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나누고 싶은 곳

유한필승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3.4.7
‘그 길’ 걸으며 주 예수의 비움과 희생 채운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가스펠송 ‘주님 가신 길’에 등장하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십자가의 길)’가 한국에도 생겼다. 서울 동신교회(김권수 목사)가 지난달 초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동신기도원 부지에 조성한 ‘동신 십자가의 길’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비롯해 제주도 성(聖)이시돌 목장 등에 만들어진 십자가의 길은 14개 요소(要所·중요한 일이 일어난 장소)로 꾸며져 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12개 요소의 개신교 십자가의 길이 국내에 생긴 건 처음이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 생애 가운데 가장 긴박했던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간의 사건들을 형상화한 길이다. 신앙인들은 이 길을 걸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의 본질과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지난 27일 김권수 동신교회 담임목사 등과 함께 동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봤다.
도락산 자락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초입에 들어서자 폭 1.5m의 오솔길이 일행을 맞이했다. 몇 발짝 떼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눈에 들어왔다(1요소).
잠든 제자들을 바라보던 김 목사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 제자들의 모습이 지금 거울 앞에 선 우리들일지도 몰라요. 예수님이 감내해야 했던 엄청난 고난과 고통 앞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무감각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건 아닌지….”
같은 시각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기도에 열중하고 있다(2요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29).”
발걸음을 옮기자 ‘유다의 거짓 입맞춤’(3요소)을 주제로 한 부조(浮彫) 조형물이 나타났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예수님의 손에 입을 맞추는, 얼핏 보면 평화로운 이 정경이 사실은 거짓된 평화의 모습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베드로의 통곡’(4요소) 장소에 다다랐다. 베드로가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뒤에 울었던 닭(마 26:74∼75)의 조형물도 눈에 띄었다. 그 아래 앉아있는 베드로의 눈빛은 복잡해 보였다. 두려움과 함께 예수님을 향한 그리움이 모두 묻어났다. “스스로 믿음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 차서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실족하는 모습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믿을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신실하심만 의지해야 합니다.” 김 목사의 한마디가 그대로 마음에 꽂혔다.
오르막길을 오르자 바라바와 빌라도, 가야바 대제사장이 서 있다. 그 옆에서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한 표정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5요소). 이어지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로마 군병들의 모습(6요소). 예수님께 경배하듯 허리를 굽히다가 조롱하면서 침을 뱉는 군병 등 강화플라스틱(FRP) 재질의 조형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예수님이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길.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는 장면(7요소)에 이어 예수님이 자신의 뒤를 따라 걷던 여인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모습(8요소)도 눈길을 붙잡는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 눕히신 예수님의 발에 못을 박는 군병들, 고통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틀며 절규하는 예수님의 모습(9요소)을 지켜보는 일행들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좌우 죄수 사이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다. 군병은 날카로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곧 찌를 태세다(10요소). 제 구시쯤 되어 예수님은 큰소리로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언덕을 내려오자 동굴이 보였다. ‘빈 무덤과 부활’을 상징하는 곳(11요소)이다. 열려 있는 돌문 밖에서 주저앉아버린 로마 군병, 그 맞은편에서 사라진 예수님을 찾고 있는 여인, 그리고 동굴 안에서 등불을 들고 빈 무덤과 세마포를 멀뚱히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여인의 표정은 닮았다. “예수님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지?” 하며 크게 놀란 얼굴들이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동행한 김 목사와 홍융희 부목사, 황태희 장로가 찬양을 부르자 노랫소리가 동굴 안에 그윽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 목사의 한마디. “십자가의 정신은 바로 예측불허의 변화무쌍한 세상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동굴 밖을 나오자 탁 트인 광장이 보였다. 물고기 모양의 형상(익투스)이 광장 바닥 한가운데 그려져 있는, 이른바 ‘익투스 광장’(12요소)이다. 한쪽에는 길이 3m가 족히 넘는 체험용 나무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광장 바닥의) 물고기 모양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표였어요. 여기는 우리가 이 십자가를 메고 익투스 광장을 걸으면서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마음에 새겨보는 자리입니다.”
저마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1시간 동안 걸었던 1㎞ 남짓한 십자가의 길은 마치 걸으면서 듣는 한편의 ‘십자가 설교’ 같았다.
양주=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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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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