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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4.5.2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 글쓴이
- 아브람 알퍼트 저
안타레스

저자인 아브람 알퍼트는 작가이자 교육자.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철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21세기 인간의 조건, ‘민주주의의 미래’, ‘사회적·경제적 변혁’이라는 세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정책을 제안하는 더뉴인스티튜트(The New Institute)의 일원이다. 유대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청년 시절부터 평등주의에 입각한 다인종·다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인종주의에 극렬히 저항하면서 불교 철학, 노장 철학, 이슬람 철학, 아프리카 철학 등 전세계 다양한 사상을 학계와 대중에 전파하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다문화 평론지 「쉬프터매거진(Shifter Magazine)」를 공동 편집했고, 2018년에는 다인종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작품을 소개하는 잭샤인먼갤러리(Jack Shainman Gallery) 내에 학제 간 예술 및 이론 프로그램(Interdisciplinary Art and Theory Program)을 신설해 고문으로 활동했다.「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가디언(Guardian)」 등 여러 매체에도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근대적 자아의 세계적 기원, 몽테뉴에서 스즈키까지(Global Origins of the Modern Self, from Montaigne to Suzuki)』(2019), 『부분적 깨달음: 근대 문학과 불교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완벽하지 않은 채 잘 사는 법(A Partial Enlightenment: What Modern Literature and Buddhism Can Teach Us About Living Well Without Perfection)』(2021)이 있다. 다음 책으로 “철학적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역설한 아프리카계 독일 철학자 안톤 빌헬름 아모(Anton Wilhelm Amo)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들어가며_충분한 삶이란 무엇인가
제1장_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
충분함의 철학적 기원│위대함을 넘어서려는 오랜 역사│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물질 경제와 지위 경제│잃어버린 아인슈타인들│번아웃을 막는 길│춥고 외로운 할렐루야│모두를 위한 충분한 삶
제2장_우리 자신을 위하여
태초에│바보야, 경제만 문제가 아니야│덕의 귀환│능력주의, 위대함 이데올로기│위대함을 뛰어넘는 덕│있는 그대로의 세상│보장되지 않는 만족│투쟁에서 탄생한 철학
제3장_우리 관계를 위하여
낭만적인 이야기│순환의 여행│웃음 이론│선한 사마리아인의 역설│천국으로 또는 낚시터로│장자와 혜자 이야기│어디 두고 봅시다│이 정도로 충분하다면│충분한 관계의 정치
제4장_우리 세계를 위하여
핀의 길│노예의 길│충분한 전환│이기적 박애주의│충분한 세상을 위한 계획│지위 경제의 한계│롤스의 사고 실험
제5장_우리 지구를 위하여
두 마리 유인원│적자생존의 진실│충분함으로의 진화│위대한 녹색 혁명의 위험│적은 것으로 더 많이 vs. 적은 것에서 더 많이│부담과 보상의 공유│자연과의 충분한 관계│충분한 숭고함
나오며_충분한 삶을 위하여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는 아브람 알퍼트의 철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위대함이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을 통해 불합리와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을 탐구하고, 충분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관점과 가치관이 필요한지를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잘남’과 '탁월함’을 강제하는 사회 체계가 모든 '불합리’와 '불평등’의 궁극적 원인이며, 이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의 수동적 가치관이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위대함’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내가 위대해지지 못하면 타인의 위대함에라도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서글프고 무서운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인간 본성과 인류 역사를 왜곡하고 굴절시킨 주범이 소수의 ‘위대함’을 추구한 데서 비롯한 능력주의와 시장주의의 ‘낙수 효과’라는 희망 고문임을 증명하고, 이를 바로잡아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절대다수의 ‘충분함’을 밑바탕으로 한 참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충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위대해질 필요는 없다. 삶이 가치 있으려면 뭔가에 능숙하고 탁월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사회는 우리가 충분히 좋은 삶을 누릴 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위대함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자신, 우리 관계, 우리 세계, 우리 지구를 훼손한다. 이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고 해서 충분함이 위대함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함의 종착지는 위대함도 완벽함도 아니다. 그래서 충분함에는 끝이 없다. 충분함은 늘 여지가 있고 늘 차오르는 상태다. 채우기만 하면 위대하고 완벽할 것 같은 그 여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다. 충분한 삶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부드럽게 포용하고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면서 모두의 충분함을 헤아린다.
p.69
이 문장에서 저자는 삶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충족감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 한다. 아브람 알퍼트의 관점에서 볼 때, 위대함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이다. 그는 우리가 각자 최고가 되려는 압박을 받으며, 이것이 불안과 불만족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가 위대한 인물들을 추앙함으로써 다수의 사람들이 고통받는다고 지적한다. 알퍼트는 대신 ‘충분히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위대함’에 대한 B+ 노력이 아니라, 성취 자체에 대한 다른 관점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충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장은 우리가 개인적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모두가 충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이 문장은 알퍼트의 ‘충분히 좋은’ 삶의 철학을 반영하며, 우리가 개인적인 위대함이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성장과 사회적 진보 모두에 있어서 더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개인의 세계관 변화가 절실하므로, ‘위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논증한 뒤 위대한 삶이 아닌 충분한 삶이 왜 ‘우리 자신’과 ‘우리 관계’에 좋은지, 나아가 어떻게 ‘우리 세계’와 ‘우리 지구’에도 이익이 되는지 철학적으로 설득해 나간다. 이 보편적 착각을 ‘철학’의 힘으로 깨부순다. 저자는 개인의 세계관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다 느끼고, 현재 상황에 우울해하며, 동료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경쟁심을 유발해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위대해지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러나 충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위대해질 필요가 없다. 삶이 가치 있으려면 뭔가에 능숙하고 탁월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사회는 우리가 충분히 좋은 삶을 누릴 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위대함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자신, 우리 관계, 우리 세계, 우리 지구를 훼손한다. 이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고 해서 충분함이 위대함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함의 종착지는 위대함도 완벽함도 아니다. 그래서 충분함에는 끝이 없다. 충분함은 늘 여지가 있고 늘 차오르는 상태이다.
개인의 솜씨나 우수함 사이에도 차이가 있고, 위대함이나 최고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실력은 누군가 잘하면 누군가 못하는 제로섬이 아니다. 누구든지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될 수 있다. 굳이 가장 뛰어난 한 사람 또는 소수에게 최고라는 영예를 부여하고 보상할 까닭이 없다. 마이클 왈저의 발상처럼 ‘영역’을 나누고 그 경계에 ‘좋은 울타리’를 친다 한들 영역 내에서도 차별이 일어날뿐더러, 물질 경제를 지양해도 지위 경제는 그대로 남아 있기에 불평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춘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물질적이든 지위적이든 보상을 해줘야 할 소수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실제로는 뛰어난데 경쟁을 잘하지 못해 최고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p.94
저자는 실력과 보상에 대한 관점을 탐구하며, 개인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보상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찰한다. 알퍼트는 실력과 보상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언급한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제로섬 관점을 부정한다. 즉, 누군가가 잘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퍼트는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며,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한 사람이나 소수에게만 최고라는 영예를 부여하고 보상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알퍼트는 '영역’을 나누고 그 경계에 '좋은 울타리’를 친다는 발상을 언급한다. 그러나 영역 내에서도 차별이 발생하며, 물질 경제를 지양해도 지위 경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불평등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보상을 선택할 때 어려움을 야기한다.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을 잘하지 못해 최고가 되지 못한 경우, 이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 알퍼트의 관점에서는 보상을 선택할 때 모든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을 잘하지 못해 최고가 되지 못한 경우에도,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보상을 공정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알퍼트의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장은 우리가 보상을 선택하고 분배할 때 모든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저자는 우리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낭만적인 이야기, 순환의 여행, 웃음 이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설, 장자와 혜자 이야기 등을 통해 우리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우리의 관계는 단순히 개인간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의 복잡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서로에게 충분함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를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위대함’이 아닌 '충분함’을 추구하는 관계가 어떻게 우리 자신, 우리 관계, 우리 세계, 우리 지구에 이익이 되는지를 철학적으로 설득해 나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를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자체를 나아지게 해서 모두가 충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우리도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삶은 그렇게 세상과 어우러져 순환한다. 불교 철학의 이 미묘한 세계관은 우회 경로로 욕망을 실현하고자 정면으로 마주하는 욕망은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꼼수를 써도 우리 삶에서 불만족스럽고 불충분한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우리 개인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유지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세계관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미묘한 세계관이 더 필요하다. 다름 아닌 모두가 충분한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타인에게도 관심을 쏟는 ‘신경 쓰기의 기술’이다
p.137
이 문장은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탐구하며, 우리가 어떻게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아브람 알퍼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그의 "충분히 좋은 삶"에 대한 철학과 매우 일치한다. 알퍼트는 개인적인 욕망의 충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 향상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알퍼트는 우리의 세계관이 우리의 행동과 만족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신경 끄기의 기술"은 개인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신경 쓰기의 기술"을 언급하며, 이는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알퍼트가 주장하는 "충분히 좋은 삶"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알퍼트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개인적인 욕망의 직접적인 충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우회 경로를 사용할 수 있으며, 때로는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 더 큰 만족을 가져올 수 있다. 알퍼트의 관점에서, 이 문장은 우리가 개인적인 욕망을 넘어서 사회적인 복지와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모두가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는 개인적인 만족감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장은 우리가 개인적인 욕망을 넘어서 사회적인 복지와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모두가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는 개인적인 만족감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는 알퍼트가 강조하는 "충분히 좋은 삶"의 철학과 일치한다.
'충분함’은 늘 여지가 있고 늘 차오르는 상태이다. 이는 무한한 것이며, 모든 삶은 언제나 충분하다. 알퍼트는 충분함을 추구하는 세계관은 능력주의와 낙수 효과의 문제를 극복하고,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참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대함’이 아닌 '충분함’을 추구하는 세계관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충분함을 통해 우리의 물질적 삶과 정신적 삶을 향상시키며,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대함을 추구하는 세계관에서 충분함을 찾는 방법을 탐구하며, 모든 삶이 충분해야 한다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충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위대해질 필요는 없으며, 충분함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 총리뷰
저자는 인간 본성과 인류 역사를 왜곡하고 굴절시킨 주범이 소수의 ‘위대함’을 추구한 데서 비롯한 능력주의와 시장주의의 ‘낙수 효과’라는 희망 고문임을 증명하고, 이를 바로잡아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절대다수의 ‘충분함’을 밑바탕으로 한 참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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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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