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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 작성일
- 2020.2.13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글쓴이
- 고미숙 저
프런티어
호주머니가 텅텅 비었다. 벌써 며칠째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자판기에 적힌 숫자는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고작 150원이 없어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하다니. 전국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자랑하면서 커피 값은 왜 그리도 저렴했던지,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쓰디쓴 속을 달달함으로 달래라는 뜻이었던
듯도 하다.
가난하면 사람이 비굴해진다. 지출을 줄이고자 안간힘을 쓰다 보면 행동
반경이 줄어든다. 집 밖으로 나가면 지갑 열 일이 넘치므로 가급적 외출을 삼간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왠지 상대가 계속 돈을 쓰면 미안해지고, 그렇다고 내가 내자니 돈이 없다. 최대한 만남을 줄이는 일은 긴축재정에
필수다. 그래서일까. 혼밥족을 쉬이 만난다. 사람 사귀는 게 서툴러서 혼자 밥을 먹었던 나와는 다른 이유에서 많은 이들이 홀로 식사를 한다. 제법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마저도 다른 이와의 관계맺기를 꺼리는 현실이라니. 이게
다 백수라서 빚어진 비참함이다.
저자는 백수를 예찬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단다. 더 나아가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각종 문제의 해결 열쇠를 어쩌면 백수가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도
일으키는 문장을 구사하기까지 했다. 그의 색다른 백수 해석론은 나름 탄탄한 백데이터를 자랑했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로 언급되는 인물인 박지원이 저자 지원사격에 나섰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는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다. 지배계층은
정신 차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권력 다툼에 허비했다. 그나마 후기에 실학이라 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지난날의
학문을 반성하는 움직임이 일기는 했으나 이 학풍을 좇은 인물 대다수가 실질적으로 나라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는 미치지 못했다. 저자가 기댄 인물인 연암 박지원 또한 소외를 겪은 인물이라고 난 알아왔다. 그의
문장은 탁월했으며,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관점은 뼈를 때렸다. 그의
가치는 대한민국 대입 시험이 인정했다(?). 책을 정말 안 읽는 사람도 시험지 지문으로 등장한 그의
글을 한 번 이상은 접해 보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당대엔
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저자는 나의 왜곡된 관점을 허물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암
박지원은 ‘금수저’에 속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실력이야 모두가 알아줬으므로
벼슬길에 걸림돌이 될 만한 건 없었다. 오래도록 갈망한 무언가를 이루면 기쁨도 잠시, 이후 몰려오는 허망감이 상당하다던데, 연암은 경험에 앞서 이미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자신과 다른 입장, 다른 사상을
취한 이들을 향한 어떠한 관용도 용납이 아니 되는 비정한 세상을 스스로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 나의 생각은 ‘양반이니까 가능했다’로 향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많다면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신분제
사회답게 얼마든지 종을 거느릴 수 있었을 것이다. 연암은 타인의 노동에 자신의 모든 걸 맡기지 않았다. 직접 요리를 하는 양반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그에게 신분은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박제가의 학문을 높이 여기고 친히 교류에 나설 수 있었다. 어디
박제가 뿐이었겠는가 그와 뜻을 함께한 이들이 도처에 널렸으므로 외로울 새가 없었다. 경제적인 가난보다도
어쩌면 더욱 큰 심리적 위축을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노동을 거부하라? 힘겹게 대학 졸업까지 해놓고선 취업을
못 하면 부모의 한숨이 늘기 마련이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만 보아도 서러움이 밀려오는 게 백수라
했거늘, 저자는 그런 백수를 예찬했다. 화폐가 판을 친다. 모든 게 금전으로 환산되는 세상이다 보니 남들보다 거금을 거머쥐기 위한 고군분투가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다. 치열한 삶을 살아 그댄 뿌듯한가. 돈을 움켜쥐기 위해 지금껏 붙잡고
있었던 친구를 놓아버리는 누를 범하고 있진 않은지 물을 필요가 있다. 백수는 시간 부자다. 모두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시간이 넘친다. 모두가 시간에 쫓겨 자신이
하고픈 게 무언지 알지도 못하지만, 백수에겐 널린 게 시간이므로 스스로에게 얼마든지 충실해질 수가 있다. 많은 시간을 스스로 조율하는 존재,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밥을 먹고, 책을 읽고, 걸을 수 있는 존재.
심지어 백수는 애초부터 가진 게 별로 없으므로 적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백수야말로 쓸데
없는 쓰레기를 양산 않는 생태주의자요, 타인에게 긴장감이나 경쟁심, 적대감
따위를 일으키지 않는 평화주의자다. 모든 게 노동과 화폐만을 바라보는 세상에서 다른 시선, 다른 눈빛으로 다른 걸 갈망하는 백수. 아, 백수가 그리도 좋은 건 줄 알았으면 지난 백수 시절을 맘껏 즐길 걸 그랬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므로 어찌할 순 없다. 대신, 지금까지
내가 품어온 백수 이미지를 털어내야겠다. 천하의 박지원도 택하고야만 백수다. 모두가 바라는 정년 보장 따위는 앞으로 점점 더 희귀해질 것이다. 불가능을
어리석게 탐하는 것보다야 남들보다 앞서 백수로 살아가는 적극성을 발휘하는 편이 왠지 더 현명한 태도 같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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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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