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prinssky
- 작성일
- 2023.2.4
아무튼, 술
- 글쓴이
- 김혼비 저
제철소
술을 즐겨마시지 않는 내가 선택한 아무튼 시리즈의 처음은 아무튼, 술.
첫 번째 글인 ‘첫술’부터 소리 내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 모범생이었던 작가는 수능 백일주를 마시고는 한껏 취해서 자신을 배추로, 배추에서 김치로 둔갑시킨다. 다들 술주정으로 넘기는 와중에 진지하게 따져드는 친구와 싸움을 하게 되는데.. 실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웃기다. 그렇게 시작된 술꾼으로서의 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진하게 펼쳐진다.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술 마시고 힘을 낸다는 것’이다. 지어낼 수도 없을 것 같은 엉뚱한 행동에 깔깔거리다가 이내 씁쓸해졌다가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작가에게는 인생의 암흑기라고 부를 만한 시절,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우울증’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졌던 때. 간을 빼놓고 온 토끼처럼 우울함만 쏙 빼놓고 술자리에 임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도 그녀의 힘듦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는 게 어른다운 방식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술을 마셔줬고 마냥 놀아줬단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오락실까지 들러 오락가락해진 정신을 붙들고 택시를 탔다. 앞자리에 앉은 그녀는 기사님 옆에서 둥근 노래방 리모컨을 붙들고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노래방 리모컨과 택시에 두고 내린 그녀의 지갑을 택시 기사님이 노래방에 맡겼다는 알게 되어 감사의 문자를 보냈는데, “네, 힘내세요.”라는 답변을 받는다. 그러고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다.
분명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신나게 웃고 있었는데, 나도 함께 취한 것처럼 정신없이 빠져들어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시큰해진 콧잔등에 정신을 차렸다. 김혼비 작가의 글은 웃음으로 시작해서 뭉근한 감동을 주는 매력이 있다. 그저 웃긴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를 함께 건네준다. 마음 놓고 웃다가 감동받게 되는 흐름이 참 좋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