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하늘향기
- 작성일
- 2014.8.11
빛, 색깔, 공기
- 글쓴이
- 김동건 저
대한기독교서회
김동건의 '빛,색깔,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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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치고 집에 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께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할머니가 이상하다며 아버지에게 빨리 연락하라고 하셨다. 당시 외할머니는 페암 말기를 선고 받았고, 더 이상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모시고 계셨을 때였다. 몇일 전부터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할머니의 얼굴엔 잿빛이 고즈넉하게 내려 앉아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오셨다. 20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의외로 할머니의 주름 가득한 왼쪽 목덜미에 세 손가락을 조심스레 데었다. 그 짧고 조용한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는 “할머니 돌아가신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할머니의 힘없는 손을 붙들고 “안돼. 엄마.”하면서 오열하셨다. 구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아무리 만져도 반응이 없었다. 꽉 잡았는데도 할머니의 축 늘어진 팔과 힘없는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사람의 죽음이다. 죽음에 관한 이미지는 어린 나에게 오랫동안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교회 가족들의 장례를 찾아갈때면 어릴 적 할머니의 죽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때문이다. 비 신앙이셨던 할머니의 죽음은 끝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신앙인의 죽음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을 지나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9.p)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죽음과정’ 솔직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책이 김동건의 “빛, 색깔, 공기”이다. 조직신학자 김동건은 자신의 아버지의 김치영 목사의 죽음 과정을 신학적으로, 때로 신앙적으로, 또 아버지와 아들로 슬프지만 기쁘게, 어렵지만 차분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그는 책의 서두에 ‘신학 교수로써 죽음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익숙하던 우리는 막상 아버지가 암으로 고통 받게 되자 다른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것과 똑같은 고통과 당혹감을 겪었다.’(14.p)고 솔직하게 말한다.
신앙인으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지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에 대한 자세를 그린 “빛, 색깔, 공기”. 이 책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무엇인가 느끼고, 빛, 색깔, 공기마저도 감사함으로 바라보는 신앙인의 모습(147.p)을 통해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김치영 목사 스스로 본인의 장례 설교(산 소망을 가진자)를 준비하는 과정은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지막까지 삶에 대한 태도에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죽음과정의 절정은 아마 가족들과 함께 행한 주의 만찬이다. 그는 모든 가족을 불러 성만찬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고, 아들과 며느리, 딸과 손자들이 모두 모여 주의 만찬을 준비했다. 실제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는데, 아버지와 함께하는 주의 만찬이 죽음을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의례처럼 느껴져 가족들의 마음은 슬픔이 가득했다.(251.p) 그러나 성찬을 통해 저자는 슬픔과 비통이 사라지고 마음가운데 평안이 가득하며, 그 순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했다.(255.p) 이 같은 장면은 독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어릴적 나에게 죽음은 관계단절이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할머니와의 관계의 단절. 그것이 죽음이었다. 결국 죽음을 떠올리기 싫은 단어였고, ‘삶’과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또한 죽음 앞에 놓여지는 고통에 대해서도 임해야할 자세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통을 신음하고, 호소 할 수 있지만 절망과 불평이 되고, 허무감으로 연결된다면 불신앙이라고 직언한다. (117.p) 이처럼 ‘빛, 색깔, 공기’는 죽음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제를 신학자로써, 신앙인으로써, 아버지를 향한 아들로써, 차분하고, 의연하게 써내려간 좋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교회의 신앙인들이 다시 한번 죽음 앞에 고통에 대한 문제를 직면하고, 삶의 한 부분인 죽음과정을 아름답게 이루어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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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