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효천군
- 작성일
- 2012.2.14
그녀는 태클당하는 걸 좋아해! 1
- 글쓴이
- 사이토 마사토 저/사카나 그림/천선필 역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1. 서문 - 오랜만의 경험.
개인적으로 인터넷에서 10년 이상 아마추어 리뷰어 생활을 해오기도 했고 전공도 국문학이었던 관계로, 오직 소설 비평이나 리뷰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경우도 적진 않았는데요. 하지만 한동안은 제가 원해서 본 작품들만 리뷰를 해왔던 만큼, 전혀 예정에도 없었던 작품을 오직 리뷰를 쓰기 위해서만 읽었던 것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아마 4~5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 싶네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즐기기 위해서 보는 작품'과 '평가를 위해서 보는 작품'에 대한 시각 차이가 상당한 편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즐기면서 읽을 때는 그냥 넘어갔던 부분들도 평가를 하면서 읽을 때는 그렇지 않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평가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순수하게 즐길 수 없게 되니까요.
그리고 평가를 하기 위해서 작품을 볼 때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재미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읽어야만 한다는 것인데요. 더구나 이번에는 리뷰를 쓰는 대가로 책을 받은 만큼, 책이 재미 없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불가능했던지라 상당히 답답했습니다. 물론 소설 비평 때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만,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더군요.
2. 본문 - 억지 차별화는 오히려 독이다.
그녀는 태클 당하는 걸 좋아해(이하 그녀태클)는 전형적인 보이 밋 걸의 청춘 연애 스토리와 캐릭터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센 헤로인과 평범한 주인공의 구도라든가, 평범한 주인공 주위에 별 이유 없이 미소녀들이 득실대기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어째서인지 특이한 담임 선생님이 있으며 정보에 빠삭한 신문부원이 있다는 점 등, 그야말로 '왕도'라고 할 만한 길을 걷고 있죠.
개인적으로 진부한 내용의 작품을 싫어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춘 연애물에는 굳이 억지로 특이한 설정이나 내용을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서 진부함은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어설프게 신선한 소재를 사용했다가 오히려 어중간한 내용이 되어버려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 작품들도 상당히 많으니까요.
게다가 판타지나 SF, 액션 계열의 작품들에 비해서 내면 묘사에 더욱 치중해야 하는 청춘 연애물로서는 소재 부분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내용 구성에 더 힘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사실 소재의 진부함은 큰 약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용도 좋고 소재도 신선하면 일석이조이긴 합니다만, 소재는 버리더라도 내용이 좋다면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2-1. 장점 -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 만한 적절한 소재.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녀태클의 기본적인 구성은 크게 흠 잡을 만한 부분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 앞 쪽의 캐릭터 소개란을 보면서 '진부한 캐릭터 구성과 내용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그런 부분들이 딱히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똑같은 캐릭터를 사용한다고 해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으니까요.
오히려 소재 면에서는 제법 강점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애니메이션과 전혀 상관 없는 루트를 통해 라노벨을 입문하게 되는 분들도 간혹 있겠습니다만, 라노벨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이돌 성우라는 소재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성우 팬들 중에서는 웹 라디오를 즐겨 듣는 분들도 상당히 많은 만큼, 작품을 통해 웹 라디오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을 보는 분들 중에서는 성우나 웹 라디오에 관심을 갖지 않는 분들도 꽤 되긴 하지만, 성우 세계에 깊게 파고 드는 작품은 아닌 만큼 그런 분들도 충분히 가볍게 즐길 만한 수준이더군요.
2-2. 단점 - 개연성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뻔한 캐릭터와 내용을 가진 청춘 연애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보다는 내면 묘사나 내용 구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녀태클이라는 작품은 결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억지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부분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개연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개연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용이나 캐릭터 구도에 있어서의 인과 관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윤활유 역할을 하거나 전체 내용에 있어서 중요한 복선이 되는 등, 그야말로 작품의 '뼈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녀태클의 내용 전개를 보면 개연성을 통해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아니라, 우연성을 통해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는 경향이 상당히 자주 보이더군요. 물론 모든 세상 일이 개연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은 아닌 만큼 어느 정도의 우연성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을 우연성을 통해 전개해 버리면 독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가 어렵죠.
2-2-1. 평범한 고등학생과 유명 아이돌 성우가 엮일 확률.
아이돌 성우인 마도카가 우연히 주인공인 료토의 옆집에 이사오게 되고 주인공이 마침 그 성우의 팬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라디오 방송 작가가 성인인 원작자와 고등학생인 료토를 '우연히' 착각해서 게스트로 데려왔는데, 마침 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가 료토의 옆집에 이사 온 마도카였다는 내용 전개를 보면서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백 번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원작자 선생님을 데려와서 게스트를 바꾸려고 했는데, 원작자 선생님이 방송을 꺼려한다는 이유로 '우연히' 데려 온 고등학생을 그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쓸 확률이 대체 몇 퍼센트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아이돌 성우와 평범한 고등학생을 엮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지만, 대체 몇 번의 우연이 겹쳐야 하는 건가요?
2-2-2. 평범한 고등학생과 부잣집 아가씨가 엮일 확률.
료토와 부잣집 아가씨인 코하루가 만나는 부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은데요. 료토가 '수건으로 중요 부위만 가린 알몸으로' 마도카의 스토커를 쫓다가 '우연히' 부잣집 아가씨인 코하루를 만나는 장면이야 코하루가 길치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고 치죠. 근데 그 아가씨가 우연히도 료토의 여동생인 아코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이며, 또한 마도카 소속사의 스폰서일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애초에 평범한 가정집인 료토의 집안이 어째서 아코만 비싼 돈을 들여서 아가씨 학교를 다니게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아마 코하루라는 캐릭터와의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든 '아코가 아가씨 학교를 다닌다.'라는 설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은데, 주인공과 코하루의 만남에 대한 개연성을 생각하기 이전에 아코가 아가씨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용 전개에 있어서 우연성이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솔직히 이야기가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주, 조연 캐릭터들을 가리지 않고 전부 식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볼 맛이 안 나는데 내용 전개마저 판에 박히고 개연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니, 솔직히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을 보면서 재밌게 읽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물론 개연성이라는 것은 어차피 절대적인 것도 아닌 데다가, 위의 이야기들도 우연이 몇 번씩 겹치면 아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우연성을 남발하는 것은 결국 작가 자신이 이야기를 구성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솔직히 작가가 어려운 길을 포기하고 쉬운 길을 선택한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2-3. 기타 - 번역 등 기타 작품 외적인 문제.
제가 원서를 읽어보지 않는 관계로 번역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역자 분에 대한 실례겠지만, 호칭 부분은 조금 아쉽더군요.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은 호칭 부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만큼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대체 언제부터 동급생에게 공식 석상도 아닌 자리에서 '~양'이라고 부르며, 어떤 중학생이 고등학생에게 '~씨'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네요.
료토가 마도카에게 존댓말을 쓸 때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반말로 전환했을 때는 '오토나시 양'이 아닌 '오토나시'라고만 해도 상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아코가 마도카를 부를 때도 '마도카 언니'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마도카 씨'라고 번역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역자 분도 헷갈리셨는지 아코가 마도카에게 '마도카 양'이라고 하는 부분도 보이더군요.
호칭 문제는 얼핏 보기에는 별거 아닌 문제 같아 보이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면 중 하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좀 더 신경을 써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물론 역자 분도 사람인 만큼 번역을 하다 보면 헷갈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호칭 문제도 그렇고 중간중간에 간혹 보이는 오타도 그렇고, 프로라면 그런 사소한 부분들도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 마무리 -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다.
라이트 노벨이 아무리 상업성에 치우친 장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소설의 한 부류에 속하며, 그 소설의 중심이 되는 것은 결국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최근의 라이트 노벨들이 캐릭터 위주의 소설로 치우쳐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야기가 없으면 성립조차 안 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녀태클을 보면서 최근의 라노벨들이 그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잊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문학소녀 시리즈나 안녕 피아노 소나타,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토라도라 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청춘 연애 물들을 보면 소재에 있어서의 신선함은 있었을지 몰라도 결국 캐릭터 구성과 스토리는 크게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작품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녀태클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싶네요.
그녀태클처럼 내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팔리는 캐릭터'들을 내세우기 위해 억지로 내용 전개를 하는 요즘 라노벨들을 보면 과거의 국내 판타지 소설 시장을 보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합니다. 2000년 전후로 해서 나타난 퓨전 판타지는 소재의 참신함 덕분에 초반에는 많은 인기를 이끌었지만, 결국 그 인기를 보고 무분별하게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수많은 아류작들로 인해 사양길로 들어서고 말았죠.
물론 일본의 라노벨 시장은 국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데다가 다양한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만큼, 지금 당장 사양길로 접어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기 있는 콘텐츠를 따라 아류작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니, 큰 문제라고 보기도 힘들죠. 하지만 예전에 비해 이런 작품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경계해야 할 만한 일이 아닌가 싶네요.
어쩄거나 그녀태클 1권을 보면서 여러 모로 실망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만, 어차피 이 작품이 1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 만큼, 추후 전개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평가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단점 부분에서 지적했던 개연성 문제도 내용 전개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보완이 될 수 있는 부분이고, 오히려 반전을 통해서 이 작품의 장점으로 이끌어 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죠.
다만, 라노벨들 중에는 처음부터 전체적인 구성을 끝내고 시작하는 작품들보다는 초반에 온갖 설정들을 다 붙여놓고 나중에 꾸역꾸역 보완해 나가는 작품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올지 의문입니다. 물론 그녀태클 같은 작품은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와 개그에 중점을 두는 작품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개그 부분도 쓸데 없는 말 장난이 너무 많아서 읽기가 굉장히 거북했습니다. 말 장난도 해야 할 때가 있고 안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걸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만큼, 내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즐길 분들이라면 상관 없겠습니다만, 스토리가 제대로 갖춰진 청춘 연애물을 바라는 분들께는 추천하기가 다소 힘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입장에서는 별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아니네요.
- 좋아요
- 6
- 댓글
- 1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