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는 이야기
피오니즈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2.9
이제 곧 검정 사각모에 가운을 멋지게 차려 입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이냐시오 강당에 앉아 있을 너. 노고산 언덕 곳곳의 추억을 가슴속에 접고 학교라는 보호구역을 떠나 사회인의 첫발을 내딛는 너는 지금 네 생애 가장 위대한 시작을 다짐하고 있다. 삶의 한 장章을 끝나고 좀 더 넓은 세계로 비상하는 문턱에 서 있는 네 얼굴은 미래에 대한 흥분과 희망으로 환하게 빛난다.
그러나 지금 네가 들어가는 그 세상은 이제껏 책 속에서 보았던 것과는 너무 동떨어진 곳인지도 모른다. 진리보다는 허위가, 선보다는 악이,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이리저리 줄 바꿔 서는 기회주의, 호시탐탐 일확천금을 찾아 헤메는 한탕주의, 두 손 놓고 자포자기하는 패배주의에 아직은 이상을 꿈꾸는 너는 길 잃고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낙원」 을 쓴 밀턴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나도 스승으로서 네가 실망스럽지 않도록 '잘'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래로 '삶은 해답 없는 질문이지만 그래도 그 질문의 위엄성과 중요성을 믿기로 하자'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 하루하루의 삶은 버겁지만 '삶이 주는 기쁨은 인간이 맞닥뜨리는 모든 고통과 역경에 맞설 수 있게 하고, 그것이야말로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서머셋 몸은 말한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를 쓴 보마르셰는 묻는다. '사랑과 평화가 한 가슴속에 공존할 수 있는가? 청춘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은 이 끔직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평화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나는 네가 사랑 없는 평화보다는 평화가 없어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 새뮤엘 버틀러가 말한 것처럼 '살아가는 일은 결국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헨리 제임스는 '한껏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일베르 까뮈는 더 나아가서 '눈물 날 정도로 혼신을 다해 살아라!'고 충고한다. 「정글북」 의 작가 러디야드 키플링은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네가 세상을 보며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라고 했다. 너의 아름다운 신념, 너의 꿈, 야망으로 이 세상을 보고 웃어라.
꿈을 가져라. 네가 갖고 있는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설사 1% 뿐이라고 해도 꿈을 가져라.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는 괴테의 말을 되새겨라. 결국 우리네 모두의 삶은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공존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에야 너의 삶이 더욱 빛나고 의미 있다는 진리도 가슴에 품어라.
그리고 삶이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될 때, 나는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가지고 인내하는 용기,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능력과 재능을 발휘해 포기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너의 방식을 믿는다. 절망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우 부인은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네 삶의 주인은 너뿐이다. 너만이 네 안의 잠자는 거인을 깨울 수 있다. 서강에서 만났던 소중한 만남들, 이곳에서 보았던 너의 하늘, 너의 꿈, 너의 사랑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거라. 네가 여기 머무르는 동안 너는 내게 젊은 지성과 끝없는 탐색으로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 세상에 나가 너의 젊음으로 낡은 생각을 뒤엎고, 너의 패기로 세상의 잠든 영혼들을 깨우고, 너의 순수함으로 검은 양심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너의 사랑으로 외롭고 소외된 마음들을 한 껏 보듬어라.
사랑하는 네게 이별을 고할 때다. 너의 승리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너의 아름다운 시작을 온 마음 다해 축하하며
서강과 함께 네 마음속에 새겨지고 싶은 너의 선생 장영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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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졸업 시즌이네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제 작은 아이와 중학교를 졸업하는 둘째 조카을 비롯해 많은 지인과 또 지인들의 자제분들이 졸업을 하는군요. 제 졸업식이 엇그제 같은데.. 참 세월하고는.. ^^
책을 읽다가 고 장영희 교수님이 쓰신 서강대 졸업생들을 위한 송사를 발견해 여기에 적어 봅니다. 별로 길지도 않은 글에, 총 10분이나 되는 저명인사의 이름과 글귀가 인용되었네요.. 영문학을 전공하셨고 늘 책을 가까히 하신 분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글을 쓰시는 중간에 필요한 명사들의 글을 적시적소에 인용하려면 어지간한 내공 가지고는 택도 없는 일일텐데..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용도 인용이지만, 저는 '이제 세상에 나가아 너의 젊음으로 낡은 생각을 뒤엎고..'로 시작하는 맨 마지막 말이 참 마음에 드네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절대 강력하고 절대적인 무력이나 권력이 아니라, 순수하고 따듯하며 자상한 용기라는 생각을 새삼 해 봅니다. 졸업하시는 분들 모두 축하드리며, 더 넓은 세상에서 작건 크건 어둠을 비추는 희망으로 (그것이 촛불이건 횃불이건 태양이건..) 오래 빛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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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