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수필
피오니즈
- 작성일
- 2011.9.20
혼진 살인사건
- 글쓴이
- 요코미조 세이시 저
시공사
그렇다고 저자에 대한 정보를 포털에서 검색해 짜집기하거나 신변잡기적인 일상의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그렇다. 저자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는 건 저자의 작품을 한 편에 대한 리뷰에는 대충 먹혀들어갈지 모르지만, 여러 편을 읽을 경우 결국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흥미로울 수 있어도 신변잡기만을 초지일관할 경우 애초 리뷰 라는 장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세심한 신경과 적당한 중용의 미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곳이 추리소설의 리뷰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세심하지도 중용을 잘 지켜내지도 못하는 내 심성에 이런 장르의 리뷰 쓰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일본 추리만화나 애니메이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바로 '김전일'이다. 이 김전일 시리즈는 「소년탐정 김전일」 이란 제목으로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만화책과 케이블 TV의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인기를 구가했으니, 가히 「명탐정 코난」 과도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검은 조직'이라는 SF적 요소를 가미한 다이나믹한 구성의 코난을 좋아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하드보일드한 김전일에 대해 '지루해..', '잔인해..' 등의 비평을 하고, 반대로 김전일 매니아들은 코난에 대해 '유치해..', '트릭이 시시해..' 등의 토를 달지만, 둘 사이의 경쟁관계는 바람직한 경제효과(Economic Effect)를 유발했음이 틀림없다. 즉, 둘 사이의 선의의 경쟁이 추리물에 대한 붐을 일으켜 전체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서로의 이름을 드높이는데도 일조했다는 것.김전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김전일이 습관처럼 쓰는 유행어가 있다. 코난이 가운데 서서 여러 용의자의 얼굴을 공중에 에워싸게 띄우곤 '범인은 바로 그 사람이야..!'라고 독백하는 것처럼, 김전일은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라는 환희에 찬 독백을 종종 내밷는데, 김전일은 그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으니.. 바로 범죄해결이 미궁에 빠졌을 때 스스로에게 하는 '명탐정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범인을 잡아내고야 말겠어..!'라는 다짐이다. 그러니 유행어에서는 김전일의 '2 VS 1' 승리다. 그렇다면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명탐정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굴까..? 그 양반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된 세 작품의 추리를 담당한 '긴다이치 코스케'란 인물이다. '김전일'이라는 이름을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따로 개명한 이름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는 주인공의 본래 이름 '긴다이치 하지메(金田一 一)'의 성(姓) 부분만을 따서 한자음을 그대로 독음한 것이다.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도 성(姓)만을 따서 우리말로 읽으면 똑같이 '김전일'이다.
'긴다이치 코스케'를 창조한 인물은 요코미조 세이시(横溝 正史) 라는 분으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의 권유로 등단한 후 긴다이치 코스케란 탐정 캐릭터를 통해 일본 추리물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으며, 1981년, 79세의 나이로 영면(永眠)했다. 반면 김전일은 아마기 세이마루(天樹 征丸)라는 필명을 쓰는 기바야시 신(樹林 伸)이란 젊은 작가에 의해 1992년 탄생된 캐릭터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로 '긴다이치 하지메'를 쓰겠다는 허락을 받았을리는 없고, 확실하진 않지만, 이로인해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일련의 합의가 이루어져 초기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이름을 걸고..'라는 표현이 중반 이후 '명탐정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라 바뀌게된다.
일본 나막신을 신고 정통의상에 망토를 걸치며 등산용(?) 중절모를 쓴 '긴다이치 코스케'의 모습은 외견 상 어딘지 명탐정 홈즈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이는 작가 '요코조미 세이시'가 캐릭터를 구상할 당시 홈즈의 존재를 상당히 의식해서이지 싶다. 다만, 왓슨이라는 조수를 항상 달고다니는 차갑고 완벽한 성격의 홈즈와는 달리, 긴다이치는 대개 혼자다니며 왜소한 체구에 어리숙한 외모와 말을 더듬는 버릇으로 인해 초면엔 일단 '탐정'이라기보다는 '수상쩍은 용의자'로 등장인물들에게 흔히 오래를 당하는 캐릭터다.
이 책은 중편 두 편과 단편 한 편 등 세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로 사용된 「혼진 살인사건」 과 세번째로 소개된 「흑묘정 사건」 은 각각 200페이지와 150페이지에 달하는 중편이며, 그 사이에 90페이지 정도의 단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가 들어있다. 세번 째 작품 「흑묘정 사건」 의 서두에는 작가 Y(아마도 작가 자신 요코미조 세이지의 이니셜인 듯)와 긴다이치의 만남 장면이 잠깐 묘사되는데, 이 장면에서 추리소설의 전형성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즉, 추리소설은 대개 '1인 2역', '밀실살인', '얼굴없는 시체'라는 세 가지 트릭에 의존한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게도 수록된 세 개의 작품이 각기 한 가지씩의 트릭을 소재로 쓰여졌으며, 그리면서도 하나같이 읽으며 드는 의혹의 뒤통수를 치면서 의외의 결론을 만들어낸다.
사건의 잔인함으로 인해 다소의 선정성이 뭍어나지만,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인지, 그다지 거북스럽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배경 등의 묘사에 일본식 전통(문화 또는 건축양식)에 대한 사항이 많아 다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필요하면 도면 등을 삽입하여 최대한 이해를 돕기위한 배려를 한 탓에 정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약간 마음에 걸렸던 것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너무나 손쉽게 일사천리로 풀어나가는 주인공 긴다이치의 초인적 능력이었다. 작품에서 묘사한 외모나 성격과는 달리 사건을 풀어가는데 한 치의 빈틈은 커녕 고민의 모습조차 엿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상의 긴장감을 오히려 다소 떨어트린다는 느낌이었다. 실수와 반전, 제3자의 개입에 의한 돌발적 실마리 등도 추리소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묘미인데, 긴다이치가 본격적으로 활약한 두 편의 중편에선 그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두 편의 중편보다 가운데 단편에서 더 큰 여운을 남는다. 그래도 세 편 모두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작(秀作)임에는 틀림이 없다. 추리소설의 매니아라면 반드시 한 번은 걸쳐가야 할 작품 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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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