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음악
피오니즈
- 작성일
- 2011.6.22
언노운 (디지털)
- 감독
- 자움 콜렛 세라
- 제작 / 장르
-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 개봉일
- 2011년 2월 17일
장자(莊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나는 나비의 꿈을 꾸는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의 꿈을 꾸는 나비일까..?'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의(懷疑)하는 심오하지만 애매하기도 한 철학적 질문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호접지몽(胡蝶之夢)'인데.. 이 영화속 주인공 마틴 해리스 박사(리암 리슨)를 보면 딱- 그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제목 「언노운(Unkonwn)」 에서 느껴지듯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자아찾기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리 거창하게 소개하고나니 영화가 대단한 듯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런 평가는 이르다. 이 영화는 영화의 중반부까지도 영화 속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관객이 정확히 '알 수 없게' 한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한번에 휘몰아치며 짜맞추어지는 진실. 그러나 그 진실에 알맹이는 없다. 해적이 숨겨놓은 보물의 위치를 알리는 보물지도인줄 알고 한 참을 찾아 표식한 곳에 다다르고나니, 보이스카우트 깃발이 꽂혀있는 기분이랄까.. 반전의 묘미가 분명 존재하는 영화지만, 그 반전의 결과가 단지 예상 밖의 엉뚱한 것이었을 뿐, 놀랍고 감탄스러운 것은 전혀 아닌.. 그래서 약간은 어이가 없어지는 영화.. 그게 바로 이 「언노운」 이다.
학회 참석을 위해 아내 엘리자베스(재뉴어리 존스)와 함께 베를린으로 온 마틴, 그는 그 동안 유선상으로 연구실적을 교환해온 저명한 식물학계 거장 브리슬러 박사(세바스티앙 코치)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있다. 아내와 사랑스런 눈길을 주고받으며 분위기 좋게 미리 예약한 호텔에 도착해보니.. 맙소사, 여권이 든 가방을 공항에 그대로 두고 왔다. 아내를 호텔 로비에 남겨두고 급히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다시 택시를 탄 마틴. 그런데, 차안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벤츠택시의 운전기사님은 아릿따운 여자분이다. 그러나 일단 혼자 기다릴 아내에 대한 걱정과 여권이 든 가방을 찾을 마음이 급한 마틴에겐 그런데 신경 쓸 틈이 없다. 다만 관객만이 느낀다. '어라.. 저 여성. 그냥 택시 운전기사로 잠깐 나올 엑스트라 아우라는 아닌데..?'
영화 「트로이」 를 본 분이라면 더 낮익은 이 운전기사님의 이름은 지나.(다이앤 쿠르거, '빵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 에서 핼레네 역을 했다) 놀라운 운전 솜씨를 가진 이 기사분은 마틴이 급한 사정을 호소하자, 카레이서로 변신, 혼잡하거나 공사중이거나를 막론한고 '브레이크 안 밟고 혼잡도로 운전하기' 묘기를 보여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앞 트럭 화물칸에 실렸던 냉장고가 끈이 풀리면서 지나의 벤츠 택시를 향해 굴러떨어지고 이를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으니, 앞에서 검은 오토바이가 놀라 미끄러지며 돌진해온다. 지나는 놀라운 기량으로 이 모든 장애물을 교묘히 피해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지만, 결국 벤츠 택시는 돌다리에서 옆으로 튕겨나오며 슈프레(Spree)강에 처박히고 만다.
「위기탈출 넘버원」 을 꾸준히 시청했는지 지나는 놀라운 지혜와 운동신경을 발휘해 현명하게 물 속에 빠진 차에서 탈출하지만, 평소 공부밖에 모르는 마틴은 강으로 빠지는 순간 혼절해버리고 만다. 뒷좌석에 탄 손님에 대한 기사로서의 책임감. 이를테면 '기사도 정신'에 입각해 지나는 다시 가라앉아가는 차로 접근, 뒷 유리창을 깨고 마틴을 극적으로 구출한다. 그러나 구출된 마틴은 이미 혼수상태. 엠뷸란스와 경찰들이 몰려들 때 쯤, 지나는 마틴의 안전을 확인한 후 슬슬 뒷걸음치며 현장을 빠져나간다. 어.. 그렇담 이 여성.. 뭔가 수상하다.
무려 72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혼수상태로 보낸 후 어느 병원에서 깨어난 마틴. 그러나 마틴은 사고의 충격으로 자신이 어떤 경위로 병원까지 오게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자신은 학회 참석을 위해 베를린에 왔으며,아내가 어느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뿐. 그는 아직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박차고 나와 아내가 기다리는 호텔로 향한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 그러나 공항에 흘린 여권을 찾으러 가던 중 강에 빠진 마틴에게 신분을 증명할 무엇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테스크에서 실랑이 중 로비 옆 연회장으로 향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호텔 직원을 대동해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만, 뒤돌아보며 눈이 똥그래진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세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안 마틴의 집요함에 아내가 점점 겁을 먹어갈 즈음, 돌연 한 사내가 나타나 마틴의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신분은 밝힌다. '난 이 사람의 남편인 마틴 해리스 박사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마틴과 관객이 함께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잠시.. 신분증도 없이, 신분이 분명한 누구인 척 하는 마틴을 호텔 직원들이 그냥 놔둘리 없다. 게다가 마틴이 아내라 주장한 여인은 정작 그가 누군지도 모른다잖는가.. 양팔이 붙잡혀 강제로 병원으로 보내진 마틴.
이쯤되면 이 재미있는 상황에 대해 대충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이런 정황이 연출된 여러 영화를 두루 섭렵한 경험이 있는 관객의 경우엔 더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 이 기묘한 설정을 다양하게 추론해 볼 수 있겠다. 「토탈리콜」 이나 「인셉션」 과 같이 현재 상황과 병원에서 깨어나기 이전 상황 중 하나를 '꿈'이라 생각해볼 수 있고, 「나비효과」 나 「소스코드」 에서처럼 '평행우주론' 에 입각한 설정이라 예상할 수도 있다. 간혹은 아내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마틴을 속여온거라 생각하면서 안젤리나 졸리의 「솔트」 를 떠올릴수도 있겠다. 과연 이 영화의 결말에 숨겨진 반전은 이 세가지 중 하나일까.. 아니면 전혀 엉뚱한 다른 것..?
어찌되었건, 이 영화는 결국 '시간 죽이기용' 영화라는 평가가 대세다. 이것저것 따지고 들면 하고 싶은 말이 많기는 하나, 스포일링을 우려해 단 몇가지만 에둘러 애매하게 짚어보면, 첫째, 이 영화는 거대한 음모론의 실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중간에 포기했다. 마지막 반전을 관객이 경험하고나면, 그 동안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비쳐졌던 일부 암시 들에 오히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15년간이나 친분을 쌓아온 동료 교수 로니드 콜이나, 동독 비밀경찰 출신의 해결사 에른스트 유르겐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알듯 말듯'한 애매한, 그래서 매력적이었던 코멘트들이 결말에 다다르면 '결국 그거였어..?'라고 허무하게 무너져내린다. 싱겁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둘째, 주인공 마틴 해리스 박사의 알수 없는 정체다.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사람은 도저히 동일인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캐릭터 변신을 보여주는데, 그 개연성의 설명이 이 영화에서는 매우 인색하다. 더 자세히는 못말하겠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마틴의 캐릭터 설정도 이해불가다. 이를테면 화장실 들어갈때와 나올때, 밥 먹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약간 '또라이' 기질이라 해야 하나..?
그래서 무척 해피엔딩 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는 맛은 화학조미료를 잔뜩 뿌린 찌게국물을 들이킨 것 만큼이나 니글거린다. 그래서일까.. 볼거리가 풍부한 화려한 액션 신도, 끊임없이 유지되는 긴장의 끈도, 많은 상상의 그믈을 과감히 틈새로 비껴 피해가는 놀라운 반전도 부실한 건더기 재료를 조미료의 힘을 빌려 어설프게 커버한 이 영화 앞에서는 어쩐지 무력해져버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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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