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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7.8.8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외로워하고, 혼자이기 때문에 약하며, 사랑이 없을 때 약하고, 사랑이 있을 때 약하다.”
참 멋진 말입니다.
우리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죠. 언젠가는 한번쯤은 외로워질 사람들이죠.
외롭다고 느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엔 이런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공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사이코 테라피스트의 공간입니다.
한국에서는 임상심리사 혹은 상담심리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정신과의사 못지않게 중요한 직업군입니다.

정신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들은 테라피스트를 먼저 찾습니다.
전부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왜냐면, 정신적인 문제는 마음을 열고 누군가와 대화할 때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약물치료만으로는 다친 마음이 언제라도 재발할 우려가 있죠.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많이 알고 있듯 정신적인 문제는 정신 그 자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주변의 환경이나 여건 때문에 발생하기도 합니다.
주로 경제적인 것,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 등을 말하죠.
그러나 그런 일반론적인 사실이 자신의 문제가 될 때는
스스로 명확하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미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이니까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아무리 똑똑한 인간일지라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딜레마이기도 하고, 우울한 현실인식이기도 합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차가웠던 마음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뒤틀렸던 마음이
다시 원래의 온기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 말입니다.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테라피스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의 저자인
권문수 씨도 테라피스트입니다. 워싱턴에서 개인오피스를 연 베테랑이죠.
그는 한국 남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인을 상대로 정신상담을 해주죠.
사실 미국인이라고 하기도 힘듭니다.
워싱턴엔 아랍이나 동양에서 온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이 책엔 그가 지난 10여년간 만나왔던 환자들과의 상담스토리가
잔잔히 펼쳐집니다.

남편의 외도로 남성을 증오하게 된 제시카는 맞바람을 피우다 종국엔
남성 기피증을 갖게 됐습니다.
30여년 동안 정신분열성 성격 장애를 앓고 있는 에릭은
감정이 사라져 어머니의 사망에도 슬픔을 느끼지 못하죠.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당한 뒤 우울증에 빠진
안젤라는 20여년간 이 세상에서 자신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게 된 스티브는 마시면 마실수록
되레 정신이 또렷해져 괴로움이 더 커지고요.
5 또는 3 같은 특정 숫자에 집착하는 제임스는
강박적 성격 장애를 앓고 있는데요, 제임스를 담당했던 테라피스트인
러레인 또한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상담일지를
5장짜리 보고서로 세밀하게 기록하는 강박증 증세가 있었죠.
그녀는 떠나고 저자가 제임스를 맡게 됐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보고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느껴지실 분들도 물론 많겠죠.
하지만 이 책엔 외로움이나 지루함, 공포나 고립감 같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독립적인 에세이도 들어 있습니다.
가슴 따뜻한 아포리즘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구요.
모두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말인데요
하나만 예를 들면 “진실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문제를 찾아나가는 데 있다”는 것이란 말입니다.
테라피스트로서 환자를 상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데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요?”라고 대드는 환자,
그런 환자와 몇 달간 씨름을 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결국 그의 마음을 여는 일에
성공하면서 깨닫게 되는 통찰인 것이지요.
이 자그마하고 따뜻한 책 속에는 정신상담이라는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한국사회를 향한 해외동포로서 갖는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사이코 테라피스트라는 직업세계(룰과 일의 노하우)에 대한 소개서도 될 수 있죠.
무슨 교과서적인 지식이 나열된 게 아니라
상담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무슨 실전연습 하듯이 자연스럽게 노련한 대화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주제넘게 제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소개를 드렸어요.
한번쯤 읽어보고 누군가에게 선물해도 좋은 책이라고 강추하는 바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이코 테라피스트의 심리여행
(권문수 지음,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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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