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향수는 목욕을 자주 하지 못하는 귀족들의 몸냄새를 위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였다. 향긋하고 진하게 밴 냄새가 더럽고 지저분한 면을 가려주는 셈이다. 12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언론에 처음 공개된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수입 (주)누리필쳐스, 와이즈 앤 와이드 엔터테인먼트/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는 고귀한 냄새를 가지게 된 추악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다. 비릿한 생선 냄새, 하수구의 썩은내, 광장과 거리를 가득 채운 하층민들의 땀 냄새로부터 태어난 한 인간이 천사에게서나 날 법한 향기를 얻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때문에 코를 움켜쥐게 하는 악취에서부터 바람, 나무같은 자연의 냄새,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향기가 영화 속을 가득 채운다. 후각이 거세된 스크린에서 청각과 시각만으로 생생한 사람들의 냄새와 아름다운 향기가 묘사됐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하 '향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재현해낸 작품. 18세기 프랑스, 생선을 팔던 가난한 여자는 더러운 시장통 귀퉁이에서 아기를 낳고 도망친다. 탯줄이 끊긴 채 무심히 생선 더미에 던져진 아기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고아원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아기,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에게는 한가지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바로 코를 통해 들어오는 냄새로 자연과 만물을 알아보는 것. 성장한 이후 가죽공장에 팔려가게 된 그르누이는 어느날,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향긋한 여인의 냄새를 좇다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러나 여인의 향기를 간직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끼게 된 그는 변두리의 향수 제조사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을 찾아간다. 발디니에게 향수 만드는 법을 전수받은 그르누이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체취를 향수로 만들고자 살인을 저지른다.

전세계적으로 1500만 부나 팔린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는 과정에서 <향수>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그르누이가 맡는 냄새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 카메라는 그르누이가 느끼는 후각의 실체를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향수에 집착하게 된 그르누이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더불어 그르누이가 향수 제조법을 익히는 과정과 사람의 체취를 향수로 담아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원작자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설득해 판권을 얻기까지 기획기간만 15년이 걸린 <향수>는 2년간의 각색 작업과 6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했다. 더스틴 호프만과 <러브 액츄얼리>의 알란 릭맨 등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주인공 그르누이는 <베니스의 상인> 등에 출연한 벤 위쇼가 연기했다. 3월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