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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 작성일
- 2021.2.28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글쓴이
- 전범선 저
한겨레출판
1등. 격렬히 원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던 위치. 입시 지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게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 전 일이 됐지만, 여전히 나는 경쟁에 심취해 지내고 있다. 저자의 이력은 그런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을 만큼 화려했다. 민족사관고, 미국 다트머스대, 영국 옥스퍼드대. 누구도 쉬이 따라잡기 힘든 기록이 그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만큼 열심히 학업에 임했던 것일 테지만, 성과는 눈부셨다. 모두가 갈망하는 성공을 죄다 거머쥐는 건 시간문제지 싶었다.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라 헸던가. 현재 그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어딘가에 소속돼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름만으로도 모두의 부러움을 살 법한 무언가의 창업에 나서지도 않았다. 대신 음악을 했고, 책방을 하나 인수했으며, 출판사도 운영 중이다. 평생 직장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태도일 수 있으나, 그래도 아직까진 때 되면 따박따박 월급 받는 삶을 다수가 선호한다. 음악을 해 밥 먹고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원래도 책을 안 읽는데,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독서는커녕 책을 구입하는 이의 수 자체가 극감했으니 이 또한 돈벌이는 안 될 듯하다. 지갑이 얇으므로 그는 불행할까. 어디에서도 후회가 읽히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과 각오가 더 잘 느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읽혔다. 소위 잘 나가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가 우선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민족사관고. 학교 이름부터가 전통을 매우 수호할 거 같은데, 국어조차도 영어를 사용해서 배우는 역설적인 생활을 감당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 학교는 학교가 위치한 지역(강원도)과는 단절된 형태로 존재했다. 서울 강남3구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해외 체류 경험을 갖춘 상태였다. 이미 그는 아무나 속할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부러움도 잠시. 자신의 위에 한없이 옅은 공기층만을 지녔을 줄로만 알았던 그에게도 범접이 힘든 사회는 존재했다. 대대로 부를 유지해온 집안의 자제들은 공부에 애걸복걸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부는 생존의 수단이 아닌 교양 획득을 위한 무언가에 불과했다. 눈에 보이진 않으나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계층과 계층 사이에 깃들어 있다는 걸 그는 어린 시절 이미 깨달았다. 미국과 영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그는 타자성에 눈을 떴다. 아무리 노력해도 피부색, 인종 등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성공에 안착한 모양새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에도 그가 지닌 정체성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능성을 파헤치면 어김없이 발견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굳이 꼽자면 원인이었을지도. 그는 남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택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굳건한 세상에서 그의 행보는 ‘튄다’는 평을 듣기에 충분했다. 마치 조선시대 사람인양 머리와 수염을 길렀다. 지금과 같은 삶을 인류가 지속한다면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다며 채식주의자로 전향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어떠한 종도 다른 종의 삶에 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동물해방을 주창했다. 신속보단 신중을 기해 정당 창당을 준비하고도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에 공감하는가와는 별개로 머지않아 이제까지와는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글씨체가 독서를 힘들게 만들었다. 아마도 눈에 익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읽게끔 만드는 건 타고난 글솜씨의 힘이 컸다. 어떤 이는 저자의 끄적임을 ‘유전’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임을 고백했다. 이인직. <혈의 누>, <귀의 성> 등 신소설을 쓴 작가로 교과서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 맞다. 글을 곧잘 쓰고 언어에도 능통하다는 공통점이 꼭 같은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법은 아니니까. 자신이 원하는대로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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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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