주변에 물이 닿지 않았고 무덤에 회를 발라 수백년간 공기가 통하지 않게 잘 보존돼 있었기 때문에 조사단은 부부 미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두 번째 회곽묘 안에서 내관을 꺼내자마자 조사단은 전부 깜짝 놀랐다. 예상과 달리 여성의 미라가 또 다시 나왔던 것.
관 덮개에서 발견된 명정에 적힌 글씨는 '儒人00李氏之柩(유인00이씨지구)'. '유인(儒人)' 칭호는 미라의 주인공이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9품 또는 종9품 작위를 받은 부인임을 추정케 한다.
조사단이 주변을 파악해보니 정작 남편 묘는 생각지도 못했던 맨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관까지 모두 부패해 두 부인의 남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두번째 발굴된 미라는 의복과 신체 조건으로 볼 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연령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앞서 발굴한 미라보다 체격이 왜소해 키가 9㎝가량 작은 145㎝이고 치아가 덜 마모됐다.
이런 점들을 토대로 이 미라의 주인공이 지난번 미라보다 20∼30년가량 앞선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종합해 보면 첫째 아내는 남편이 관직에 갓 진출했을 때 일찍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 얻은 둘째 부인은 남편이 정6품까지 올랐을 때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정9품부터 한품계씩 올라가는 데 평균 450일이 걸리는데 종6품까지 6품계를 올라가려면 통상 7년 정도 걸리므로, 두 미라의 사망시기는 최소 7년의 차이가 있다.
지난달 30일 해포 작업을 하다가 특별한 사연을 접한 한 조사단원은 "남편이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고 혼자 흙으로 되돌아갔고 묘하게도 두 아내는 미라가 돼 400년 뒤 후손과 마주하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라 담당인 고려대 김한겸 교수팀은 치아 마모도 등으로 미라 연령대를 밝혀내는 한편 사망 원인이 임신과 관련이 있는지, 사망시기가 언제인지 등을 알아볼 계획이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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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지난달 경기도 오산 공사현장에서 잇따라 발굴된 조선 전기 여성 미라 두 구는 한 사대부 남성의 첫째, 둘째 부인으로 추정돼 이들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미라가 된 두 여성 모두 임진왜란 이전인 1500년대 중반에 생몰했으며 이들의 남편인 사대부 남성은 첫째 부인이 사망하자 새 부인을 맞은 것으로 추측된다.
6일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과 김한겸(고려대)ㆍ권영숙(부산대) 교수팀으로 구성된 조사단에 따르면 서경문화재연구원이 지난달 중순 공사 예정지 일대에서 처음 찾아낸 미라는 '의인(宜人)'이라는 칭호를 받은 여흥 이씨 가문 여성이다.
조선시대 회곽묘 안 내관 덮개에서는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라는 글씨가 적힌 명정이 확인됐다.
발견된 미라 주인공은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6품 또는 종6품 작위를 받은 사대부집 가문 부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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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여성 미라 오산서 또 발굴
(서울=연합뉴스) 서경문화재연구원(원장 장명수)은 경기도 오산시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 예정지 일대를 조사해 지난달 조선시대 사대부 여성 미라를 발굴한 무덤 옆에서 다른 여성 미라가 안치된 조선시대 회격묘(灰隔墓)를 발굴했다고 6일 밝혔다. 미라 발굴 과정에서 옆트임이 있는 장저고리, 허리치마 등 금직(錦織) 옷이 유물로 많이 발견됐다. 금직을 사용한 저고리와 치마, 단령, 철릭 등이 여러 벌 수습돼 조선 전기 복식 연구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2010.6.6 << 김우림 울산박물관 추진단장 >><< 사회부 기사 참조 >> photo@yna.co.kr |
조사단이 첫번째 미라를 발굴할 당시 옆에 무덤이 하나 더 있었는데, 조사단은 이 묘가 위치상 남편 것으로 짐작했다.
주변에 물이 닿지 않았고 무덤에 회를 발라 수백년간 공기가 통하지 않게 잘 보존돼 있었기 때문에 조사단은 부부 미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두 번째 회곽묘 안에서 내관을 꺼내자마자 조사단은 전부 깜짝 놀랐다. 예상과 달리 여성의 미라가 또 다시 나왔던 것.
관 덮개에서 발견된 명정에 적힌 글씨는 '儒人00李氏之柩(유인00이씨지구)'. '유인(儒人)' 칭호는 미라의 주인공이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9품 또는 종9품 작위를 받은 부인임을 추정케 한다.
조사단이 주변을 파악해보니 정작 남편 묘는 생각지도 못했던 맨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관까지 모두 부패해 두 부인의 남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게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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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여성 미라 오산서 또 발굴
(서울=연합뉴스) 서경문화재연구원(원장 장명수)은 경기도 오산시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 예정지 일대를 조사해 지난달 조선시대 사대부 여성 미라를 발굴한 무덤 옆에서 다른 여성 미라가 안치된 조선시대 회격묘(灰隔墓)를 발굴했다고 6일 밝혔다. 조선시대 한 사대부 남성의 전처와 후처가 함께 미라로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2010.6.6 << 김우림 울산박물관 추진단장 >><< 사회부 기사 참조 >> photo@yna.co.kr |
두번째 발굴된 미라는 의복과 신체 조건으로 볼 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연령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앞서 발굴한 미라보다 체격이 왜소해 키가 9㎝가량 작은 145㎝이고 치아가 덜 마모됐다.
이런 점들을 토대로 이 미라의 주인공이 지난번 미라보다 20∼30년가량 앞선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종합해 보면 첫째 아내는 남편이 관직에 갓 진출했을 때 일찍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 얻은 둘째 부인은 남편이 정6품까지 올랐을 때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정9품부터 한품계씩 올라가는 데 평균 450일이 걸리는데 종6품까지 6품계를 올라가려면 통상 7년 정도 걸리므로, 두 미라의 사망시기는 최소 7년의 차이가 있다.
지난달 30일 해포 작업을 하다가 특별한 사연을 접한 한 조사단원은 "남편이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고 혼자 흙으로 되돌아갔고 묘하게도 두 아내는 미라가 돼 400년 뒤 후손과 마주하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라 담당인 고려대 김한겸 교수팀은 치아 마모도 등으로 미라 연령대를 밝혀내는 한편 사망 원인이 임신과 관련이 있는지, 사망시기가 언제인지 등을 알아볼 계획이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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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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