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니즈
  1. 소설&수필

이미지

도서명 표기
미란
글쓴이
윤대녕 저
문학과지성사
평균
별점7.1 (24)
피오니즈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들게하는 표지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윤대녕 작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입견 때문에, 처음부터 편향적인 스탠스로 접근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아류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몽환적인데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미징이 편향적고 또 전형적이라는게 내가 윤대녕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인 선입견의 대강의 얼개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윤대녕 작가의 매력이자 또 단점이기도 하지 싶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읽으면 그 기대를 늘 일정수준 이상 만족시킨다는 것이 장점이랄 수 있는 매력이요, 뭔가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기대했다면 결국 제 자리를 맴도는 인물의 전형성에 못내 수긍하고 말아버려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니까.


 


표지를 보면 두 여인의 얼굴이 약간의 각도 차이를 두고 겹쳐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미란이 사람의 이름이라고 할 진댄, 이 표지만 보아도 미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두명 등장할거란 예상이 가능하다. 눈을 지극히 감고 차분히 생각에 잠겨있는 긴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과 고개를 약간 쳐들고 무언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탈색인지 염색인지 모르겠지만 금발 머리를 뒤로 동여맨 듯한 여인.. 누가 김미란이고 누가 오미란인지는 작품 속에서도 구체적인 묘사가 없어 모르겠지만, 읽어가며 나름대로의 상상 속에서 형상화된 그녀들의 이미지와 매칭하면서 아무래도 검은 머리 쪽이 김미란이요, 노란 금발이 오미란 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순하고 뭔가 지고지순하면서도 어두움이 깔린 성격의 오미란과 도도하고 당당하면서 다소 현실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김미란의 성격만 보면 반대의 적용이 어쩌면 더 설득력있을 수도 있겠으나 난 어쩐지 전자 쪽이다. 누가 어느쪽이면 어떤가. 그게 중요한 건 아닌걸..


 


이야기는 애초 작가로부터 예상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젊은 날 방황에 이끌린 제주도 여행 중 한 작은 호텔 파라다이스의 바에서 한 여인을 만나고, 1980년대 대학시절에나 던질 수 있는 현학적 닭살 멘트로 그녀를 꼬셔 제주도에서 작은 추억을 만든다. 여인은 열정에 이끌려 그에게 금새 자신을 허락하지만 결국 짧은 사랑 후 떠나가고, 그에게는 그녀와의 추억이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이 정도면 모든 남자의 로망이라고 해도 좋을 듯. 남자들이 과거의 사랑을 아름답고 애절하게 기억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증상이지 싶다. 하긴 혼자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커피나 술 한잔을 들고 그런 애절한 기억을 떠올리는 호사조차 없는 인생은 맛이 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인상만 쓰고 있어도 주변의 여인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대시를 하게 만드는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 성연우(이름도 어쩐지 연예인스럽다)는 게다가 그 많은 젊은날의 방황에도 불구 사법고시를 당당히 합격해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만나게 된 여인이 김미란. 그녀는 그에게 호감을 보이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용하거나 먼저 들이대는 가벼운 행실을 보이지 않는, 절제가 몸에 배인 여인이다. 어쩌면 그를 끌어당긴건 단순히 '미란'이라는 이름이 가진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김미란이라는 여인이 보여준 팜므파탈(밀땅의 고수) 기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은 몇 번의 우연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결심하는데, 그때 김미란은 왜 자신과 결혼하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는 허영심 때문이겠지. 혼자 살 줄 알았는데 바야흐로 사치의 시작이야. 삶은 백화점 같은거야.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좀처럼 빈손으로 나오기가 어렵지. 알다시피 또 세상은 파트너 없이 버틸 수 없게 만들어져 있어. 계속 살아갈 의지가 있다면 담당 파트너가 필요하단 말이지..」




 


이 알쏭달쏭하기만 할 뿐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대답에 무언가 납득한 듯한 김미란도, 결혼을 코앞에 둔 서른 즈음의 나이면서도 여전히 1980년대 대학가에서나 통할 듯한 구닥다리 멘트를 용감하게 날리는 그나, 비슷한 시기, 즉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경험한 내게는 어쩐지 친해지기 어려운 이질적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중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이후 스스로와 서로로 인해 무척 고단해질거란 예상도 들었다. 이런 멘트들이 던져지고 납득되는 건 삶이 그림처럼 온전히 객관화가 이루어져 자신은 거기서 쏙- 빠져나왔다는 안도가 저변에 깔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만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생활의 한가운데서 세상과 시간의 거친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하는 존재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이런 대사는 나올 수 없다. 말하는 사람도 상대방을 봐가면서 적당한 타협을 자신의 멘트를 재단질 내지는 가지치기를 하게 마련이므로. 그런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은 아직 삶을 연극으로, 세상을 그림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내게 더 호소력울 주었던 건 그들의 말이 아닌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 어떤 지인이 그에게 던진 한 마디다.


 


「사람이란 무릇 서로 보살핌의 대상이다. 지극한 관심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지. 그런데 그 여인에게는 뭔가 중요한 것이 결핍되어 있어. 그것이 그녀가 상냥하긴 하지만 그다지 친절하거나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지..」


 


나도 읽으면서 김미란이란 인물에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중에 어떤 반전이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었다. 특히 음주운전으로 인사사고를 낸 자신의 남편을 변호해달라며 변호사인 그를 다짜고짜 찾아온 여선생의 의미심장한 등장과 그 남편이 사고 당시 어떤 묘령의 여인을 태우고 있었다는 설정, 그리고 나중에 그 남편과 김미란이 자신을 만나기 전 오랜 연인관계였다는 사실을 성연우가 알게되면서 무언가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물꼬가 여기서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 은근히 설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잔뜩 복선을 깔아놓고는 '무슨 일 있어..?'싶게 얼렁뚱당 넘어가다니. (어쩌면 내가 '사랑과 전쟁' 같은 막장드라마의 영향을 너무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만)


 


누군가 하나라도 꿈 속을 걸어온 사람이 섞여든 결혼생활은 다 그렇듯, 둘 사이는 아이를 낳고도 계속 삐걱거린다. 김미란이 꿈 속을 걸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꿈 속을 걷는 그의 모습에 매력은 느낀 건 틀림없었으리라. 그리고 꿈 속을 고집스레 계속 걸어가면서도 현실에서 먹을 욕 역시  참을 수 없는 연우 같은 남자는 항상 같은 잔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식이다.


 


「당신은 웬일인지 약속을 지키기에 급급한 채무자처럼 살아왔어요. 매사 모면하고 견뎌내는 식으로 말예요. 그런 당신은 불행하게도 스스로에게는 단 한번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에요..」


 


상당히 고상하게 표현되었을 뿐,  '가정에 관심은 없고, 딴 생각만 하면서 스스로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욕먹기 싫어 마지못해 해내는 당신은 진짜 최악이야. 나와 당신의 아이는 그런 당신의 무관심 속에서 비참함을 느껴..'라는 말과 이 말이 무엇이 다를까. 어쩐지 이 말을 들으니 남의 일 같이 않아 가슴 한 켠이 무엇에 찔린 듯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리뷰가 상당히 엉뚱하게 흘러버린 느낌이다. 다시 작품 본연에 근접한 오미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그녀는 연우에게 첫사랑의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인이며, 이후 그가 여인을 바라보는데 있어 바로미터(Barometer)가 된 존재다. 그러나, 이후에 결혼 이후 나이가 들어 만난(그들은 두 번 만난다. 한번은 결혼 직후, 한 번은 수년 후 다시 연우가 찾아나서면서)  오미란은 그가 예전에 알던, 마음 속에 간직된 그녀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성연우는 끊임없이 그녀의 현재 안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아내고 부풀린다. 그건 이미 오미란 자체가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서 마음대로 각색된 첫 사랑 베아트리체가 대상화(Verge-genstän Dlichung)되어 투영된 스크린일 뿐이다.


 


책을 덮으며, 자신 안에서 미화된 과거에 얽매여  사는 그(성연우)의 인생에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그런 느낌이 든 이유의 일부엔 나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심리기재의 소유자라는 자기진단이 자리잡고 있다.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비슷한 류의 문화컨텐츠(작년 즈음에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도 이 부류가 아닐까 싶다)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걸 보면, 경중은 있을지언정, 누구나 이런 부분을 알러지나 비염처럼 많은 이들이 마음 안에 지니고 사는 모양이니까. 무엇이든 알고 인정하면, 결국 즐길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약이건, 독이건..^^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피오니즈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0.8.4

    좋아요
    댓글
    1
    작성일
    2020.8.4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0.8.4

    좋아요
    댓글
    1
    작성일
    2020.8.4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0.8.4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0.8.4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134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116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7.1
    좋아요
    댓글
    212
    작성일
    2025.7.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