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교양
피오니즈
- 작성일
- 2011.3.28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
- 글쓴이
- 로널드 잉글하트,크리스찬 웰젤 공저/지은주 역
김영사
대학시절.. 교양과목을 수강하다보면, 가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신 부과되는 과제 중 레포트 제출이 종종 있었다. 어떤 책이나 강연, 공연 등에 대한 감상문을 제출하라던지,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라던지, 아니면 자기 맘대로 교양과목과 연관이 있는 주제를 정해 자유롭게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써오라던지.. 과제의 형식이나 종류는 다양했지만, 늘 비슷하거나 한결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었던 것은 A4지 몇 매 이상.. 이라는 제한이었다. 나중에 졸업에 즈음에 PC용 워드프로세서가 대중화되고 난 다음에야 중간에 수정을 가할 수도, 'Cut & Paste' 기법을 활용하여 타인의 글을 '참조'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다 써대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보통 제한이라는게 A4지 10장을 훌쩍 넘기는 경우들이 많아 자칫 잘못해 중간에 비교적 파장이 큰 수정이라도 가할라치면 중간 페이지만 교체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수정된 버전이 수정 전보다 글자수가 늘어난 경우에는 유독 해당 페이지만 글씨가 적고 빼곡해졌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대로 갑자기 글자 간격이 늘어나고, 쓸데없이 문장이 만연체 내지는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는 식의 회색론적 서술이 종종 선보여지기도 했다. 가끔은 결론까지를 모두 다 깔끔하게 쓰고 나더라도, 기준이 되는 페이지에서 두·세 페이지쯤이 모자란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엔 애초 계획에도 없는 새로운 주제나 챕터를 끼워넣고는 흐름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온갖 연출과 포장을 해야 했다. 워드프로세스가 발달하고, 인터넷을 통해 관련지식을 검색하기가 훨씬 용이해진 요즈음의 상황에선 종잡기 어려운 그 시대만의, 이젠 지나버린 과거 한 때의 풍속도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레포트가 문득 떠오른 이유는, 이 책이 500여 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예전 내가 대학시절 레포트를 써가는 방식과 유사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좀 고상하게 말하면, 논리구조 상에 어법과 단어, 문장형식을 바꾼 '토톨로지(Tautology)' 기법을 활용하여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부연하는 방식이라 말해도 되겠지만, 기실은 같은 말을 되풀이해 반복함으로써 한 이야기를 또해가면서 적당히 주어진 분량을 채우는 약간의 편법이라는 게 더 솔직하고 노골적이다. 솔직히 500여 페이지(그나마 총 616페이지 중 뒷부분의 80여 페이지는 주석과 참고문헌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이던지..^^)를 의지를 다져가며 읽는 과정에서 내가 예전에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읽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착각이 들었던 것이 다섯손가락을 넘어가게 여러번이었다.
제도적으로 틀을 갖춘 민주주의가 '상부구조'로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기 위해서 그 '토대'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는 그간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이론적인 배경 하 주장이 이어져왔지만, 그것을 직접적인 서베이와 이를 이용한 대규모 통계작업을 통해 실증적(Empirical)으로 검증해내는 작업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는 개인적인 기억을 참조할 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획기적이고, 참신하며, 중요한 주제를 다룬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책의 분량은 하고자하는 이야기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 뒤의 주석과 참고문헌을 포함하더라도 현재 600페이지의 딱 절반인 300페이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랬을 때, 더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읽어가면서 두 명의 저자가 각기 쓴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한 문장씩 교차로 발췌하여 다시 엮은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책에는 통계와 수치해석을 전공하면서 충분한 사례가 필요한 독자가 아니라면, 전혀 원하지 않을 듯한 부연설명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 두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의 파트는 각각 6개와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앞뒤 두개의 파트는 비교적 다른 논의를 다루나, 파트의 각 챕터 내에서는 흐름이 단절되는 특정한 논제의 개별적 부각은 없다. 두개의 파트 중 전반부에서는 경제발전과 가치정향(價値定向,Value Orientation)의 문제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각 사회조직(=국가)의 구성원이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가, 또는 세속적·합리적 가치를 중시하는가..'를 하나의 정향으로, 또 '생존 가치를 중시하는가, 자기표현 가치를 중기하는가..'를 또 다른 정향으로 구분하여 둘 사이의관계 및 사회경제적 발전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를 밝힌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전반부의 통계적 실증결과를 바탕으로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 수준과 민주주의 제도의 효율적 정착'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또한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 수준과 관련된 제반 지표들과의 개별 연관성 및 상관계수(Coefficient of Correlation)를 상세하게 조목조목 살펴본다. 비교적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를 담고있지만, 거기에 비해 기본적인 질문과 책에서 보여지는 해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민주화 수준이 높은 것일까.. 아니만 민주화 정도가 높은 나라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적 부를 이룩하는 것일까..' 이 문제의 정답는 서로 원인과 결과의 대상이 되는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제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A→B→C'라는 식의 논리적 전개는 거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통계적으로 '사회경제적인 부가 증대할 수록 사람들은 생존 그 자체보다는 자기표현이라는 가치에 더 편향되며, 이러한 집단적 요구가 일종의 토대가 되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생기고, 이러한 집단적 열망이 결국 국가권력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의 형성을 강요하게된다..'는 형태로 전형성을 보이더라.. 가 전부이다.
1부. 사회경제적 발전과 자기표현 가치
가치정향은 존재의 물리적 조건을 반영한다. 만일 존재적 조건이 변하면 가치정향은 그에 상응하여 변화한다. 이는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 이론과 유사하다. 더 어울리는 가치가 덜 어울리는 가치들보다 선택적 우위를 가짐으로써 다윈의 진화론에서 생명체가 진화해가듯 진화해간다. 사실 두 척도가 비례한다고 해서 어떤 조건이 원인이 되어 다른 부분에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꼭 볼 수는 없다. 둘 사이에 시간차(Time Lag)이 존재한다손 치더라도 선차성을 논하기에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컵에 물이 일단 차야 비로서 넘쳐 그 밑에 깔아놓은 종이가 젖는 것처럼 어떤 수준 이상이 될 경우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넘치는 행위와 종이가 젖는 행위 - 여기서 물이 넘친 것이 종이를 적신 이유이지 물이 컵을 점차 채워갔기 때문에 종이가 젖은 것은 아니다. 비록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 차이는 무엇(물을 따르는 행위 vs 물이 넘친 결과)을 원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교적 이 문제를 별도로 이슈화해서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나 역시 별로 관심이 없는 일에 딴지걸기를 계속할 마음도 없다. 저자는 경제발전이 존재적 안전을 담보하면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 성향이 사회적으로 증가했고 이 가치정향이 효율적 민주적 제도의 정착이라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를 간략하게 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2부. 자기표현 가치와 민주적 제도
전반부의 논의가 비교적 결론을 위한 인위적 논리전개 방식, 이를테면 '답을 보고 거슬러 문제를 푸는 방식' 이었다면,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정치한 논리전개를 가지고 자기표현가치가 (효율적인) 민주 제도로 반영되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추론한다. 그러나 여전히 동어반복이 지속되면서 다소 흥미로울 수 있는 내용에 지루함이라는 찬물을 끼얹는다. 후반부의 논의의 주제 역시 다음의 하나의 그래프로 압축되어 표현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자기표현 가치를 중시하는 비중과 효과적 민주주의 (제도) 수준과의 높은 정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이런 논리전개 상에서 이전까지는 검증이 된 바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수준과 제도의 민주적 수준 사이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민주주의로의 전환과정에 대한 '조응명제(Congruence Thesis)'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이 책에서는 어느 사회가 민주주의로 전환되는데 있어 기본적 동인(Trigger)이 되는 부분이 수요과 공급의 불일치에서 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흔히들 진보적 정치세력의 대두나 엘리트 집단의 혁명적 행위 등이 선행된 대중적 계몽 및 각성에 의해서라든지, 기존의 정치·경제적 기득권 세력의 부패가 극에 달해서라든지 등이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유일 수는 있어도, 실은 내부적인 수요의 팽창이 기반이 되지 않고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 효율적인 민주주의는 도래하지 않으며, 이후 안정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반부에서 흥미로운 이슈 중 또 하나는 사회적 균열을 가져오는 제반 요인, 이를테면 날카로운 계급 분열,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극도로 불균등한 부의 배분 등은 민주주의의 도래에 적대적인 방해요소라는 점이다. 만일 사회 내부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특권층이 존재하며 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적 부의 분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이들은 일반 하위계급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박탈하는 재분배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에게는 효율적 민주주의를 방해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반면, 부의 분배가 비교적 공평하게 이루어진다면, 이는 온건한 중산계급의 사회적 우위를 유발하며, 이 중산계급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로부터 얻을 것이 읽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인할 비교적 강한 인센티브를 역시 가지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공평한 부의 분배가 오히려 경제발전의 수준보다 민주주의에 더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가지 논의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고소득 사회일주록 효율적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 수준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정교한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과 비슷하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 경우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이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담배를 피우는 갯수과 폐암의 발병확률간의 명확환 인과관계는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정도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부실한 폐기능을 가진 이가 건강한 이에 비해 흡연의 정도에 관계없이 폐암 등 폐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것처럼, 민주주의의 제도정착 역시 경제발전 이외의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인도와 같이 저개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표현 가치의 중시수준이 높은 국가가 있는 반면, 싱가포르와 같이 경제개발이 고도로 이루어진 고소득 국가의 경우에도 비교적 동 가치의 중시수준이 낮아 결코 효율적 민주주의가 정작되었다고 말하기 힘든 경우들이 존재하는 것이 그 예다.
마지막으로 싫은 소리를 좀 더 하자면, 문맥이 잘 맞지 않는 번역도 편한 읽기의 흐름을 방해했다. 중간에 흐름이 막혀 몇번씩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띄었고, 최소한 콤마(,)라도 하나 찍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읽는 도중 종종 들었다. 개인적으로 서문을 먼저 읽지 않지를 권한다. 서문을 읽어나가다 보면 문득 책을 읽기가 싫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논문의 요약(Abstract)이 하고자 하는 많은 말을 단 몇 줄로 요약하려다보니, 도통 쓴 사람 이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해하기 힘든 것과 같은 느낌을 이 책의 서론에서는 느껴볼 수 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어떤 경로를 통해 생겨났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든지, '서구 선진사회가 잘 사는 것은 민주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잘 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일까..?' 등의 닭과 달걀의 문제같아보이는 애매한 철학스런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다만, 이 책에서 전개된 일련의 실증적 고찰이 '분배보다는 성장이 먼저'라는 주장으로 변질되어 사회적 부의 재분배 시스템을 더욱 병들게 하는데 오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마지막으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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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