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음악
피오니즈
- 작성일
- 2011.11.25
도쿄!
- 감독
- 미셸 공드리
- 제작 / 장르
- 한국, 프랑스, 일본
- 개봉일
- 2008년 10월 23일
이 영화는 세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각 단편의 감독이 앞에서 언급한 프랑스의 미셸 공드리와 레오 까락스, 그리고 우리나라의 봉준호다. 각자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불어넣어 만들어진 단편이기에 동 시대(현재)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영화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다르다. 그저 분위기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진짜 같은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있나 싶을 정도로 영화 속 배경에서도 이질감이 드러나는데, 이는 삶을 짦고 지치게 만드는 무료한 일상이 타인의 익숙치 않은 시선에 의해 모두 걷어지면서 생기는 낮설음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신선하고 약간은 불편하면서도 묘한 끌림이 있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좋은 평점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 과 주걸륜과 카메론 디아즈가 녹색 옷을 입고 설치는 막되먹은 스토리의 낮은 평점 영화 「그린 호넷」 을 만든 탓에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감독 미셜 공드리가 첫번째로 이야기를 연다. 작품의 제목은 <아키라와 히로코>. 영어로는 <Interior Design>인 이 영화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꼭 필요한 연인이고 싶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디영화를 찍는 남자친구가 도쿄로 상경 후 홀로 좋은 평가를 받게되자, 히로코는 아무런 발전도 없는 자신을 자책하다 어느 날 의자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 의자가 되어서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남고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좀 씁쓸하다. 조금 황당하고 싱겁지만, 나름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
결국 그녀는 의자가 되어, 인디영화를 하는 남자친구가 아닌 인디음악을 하는 어느 음악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홀연히 사라진 그녀를 찾는 남자친구의 모습도, 의자를 집안에 들인 뒤 생기는 이상한 변화에 놀라는 음악가의 모습도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다. 어쩐지 다 보고나서 나중에 이것저것을 생각으로 따져보면 비약과 생략으로 인한 인색함이 참 많았던 영화. 그런 면에서 보면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詩에 가까운 영화라고 평가해 볼 수도 있겠다.
맨홀 밑 지하도 광인의 이름은 메르데(Merde), 불어로 ''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도 <광인>, 영어로도 <Merde>다. 주인공의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듯, 수록된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쇼킹하고 난해한 영화다. 어느날 도쿄의 하수도를 열고 튀어나온 광인 메르데는 한 동안 길거리를 질주하며 돈이나 꽃을 빼앗아 먹고 담배를 빼앗아 피는 등 난폭한 행동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다가, 돌연 수류탄을 잔뜩 들고나와 무차별한 살상을 벌인다.
경찰은 곧 특수부대를 파견해 하수도에 숨어있는 메르데를 체포하나 문제는 통역. 헛구역질 소리같기도 하고 아기들 옹알이같기도 한데다 어울리지 않는 신음소리마저 간간히 섞인 그의 언어로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단 세명 뿐이다. 그래서 긴급히 모셔온 프랑스의 변호사. 재미있는 건 그도 한쪽 눈이 메르데와 같이 눈동자가 없다. 서로 다른 편(메르데는 오른쪽, 변호사는 왼쪽)의 한쪽 눈동자가 없는 이들의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이 둘의 모습은 각각 또는 함께 어떤 결핍을 상징하는 듯. 그러나 난해한 영화 속에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찝어내는 건 내겐 조금은 섣부른 듯 싶다.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자신의 어머니는 성녀인데 당신들이 그녀를 겁탈했으니 나는 당신들의 아들이다' 라는 묘한 철학적 내음을 풍기는 대답을 하고, 왜 사람을 죽였나라는 질문에 '일본인들의 눈이 여자의 성기를 닮아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 라는 황당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은 메르데는 결국 사형이 언도되고 얼마 후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이 집행되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완전 스포일러이니 여기서 그만) 아무튼 가장 애매한 상징과 깊고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돋보인 작품.
앞의 두 편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느낌의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봉준호 감독이 만든 <흔들리는 도쿄>, 영어로도 똑같이 <Shaking Tokyo> 다. 일본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전 세계로 확산된 '히키코모리' 즉 '방구석폐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으로 영상미만 놓고보면 단연 압도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런 비교는 큰 의미는 없다. 첫 번째 작품인 <아키라와 히로코>가 <詩>, 두번째 <광인>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쓰여진 <누보로망>이라면, 이 작품 <흔들리는 도쿄>는 <만화>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화가 詩나 소설에 비해 영상미(이미지)가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를 놓고 작품성의 우위를 논한다는 건 넌센스니까.
히키코모리인 남자의 삶은 한쪽 다리는 길고 다른 쪽은 짧은 청바지를 가터벨트로 이은 묘한 옷차림(이게 은근 멋있다. 아오이 유우가 해서일수도 있지만)의 피자배달부 소녀와의 만남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 그녀와의 첫 만남이후 꼭 절묘하게 등장하는 실제 지진은 10년을 유지해 온 남자의 점차 삶이 흔들려 무너져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첫 만남에서 지진에 놀라 기절한 그녀를 깨우는 방법이 아주 재미있는데, 그것은 그녀의 드러난 허벅지 부분에 그려진 파워버튼을 누르는 것. 이런 오타쿠적이고 매니악한 발상을 봉 감독이 직접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면서 엄청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가 흔들릴 즈음, 그녀는 그가 아닌 그의 삶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도 히키코모리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피자배달을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힌다. 이제 그녀를 보고싶다면 그녀의 집으로 직접 그가 찾아가야만 하는 상황. 그는 옷을 차려입고 하루종일을 문을 열어놓고 망설인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고.. 그 다음날 그는 10여년만에 세상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수록된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에 자신과 삶 모두를 버리는 여인, 모든이로부터 소외되어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는 광인, 스스로가 세상과의 연결통로를 차단한 채 고립되어 갖힌 자유를 추구하는 히키코모리의 모습은 차갑고 인색하여 헛점이 보이지않는 도시 도쿄와 맞물려 현대인 누구나가 가진 소통의 욕망과 그 차단으로 파생되는 외로움, 고통, 분노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세 작품 다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건 그들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이름값을 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메세지나 영상, 연기 면에서 어떤 것보 별로 부족함이 없었던 작품. 다만, 프랑스의 파리나 한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찍었다해도 크게 다를게 없을 듯한, 도쿄와 일본이라는 특유의 정서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던게 조금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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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