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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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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상)
글쓴이
존 파울즈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9.2 (5)
주원
 
The French Lieutenant's Woman :: John Fowles


한 때, 빅토리아 시대를 한없이 동경했더랬다. 우아한 건축물,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 품위 있는 신사복, 깨끗하게 정리된 린넨, 앤티크한 가구들과 정교한 문양이 그려진 다기들, 오후의 홍차, 단아한 제복의 메이드들, 외알 안경을 낀 나이 든 집사, 그리고 고딕하게 양장된 책들로 둘러쌓인 고즈넉한 서재... 대영 제국의 가장 풍요로운 전성기였던 이 시대는 지금도 영화를 통해서나 책을 통해서나 가장 자주 그려지는 시대이며, 심지어 그 당시의 사사로운 물건들조차 귀한 골동품으로 취급되거나 복제되어 현대에 이르러서도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동경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고 간절히 바랐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어느샌가 닳아 없어지게 된 건 현대에서 그 시대의 구태한 관습, 즉 위선과 허영까지 대물림 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겪고부터였던 것 같다.

이를테면 '홍차를 마신다' 는 개념이 왜곡되어 편견으로 작용했을 때 그랬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못해 대안으로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뜻밖에 '홍차를 즐긴다' 고 하면 대단히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는 반응이 돌아올 때가 많아 종종 불편한 기분이 되곤 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 위해' 홍차 마시기가 취미라는 사람도 적잖이 있었다. 우아한 테이블 셋팅에 고급 찻잔과 다구, 그리고 고품질의 홍차만을 선호하게 되는 심정이야 이해할 수 있다쳐도, 그 화려함의 그늘에 가려져 착취되고 있는 인도나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의 사정을 알고난 뒤부턴 나 자신은 '그러한 취미 생활' 을 차마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영국이 홍차 문화를 자기네의 독단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식민지에 가한 만행이 가장 정점을 이룬 시대가 바로 빅토리아 시대였던 것이다. (영국의 차 욕심으로 인해 발발된 아편전쟁도 이 때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시대가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손꼽히는 시대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 풍요로움 덕분에 양산된 예술과 문학의 홍수 덕택일 것이다. 이 시대에 창작 활동을 한 문인들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가장 사랑받는 고전 작가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제인 오스틴이나 찰스 디킨스를 예로 들 수 있겠는데, 그들은 냉철한 시선과 섬세한 필치로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상과 인간 군상을 가감없이 그려내어 리얼리즘 문학의 기반을 다졌다. 디킨스는 런던 뒷골목의 남루함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으며 오스틴은 귀족 사회의 위선과 허영을 재치있게 그려내어 당시로서도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다만 그들이 미처 놓치고 만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래 사회에 대한 조망' 이었다고 할까.

현대 작가 파울즈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 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내어 마치 그 당시의 작가가 서술했을 법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면서도 현대인인 작가 자신을 작품에 과감히 개입시켜 '이미 지나간 시대를 재연하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계속 주지 시킨다. 이전의 리얼리즘 작가들이 독자를 소설 속으로 자연스레 끌여 들어왔다면, 파울즈는 '경계 너머에서만 보라' 는 식으로 독자 앞에 펼쳐진 풍경 앞에 철책을 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독자와 소설을 분리시키기는 커녕 독자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신 사조를 만들어냈다. 이 독특한 서술 기법은 파울즈가 활동하던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이른바 '메타 픽션' 세계로의 문을 열었는데, 이는 거의 동시대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가 예고했던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도래의 맥락과도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문학 사조에 있어서 하이퍼텍스트란 대체로 인터넷에서 끝없이 파생되는 복제품을 대표하는데, 예를 들면 하나의 작품이나 제작된 미디어를 보고 팬픽이나 패러디, 혹은 오마주 형식으로 비틀어 재창조 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메타 픽션에선 작가가 다른 실존하는 작품들을 자기 작품 속에 언급하여 독자의 관심을 자연스레 그 작품으로 유도하며 독자의 영역을 넓혀주는 한 편, 자기 작품 세계의 레퍼런스로도 쓰일 수 있게끔 '링크' 를 하는데, 이는 하이퍼텍스트의 가장 흔한 수법으로 쓰이고 있다. 그 외에도 고전을 재해석한(주로 그림형제나 페로의 동화책을 주요 소재로 하여) 작품들이나, 오픈된 결말로 독자에게 마무리의 권한을 넘겨주기도 하는 등 현대의 하이퍼텍스트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차 그 영역을 무한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파울즈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두 개의 결말을 그려냄으로 독자에게 선택권을 준다. 하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다운 통속적인 결말이며 다른 하나는 반전이라 해도 좋을만큼 파격적인 결말이다.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는 독자의 취향이지만, 이는 작가의 음흉한 테스트이기도 하다. 고상한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해피 엔딩 속에 현대인의 허영 의식과 위선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선형적 이해관에 길들여지다못해 타성적이 되버려 다원적인 세계상을 자기만의 편견과 도태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마법사The Magus>에서 이미 시도해본 것과 같이 파울즈는 아름답고 우아한 빅토리아 시대의 격정적 로맨스를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고 독자를 그 시대로 되돌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현재의 이 시대를 자각하게 만든다. 때문에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 는 주인공 새라 우드러프만큼이나 교활하고 영리하다.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만큼 진작에 영화로도 제작 되었는데, 구해보기는 쉽지 않아도 주인공 역할이 메릴 스트립과 제레미 아이언스 라는 캐스팅만 보더라도 눈앞에 바로 영상에 그려지는 것 같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젊은 메릴 스트립과 (이 영화로 세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가 되기도 했다.) 가장 신사적인 이미지면서도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캐릭터로 제레미 아이언스만한 배우가 또 있을까! (아마도 이 영화 덕에 아이언스는 한동안 우유부단한 '찰스 스미스선' 의 이미지로 굳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후 출연작이 나보코프의 '롤리타' 와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 등인 것을 보면 말이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을 영화화 한 작품에서도 메릴 스트립과 부부로 출연하는데, 기회가 닿으면 <프랑스 중위의 여자> 와 비교해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의 컬쳐 향유 확장이야말로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축복어린 세례가 아니고 또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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